[경제] “마침내 미래가 도착했다” 붕괴와 변혁 사이 기점에 선 인류[최준호의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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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의 대부, 짐 데이터 하와이대 명예교수 인터뷰

'미래학의 대부'로 불리는 짐 데이토 하와이대 명예교수
“미래가 마침내 도착했다(The future had finally arrived).” ‘미래학의 대부’, ‘미래학자들의 스승’이라 불리는 짐 데이터(93) 하와이대 명예교수가 2024년 출간한 저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삶: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번영하기』(Living Make-Belief: Thriving in a Dream Society)에서 챗GPT의 출현을 두고 말한 표현이다. 1933년생인 그는 1960년대 말부터 하와이대에서 미래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인공지능(AI)의 아버지, 앨런 튜링(1912~1954)이 활동하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챗GPT의 출현까지 2세기에 걸친 과학기술의 급속한 진화를 직접 목격해왔다. 1977년 앨빈 토플러와 함께 대안미래연구소를 설립했고, 세계미래학연맹(WFSF)의 사무총장과 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인류가 정보사회를 지나 이야기와 감성이 핵심가치가 되는 사회인 ‘드림 소사이어티’로 이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류의 세계적 부상을 일찍부터 예견한 지한파이기도 했다. 2004년 제자(서용석 KAIST 교수)와 함께 쓴 논문에서 한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농경 사회에서 산업사회, 정보사회를 거쳐 드림 소사이어티로 변모하는 과정을 단 50년 만에 완수해낸 첫째 국가라고 말했다. 90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호놀룰루 자택 컴퓨터 앞에 앉아 세계의 흐름을 체크하고 제자를 비롯한 세계 연구자들과 교류한다. 기자는 데이터 교수와 수차례 e메일을 통해 AI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미래에 관해 물었다. 그는 급성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에도 물음에 지체없이 답을 보내왔다.

중국 샤오평의 창업자 겸 회장 허샤오펑이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AI데이 기자회견에서 자사의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아이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FP=연합]
인공지능이 인류 노동 대신할 것
- “미래가 마침내 도착했다”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 그간 공상과학(SF) 소설과 미래학에서 오랫동안 예상해 왔던 인공지능이 2022년 11월30일 오픈AI의 거대언어모델(LLM) 인공지능인 챗GPT의 출현으로 마침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말한 거다.
- 언젠가 AGI(범용 인공지능)가 완성될 때,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 나는 AI가 모든 형태의 생명체와 결합하는 것을 인류와 우리 환경을 위한 자연스러운 진화 단계로 본다. 두려워하거나 막아야 할 어떤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AI를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머잖아 인간은 스스로 의지를 갖고 판단하며 가치를 창출하는 인공 초지능체 ‘아틸렉트(artilects)’와 공존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AI를 인류가 만들어낸 AI와 휴머노이드는 물론 그 이후까지 ‘사이버네틱(cybernetic) 자녀’로 받아들이고 함께 진화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AI 발전은 자연스런 진화단계” # 결국은 ‘완전실업’ 세상 될 것 # 인류 미래, 우리 손에 달려있어 # 한국, 미국 따라가는 것 멈춰야
- 당신은 정보사회 이후에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가 올 것이라고 했다. 드림 소사이어티와 AI가 어떤 관련이 있을까.
- 드림 소사이어티가 계속해서 확장되고 번영할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인공지능의 발전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아틸렉트가 인간이 해오던 대부분의 일상적인 업무와 노동을 대신할 것이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완전 실업(Full Unemployment)’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 때 인간은 놀이와 상상력ㆍ창의성에 주로 몰두하게 될 것이다. 이게 드림 소사이어티의 근간이다.

아침 출근길, 영국 런던의 직장인들이 런던 브리지를 건너가고 있다.[로이터=연합]
드림 소사이어티로 가는 두 갈래 길
- 너무 유토피아적으로 들린다.
- 인류는 이미 최근 수백 년간 사회적, 기술적 발전 덕분에 무언가를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해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정신노동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회로 가는 길로 가고 있다. 하지만 드림 소사이어티엔 두 갈래 길이 있다. 첫째 길이 인류가 이 기회를 이성적이고 세심하며 공정하게 계획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면, 또 다른 길은 폭력적이며 불공정한 세상으로 내몰리는 거다. 안타깝게도 나는 우리 인류가 지금 둘째 길로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본다. 당신이 유토피아적이라고 평가한 내 표현은 우리가 첫째 길을 택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 현재의 경로가 계속 이어진다면, 인류는 ‘완전실업 사회’를 맞을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증가하는 실업에 대한 유일하고 합리적인 대응은, 모두가 자신과 타인에게 의미 있는 활동에 평화롭게 종사하며, 인간의 노동 없이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 누구나 자유롭고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는 세계를 구상하고 설계하며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완전실업의 미래가 폭력적이고 피비린내 나며 비인간적일지, 아니면 평화롭고 협력적일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 당신은 인류의 미래를 ‘지속성장’(Continued growth)과 ‘붕괴’(Collapse), ‘보존ㆍ절제’(Disciplined), ‘변혁’(Transformation), 이 네 가지로 설명한 바 있다. 인류는 지금 이 네 가지 미래 중 어디로 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나.
- 그간 인류 역사를 보면 때에 따라 네 가지 중 한두 가지 측면이 지배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은 ‘붕괴’와 ‘변혁’ 사이의 기점에 위태롭게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짐 데이터는 어떤 사회나 기술적 변화든 결국 다음의 네 가지 중 하나의 경로를 밟게 된다고 말한다. ‘지속성장’은 현재 인류가 추구하는 산업화와 자본주의 경제 모델이 중단 없이 계속해서 발전하는 미래를 말한다. ‘붕괴’는 환경 파괴, 자원 고갈, 전쟁, 혹은 통제 불능의 전염병 등으로 인해 현재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미래를, ‘보존ㆍ절제’는 지속 가능성을 위해 성장을 억제하고, 엄격한 규율이나 가치관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는 미래다. 변형은 완전한 새로운 기술이나 사회적 가치의 등장으로 현재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뀌는 미래를 말한다.

2021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콘서트.[연합뉴스]
한국, 드림 소사이어티 진입 1호 국가
- 당신은 한류를 예로 들며 한국을 드림 소사이어티에 진입한 세계 최초의 국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본 문화가 그랬던 것처럼 한류도 결국 지나가지 않을까.
- 모든 파도는 도착하고, 누군가는 그 파도에 올라타거나 혹은 위험을 무릅쓰고 무시하며, 그리고 사라진다. 하지만 한류의 기반은 19세기와 20세기의 일본 열풍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한류가 다른 국가들의 문화 전파와 달리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과 기업의 수완이 결합하여 전략적으로 육성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하드웨어나 제조기술에만 머물지 않고, 전 세계적인 드림 소사이어티의 출현을 앞당기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한다. 한류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거치며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진화해 온 과정을 언급하며, 한국이 드림 소사이어티라는 새로운 사회 모델을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구축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 한국은 초저출산과 급격한 고령화와 같은 ‘붕괴’ 시나리오의 징후에 직면해 있지 않나.
- 초저출산은 붕괴의 징후가 아니다. 되레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는 한국이 가고 있는 것과 같은 인구학적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며, 실제로 대부분의 세계가 그렇게 가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만이 높은 출산율을 보이는 유일한 주요 지역이다.
짐 데이터는 이를 인류가 산업 사회의 ‘노동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 AI와 같은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는 변형 시나리오로 진입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해석한다. 물론 그가 모든 인구 감소를 긍정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한국이 현재의 사회보장 제도나 교육 시스템을 ‘인구 증가 시대’의 낡은 모델로 유지한다면 급격한 인구 감소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래학자 짐 데이터. 하와이대 명예교수.
동남아 등 제3국들과 연대해야
- 당신은 KAIST에서도 가르치셨고 한국 사회를 잘 알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AI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는 시기에 한국은 지금 무엇에 가장 집중해야 할까.
- 나는 한국이 미국을 따라가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줄곧 말해왔다. 마찬가지로 중국에 대해서도 존중과 경계의 자세로 같이 가져야 한다. 두 나라 모두 드림 소사이어티에 진입하고 있는 국가이지만, 이미 지나가고 있는 산업ㆍ정보사회의 목표와 구조를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다. 나는 한국이 일본과 동남아시아ㆍ중앙아시아ㆍ오세아니아의 여러 작은 국가와 협력해 팀을 이뤄야 한다고 한결같이 제안해왔다.
짐 데이터의 주장이 과격하게 들릴 수 있다. 드림 소사이어티와 초저출산에 대한 생각, 미ㆍ중 기술패권 시대에 미국을 따라가지 말라는 그의 조언은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성장’과 ‘추격’의 프레임을 뒤흔들고 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저출산과 고용 위기는 소멸의 전조가 아니라,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노동 없는 풍요’로 나아가기 위한 거대한 전환점이라는 얘기다. 짐 데이터는 한국이 이 파도를 가장 먼저 맞이한 ‘서퍼’(Surfer)라고 믿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드림 소사이어티’를 설계하느냐로 모아진다.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폭력적인 경로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AI와 공생하며 인간의 존엄을 유희와 창의성으로 꽃피우는 평화로운 경로를 택할 것인가.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
데이터와 정보가 핵심 가치였던 ‘정보화 사회’를 지나,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 그리고 이야기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문명 단계를 뜻한다. ‘꿈’이란 단어 때문에 유토피아가 연상되나,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적인 개념이다. 1999년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이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를 통해 처음 제안했다. 짐 데이터는 이 개념을 국가 전략 및 문명사적 진화의 관점으로 확장했다.
짐 데이터 교수 약력
1933년생
1954년 플로리다 스테츤대 졸업(고대ㆍ중세 철학 전공)
1955년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정치학 석사) 졸업
1959년 아메리카대 정치학 박사
1960~66년 일본 도쿄 릿쿄대 교수
1967년 버지니아공대 교수
1977년 앨빈 토플러와 대안미래연구소(IAF) 설립
1983~93년 세계미래학연맹 사무총장, 의장
1969~2015년 하와이대 교수
1972~2015년 하와이 미래학연구소 소장
2013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임교수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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