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뷰 때 거짓말도...사실과 허구 사이, 우연과 환상 줄타기한 문학 거장의 문제[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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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라, 침묵이여
캐럴 앤지어 지음
양미래 옮김
글항아리
W. G. 제발트는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다. 서구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생전에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됐음에도, 그는 ‘아는 사람들만 잘 아는’ 작가로 남아있다. (제발트의 팬들은 항의할 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던 작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독창적 시각과 글쓰기로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줄을 타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다는 찬사가 있다면, 자신의 작품을 위해 타인의 기억을(때로는 타인의 작업까지) 훔쳤다는 비판도 늘 그를 따라다닌다.

테스 저레이의 작품 앞에 서 있는 막스. 테스가 촬영한 사진. [사진 글항아리]
이 책의 출발점도 거기에 있다. “이 전기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제발트가 무엇을 왜 썼는가를 묻기 위함”이라고 영국의 전기작가 캐럴 앤지어는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알게된다. 제발트의 문학적 문제가 왜 그의 전기적 문제와 섞일 수밖에 없는지를.
저자의 작업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제발트의 아내가 2001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개인사를 털어놓길 거부한 것이다. 제발트의 편지도 아내 허락 없이는 인용할 수 없어 법적 허용 범위 내에서 다른 말로 표현해야 했다. 제발트와 가장 친했던 친구, 제발트의 마지막 책을 냈던 영국인 편집자도 대화를 원치 않았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지난한 길을 걷는다. 제발트가 태어나고 자라고 활동한 독일과 영국의 모든 곳을 찾아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수백 명에게 말을 건다. 작품들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가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짚어낸다.

'호밀맡의 파수꾼'에 나오는 홀든 콜필드처럼 야구모자를 쓴 막스, 즉 W.G. 제발트. [사진 글항아리]
그 과정에서 저자는 과거 자신과의 인터뷰에서 제발트가 거짓말을 한 걸 알게 된다. “독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믿어주길 바랬고 그것을 보증하기 위해 나를 이용”한 것이다. 제발트는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끌어온 뒤 가공해 우연과 환상이 절묘하게 결합한 서사를 완성시킨다. 필요하다면 (닮았지만 관계없는) 사진과 신문기사, 각종 기록물들을 사이사이 끼워넣기까지 한다. 독자들은 전기 또는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뒤틀린 채 빼앗긴 실존인물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피할 수는 없다. 단편 '막스 페르버'처럼 실존인물의 항의를 받고 제목을 바꾼 경우도 있지만, 제발트는 대부분 무심한 태도를 취했다.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의 독문과 교수로도 재직했던 제발트는 창작법을 강의하면서 “작품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훔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앤지어는 그것이 제발트가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하는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그가 무엇보다 공감한 것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이었다. 제발트는 “자신과 전적으로 무관한 일에도 생존자의 죄책감을 느끼며 고통받은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저자는 썼다.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유대인이 등장하는 이유다. 제발트는 2차 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했던 아버지를 혐오했다. 독일색이 강하다는 이유로 빈프리드 게오르크(W. G)라는 이름도 버리고 ‘막스’를 사용할 정도였다.
저자는 제발트가 죽기 한 달 전에 했던 강연 얘기를 결론처럼 들려준다. 제발트는 청중들에게 “문학의 이점이 무엇일까” 묻는다. “사실의 재현을 넘어, 학문을 넘어, 문학만이 회복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희생자에 대한 보상은 불가능하므로, 그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라도 보여주고자한 시도가 곧 제발트가 글을 쓴 이유라는 것. 그것은 제발트를 독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작가로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히틀러를 피해 달아났던 유대인의 자녀이기도 한 저자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제발트를 용서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당신이 틀렸어요. 진실을 알면 사람들은 당신 이야기를 덜 믿는 게 아니라 더 믿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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