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미세먼지 줄어든 게 기후위기에는 안 좋은 일이 된 이유[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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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대오염의 시대
정선화 지음
심심

세계 어느 나라든 중·고교 과학교육은 ‘정답이 분명한 세계’를 전제한다. 문제풀이 과정은 명징하고, 결론은 확정적이다. 이러한 경험은 실제 과학적 판단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리라는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전제조건 없이 완벽하게 딱 떨어지는 결론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진실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도 있지만, 마음으로는 아주 가끔만 받아들이곤 한다.

『대오염의 시대』는 그 괴리가 유독 넓은 환경오염 문제를 다룬다. 지은이는 약학을 전공한 뒤 30년 가까이 환경 분야 공직자로 재직해 왔고, 재직 도중 유학해 위해성 평가도 공부했다. 우리나라 환경정책에 위해성 평가 체계를 본격 도입한 1세대라고 한다. 현직 공직자라는 위치 때문인지, 지은이는 자기 입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체계적으로 다양한 정보와 관점을 소개하고 대비시킨다. 덕분에 환경오염의 해악을 줄이려는 노력들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표피적 반응을 넘어 무엇을 따져보는 것이 필요한지 생각의 폭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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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의 영향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올해 첫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된 22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이 희뿌연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6.2.22/뉴스1

환경 문제를 둘러싼 과학적 사실들은 단선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차원의 연구가 각기 다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위해성 평가는 위험 징후가 나타나는 농도에 안전계수를 곱해서 허용량을 정한다. 실험동물과 인체의 차이, 개인차, 어린이와 임산부 등 취약집단에 대한 고려 때문에 안전계수를 높게 잡는 일은 타당하다. 반면 독성연구는 독성이 유해 반응이 분명히 나타나는 농도를 규명한다. 유해하다고 잘못 지목당했던 사카린의 사례처럼 잘못된 선행 연구가 기준이 되면, 극복될 때까지 많은 자원과 시간이 소모되며 여러 폐해가 발생한다.

성공적인 대처 때문에 가려졌던 문제가 새로이 드러나기도 하고, 과거에는 적절했던 대책이 쓸모없어지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미세먼지가 감소하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가중됐다. 미세먼지들이 햇빛을 반사해서 기온을 냉각하는 효과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몇몇 유럽 국가들은 수돗물 불소화 정책을 폐기했다. 치아 건강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덕분에 수돗물 불소화의 편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농약과 의약품 사용 문제 역시 간단하지 않다. 어떤 화학물질이든 생산과 사용 과정에서 일정량은 환경으로 배출된다. 미량이라도 지속적으로 축적되면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항생제 잔류는 내성균 출현을 촉진한다. 때로는 체내에 잘 축적되는 물질과, 빠르게 확산되는 물질 가운데 우선 규제 대상을 골라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위험은 농도뿐 아니라 잔존성, 이동성, 노출 집단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고 사용처에 따라서도 달리 대처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걱정스럽지만, 의료용 플라스틱은 사람을 구한다.

아동이 노출되는 환경오염을 집중 정밀 모니터링하는 소형로봇이나, 더 많은 분야가 참여하는 학제적 연구 사례 등 반가운 소식들도 책에 소개된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책들도 가치 있지만, 복잡한 환경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는 사고와 판단의 큰 틀을 한곳에 모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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