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주식하면 패가망신' 옛말…오전 8시, 유튜브 수만 명 북적인다

본문

btf05d19fc1c3280ecccd2bf9696310287.jpg

사진 셔터스톡

24일 주식 시장이 개장하기도 전인 오전 8시, 구독자가 56만 명인 한 유튜브 주식 채널 실시간 방송에 5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지금 삼성전자 들어가면 늦을까요” “제약주는 어떻게 될까요”. 채팅창에는 질문이 쏟아졌다. 진행자는 마치 족집게 강사처럼 “지금 사면 오른다”는 종목을 콕콕 집어줬다. 같은 시각 비슷한 실시간 방송 10여 개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방송마다 수천 명의 사람이 몰렸다. 출근 시간대 수만 명이 주식 방송을 보며 이날 매수할 종목을 추천받고 있었다.

이날 코스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사상 최고가 행진에 힘입어 6000선 코앞까지 다가갔다. 전날보다 2.11% 오른 5969.64에 거래를 마감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20만 전자’, ‘100만 닉스’의 고지에 올랐다.

bte9bd420741f97fdba04fe3e907db8e95.jpg

박경민 기자

이처럼 한국 증시가 전례 없는 ‘불장’을 이어가면서 주식 투자 열기가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SNS)로 옮겨붙고 있다. 늦게 주식 투자를 시작한 이들 사이에선 나만 뒤처진 것 같은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가 확산됐다. 단기간에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에 발걸음이 몰리는 이유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대학생 중 유튜브와 SNS에서 투자 정보를 얻는다고 답한 비중은 2022년 30%에서 2024년 41%로 크게 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식 하면 패가망신”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았다. 2020년 ‘동학개미’(국내주식에 투자자하는 개인) 운동 이후 대형주들의 주가가 추락했던 경험 탓에 주식 투자에 대한 불신과 공포심도 컸었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이달 초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유리한 재테크 방법’으로 주식을 꼽은 응답자 비율은 37%로, 부동산(22%)을 제치고 1위였다. 해당 조사가 시작된 2000년부터 선호 재테크 수단 1위는 늘 부동산이었지만, 지난해 7월 처음으로 순위가 바뀐 뒤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패러다임은 이미 바뀌었다”며 “일시적 일탈이 아니라 자산 선택의 기본값 자체가 서서히 재설정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증시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투자자의 불안한 심리를 악용한 자극적인 콘텐트도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22일 구독자 5만 명 규모의 한 유튜브 주식 채널에는 “23일 당장 매수!! 미친 급등 터질 주식 딱 3종목”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채널 운영자는 “이미 내가 추천한 뒤 20%가 올랐다. 300~400% 급등도 가능하다”며 “정확한 매수·매도 타이밍을 알고 싶으면 텔레그램 방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추천 종목 중 하나는 23일 주가가 2.8% 내린 데 이어 24일 6.2% 더 하락했다.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구독자 50만 명이 넘는 채널을 운영한 ‘슈퍼개미’ 유튜버 김정환씨는 2021년 6월부터 약 1년간 자신이 보유한 5개 종목을 방송에서 추천하면서 뒤로는 매도해 차익 실현을 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지난달 27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억원을 선고받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보고서는 내부 통제가 있지만 유튜브 채널은 검증 장치가 없다”며 “미리 매수한 종목을 추천하는 등 조작 시도가 있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금융에 대한 이해도는 투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이 지난해 7월부터 약 한 달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디지털 금융 이해력 점수는 100점 만점에 59.3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목표 점수인 70점보다 크게 부족했다. 연령별로는 50대가 평균 60.9점으로 가장 점수가 높았고, 20대가 평균 54.2점으로 가장 점수가 낮았다. 낮을수록 소비자를 기만하는 금융 서비스에 쉽게 노출됐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핀플루언서’(금융 인플루언서)가 보편적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맹목적인 추종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튜브 주식 채널에서 긍정적으로 언급된 종목들은 실제로 유의미한 초과수익률을 보이는 등 어느 정도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유튜브의 시장 영향력이 커질 경우 자칫 개인 투자자의 의사결정이 왜곡되고 군집행동으로 인해 시장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는 이미 핀플루언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영국은 금융감독청(FCA)에서 사전 승인받은 금융서비스와 상품의 광고만 허용한다. 만약 승인받지 않은 금융 상품을 홍보하면 법으로 처벌한다. 프랑스는 2023년부터 핀플루언서 자격인증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정부가 단기 부양에 앞서 유통되는 투자 정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주식이 중장기 자산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유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핀플루언서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SNS에 금융 정보를 올릴 때 지켜야 할 규칙 마련, 투자자 교육을 통한 위험 관리 인식 제고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 교수는 “투자 자금이 많지 않아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어려운 청년은 특히 유튜브 등에서 유통되는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면 평생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국내 증시는 변동성이 커서 ‘세컨드 라운드’가 없는데 주식이 중장기 자산이 될 수 있도록 구조적인 체질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8,092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