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희호 여사가 박정희 대통령에 보낸 서한·관련자료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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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감옥병동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면회가는 이희호 여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관장 박명림)은 3·1민주구국선언 50주년을 맞아 이희호 여사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과 관련 자료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되는 자료는 1978년 9월 25일 이희호 여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과 같은 해 9월 1일 이선중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한 이감신청서, 그리고 이희호 여사가 작성한 서울대병원 감옥병동 구조도다. 이와 함께 서울대병원 감옥병동에서의 사진(1978년), 서울대병원 감옥병동으로 김대중을 면회 가는 이희호 여사의 모습(1978년) 등 사진 자료 2장도 공개된다.
이희호여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3·1민주구국선언사건은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김대중, 함석헌, 윤보선 등 당시 민주세력을 대표하는 인사 10명이 서명한 ‘민주구국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유신정권은 긴급조치 9호 등을 통해 독재 정치를 강화하고 있었고, 반독재 민주화 세력은 크게 위축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민주화운동의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김대중 등 민주 세력 지도급 인사들이 공동행동에 나섰고, 선언 발표 이후 김대중을 포함한 주요 관계자들이 구속·입건됐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에서도 큰 관심을 받으며 유신정권의 강압적 통치에 대한 비판 여론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서울대병원 감옥병동에서의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
김대중은 1976년 3월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뒤 1977년 징역 5년형이 확정돼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이후 1977년 12월 19일 서울대병원 감옥병동으로 이송됐으며, 대외적으로는 신병 치료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됐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감옥병동은 진주교도소보다 더 열악한 환경이었다. 햇볕을 볼 수 없었고, 집필과 운동, 서신 수발이 허가되지 않았다. 김대중은 이곳에서 보낸 10개월을 매우 끔찍하고 괴로운 시간으로 회고했다.
이번에 공개된 1978년 9월 25일자 서한에서 이희호 여사는 자신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복역 중인 김대중의 처”라고 밝히며, 병원 수감이 치료 목적이 아님에도 장기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병원 수용은 불법이오며 국고의 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쓰고, “법에 따라 정당하게 복역할 수 있도록 처리 환소해주시기를 앙망합니다”라고 호소했다. 앞서 9월 1일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한 이감신청서에서도 행형법 조항을 근거로 환소 조치를 요구하며, 동일 사건 관련자들이 석방된 상황에서 김대중만 장기간 병실에 수감된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희호여사가 이선중법무부장관에게 보낸 이감신청서
함께 공개된 서울대병원 감옥병동 구조도에는 교도관 배치 위치와 면회 방식, 창문 봉쇄 상태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는 병원 수감이라는 형식과 달리 밀폐된 공간에서 강도 높은 통제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이희호 여사가 작성한 서울대병원 감옥병동의 구조
박명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장은 “이번에 공개하는 자료는 유신정권 시기 민주화운동 인사들에 대한 인권 탄압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1차 사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을 경계한 정권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민주화운동가이자 여성인권운동가로서 이희호 여사가 주도적으로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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