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혈성 천연두 격리병동에 좀비 등장…"코로나 시기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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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보라가 기획 번역한 소설『브로츠와프의 쥐들』시리즈가 지난해 모두 출간을 마쳤다. 사진 혜영

1963년 여름, 폴란드 서부의 대도시 브로츠와프에 위치한 격리병동을 떠올려보자. 정보라 작가가 최근 시리즈 세 권을 완역해 출간한 소설 『브로츠와프의 쥐들』(다산책방)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다.

『브로츠와프의 쥐들』 완역한 정보라 인터뷰

이곳에는 환자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병동을 지키고 있는 경찰, 파트리크 미엘레흐가 있다. 그는 불어나는 출혈성 천연두 환자들을 지켜보다 간호사인 아그니에슈카를 사랑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아그니에슈카는 얼마 안 가 사망에 이른다. 격리병동에서 등장한 좀비가 그를 덮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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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는 『브로츠와프의 쥐들』 곳곳에 이 책에 대한 사랑을 내비친다. 역주로, 해설로 적힌 이 책의 매력은 역시 "몰입된다"는 것이다. 사진 혜영

시나리오처럼 구체적인 묘사로 전개되는 소설은, 이 장면으로부터 전력 질주한다. 옮긴이 정보라 작가는 최근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제가 번역한 여러 작품 중에서 정말 독보적으로 박진감 있다”라며 “사건 진행 속도가 빠르고 등장인물들 모두 생명의 위협 속에서 긴박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몰입하며 읽고 번역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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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미트 작가의 『브로츠와프의 쥐들』 시리즈. 첫 번째 시리즈인 『브로츠와프의 쥐들: 카오스』는 현지에서 2014년 처음 출간됐다. 사진 다산책방

『브로츠와프의 쥐들: 카오스』, 『브로츠와프의 쥐들: 철창』, 『브로츠와프의 쥐들: 병원』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는 폴란드 작가 로베르트 슈미트의 소설이다. 첫 번째 책은 현지에서 2014년에 출간됐고, 한국에선 지난해 2월 번역됐다. 정보라는 2022년 로베르트 슈미트의 부인이자 에이전트인 우르슐라 가드네르의 번역 제안을 받고 이 작가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번역가가 출판사에 번역서를 제안하는 ‘기획 번역’의 형태로 로베르트 슈미트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게 됐다.

출혈성 천연두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작품 앞부분에서 격리병동에 수용된 환자들이나 고생하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읽으며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를 떠올렸습니다. 치명적인 신종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도 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리라 생각했습니다.

정보라는 소설집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과 2023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고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로 지난해 필립 K. 딕상 후보에 오른 소설가다. 동시에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 학위를, 인디애나대에서 러시아·폴란드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러시아·폴란드 문학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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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에 따르면 로베르트 슈미트(사진)는 이 책이 영화화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사진 다산책방

슈미트는 브로츠와프 출신의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1980년대에 데뷔했다. 폴란드에선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계의 거장으로 여겨진다. 현지에서 2003년 발표된 소설 『존 씨의 아포칼립스』에선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다루었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소설 『잊힌 전장』 5부작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소설에 묘사된 출혈성 천연두 감염 사태는 실제 브로츠와프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보라는 역자 해설로 “전염병이 좀비 사태를 일으킨다는 설정 자체는 이제 흔한 공식”이지만 “1963년 공산주의 폴란드의 엄혹하고 긴장된 사회체제와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상흔이 아직도 짙게 남아 있는 브로츠와프라는 배경”에 집중해보자고 제안한다.

이곳 태생인 작가만이 알 수 있는 도시의 상징성과 배경이 소설에 잘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땅이자 종전 이후에도 독일과 소련에 의해 국경 재정비를 겪고, 공산화된 폴란드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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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가 쓴 책은 지난해 12월에도 나왔다.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요다)라는 소설이다. 최의택 작가와 릴레이 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썼다. 사진 혜영

매력적인 작품을 국내 독자들에게 알렸지만, 정보라는 “번역가로서 나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을 한국에 최대한 열심히 소개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창작 활동과 번역을 병행하는 이유는 "재미있고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면 한국 독자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어서". “번역을 하면서 이 작가는 줄거리를 어떻게 구성하고 사건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배우는 기회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보라 만의 언어로 쓴 책도 올해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해외 출장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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