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불국사 대웅전에 콘크리트 바를 뻔…'박정희 시주'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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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의 사소한 발견
박정희 정부 당시인 1971년 경주 불국사 보수공사 전경. 사진 국가기록원
건물도 늙는다. 나이 먹으면 어깨 결리고 허리 쑤시고 머리숱 빠지는 것처럼 건물도 뒤틀리고 갈라지고 칠이 벗겨진다. 전통 목조 건물은 더하다. 때가 되면 기와를 새로 올리고 단청도 덧칠해야 하고 심해지면 서까래, 대들보, 기둥까지 손본다. 국가가 나서서 보호하는 문화재(국가유산)라면 더욱 그렇다.
강혜란의 사소한 발견
최근 국가유산청은 8세기에 창건된 경주 불국사의 대웅전을 올해 안에 해체·보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체’라는 말에 지레 놀랄 수 있지만, 건물 보수하는 입장에선 지붕 기와만 걷어내도 해체다. 불국사는 통일신라의 재상 김대성이 지었지만 대웅전 건물은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때인 1765년에 중창된 것이다. 크고 작은 보수가 꾸준했다 해도 250여년 된 건물이다. ‘종합정밀검진’을 통해 어디가 골병 들었는지, 수술은 어디까지 할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2025년 중점 관리 대상 문화유산 모니터링 결과 경주 불국사 대웅전(보물)이 ‘보수’가 필요한 E등급으로 분류됐다. 국가유산청은 연내 해체 보수 공사를 한다는 계획이다. 사진은 불국사 대웅전. 사진 국가유산청
오랜만에 돌아온 [사소한 발견]이 대웅전 보수공사를 계기로 불국사 수리의 역사를 들여다봤다. 수학여행으로 불국사를 방문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실텐데, ‘1300년 전 신라의 고찰이 이렇게 남아있구나’ 감탄했다면 잘못 짚으셨다. 불국사는 고려 때 여러번 중수를 거쳤다가 조선 임진왜란 때 깡그리 타버렸고 그 후 다시 지은 것도 조선 후기에 대부분 퇴락했다. 이를 일제 조선총독부가 수차례 보수했고, 새롭게 ‘재건축’한 건 1970년대 박정희 정부 때다. 지금 우리가 보는 불국사의 모습 대부분이 당시 이뤄진 보수 복원 덕분이다.
먼저 불국사 대웅전에 들른다면 ‘사소하게 발견’할 수 있는 한가지. 석가모니불을 모신 불전을 마주하고 왼쪽 벽 높은 곳을 유심히 보라. 천장의 연등에 가려 잘 보이진 않겠지만 사진과 같은 나뭇판이 있다. 한자로 ‘朴正熙 閣下(박정희 각하)’ ‘南北統一 世界平和(남북통일 세계평화)’ 등이 씌어 있다. 1967년이라는 연도 표시도 있다. 불국사박물관의 차윤정 학예실장에 따르면 대통령 박정희를 대시주로 기록한 ‘불국사대가람단청시주기’라고 한다. 약 60년 전에 걸었던 시주 표식인데 지금도 건재하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 불국사 대웅전 등 주요 전각의 단청불사를 시주하면서 남긴 ‘불국사대가람단청시주기’. 한자로 ‘朴正熙 閣下(박정희 각하)’ ‘南北統一 世界平和(남북통일 세계평화)’ 등이 씌어 있다. 사진 불국사박물관 차윤정 학예실장
불국사 대웅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주한 1967년은 그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63년 대통령에 취임해 첫 임기를 수행하던 무렵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초기부터 불국사의 수리 복원 필요성에 대한 여론은 있었지만 이제 막 발돋움하려는 가난한 개발도상국에게 그런 여력은 없었을 것 같다. 그런 시점에 박정희는 불국사에 대한 대규모 단청불사를 시행할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당시 이를 수행한 이는 근현대 불교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금용 일섭(金蓉 日燮,1900∼1975) 스님이다. 일섭 스님은 간곡한 건의를 통해 애초 예정됐던 대웅전뿐 아니라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안양문 등까지 단청을 새로 해 입혔다.
박정희의 관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69년 석굴암을 성공적으로 보수한 대통령 박정희는 대대적인 불국사 복원 및 중창을 지시했다. 먼저 ‘불국사복원실행계획서’를 작성하고, 불국사복원위원회를 발족했으며, 경제인 간담회를 개최하여 경제인들로부터 복원에 소요되는 비용을 모금했다. 불국사 복원을 추진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고증 자료를 수집하고, 복원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문화재관리국을 중심으로 학계의 전문가를 포함한 불국사 고증위원회를 열었다. 경내를 발굴하고, 일본과 국내 사찰의 목조건물을 조사하여 전각 건설의 참고 자료로 삼았다.”
(2025년 10월 동국대 학술원 포럼, 강희정 서강대 교수 ‘현대의 석굴암 보수공사와 불국사 복원’ 중에서)
1961년 경주 불국사 전경. 사진 국가기록원
1969년 경주 불국사 전경. 사진 국가기록원
1974년 경주 불국사 전경. 사진 국가기록원
지금 번듯하게 들어서 있는 불국사 전각들은 대부분 이때 보수·복원됐단 얘기다. 무설전·비로전·관음전·좌경루와 같은 건물들과 대웅전 및 극락전 일대의 회랑들 말이다. 사실상 석가탑·다보탑·청운교·백운교 같은 석조 유산과 대웅전·극락전 등 중심 건물 외에 나머지 전각은 박정희 정부 때 ‘재건축’된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이 당시에도 경내를 발굴하고 신라 시대 창건 당시 기단과 가람 배치에 바탕해서 최대한 옛 모습을 구현하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고증의 한계로 인해 “불국사의 전각에는 고려, 조선 전기,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 다양하게 구현됐다”(강희정 교수)는 평가다.
1970년대 불국사 공사가 이뤄지기 전 무설전터. 사진 불국사박물관(촬영 이정모)
1970년대 이뤄진 불국사 무설전 공사 당시 모습. 사진 불국사박물관(촬영 이정모)
당시 복원과 관련한 뒷얘기 하나. 차윤정 실장이 최근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박사논문 ‘근세 이후의 불국사 연구’에 적시한 바에 따르면 “불국사를 복원함에 있어서 초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 정책으로, 정부는 복원위원회에 불국사 복원을 콘크리트로 할 것을 주문하였다.”
‘목조 건물 복원에 웬 콘크리트?’ 하겠지만 당시만 해도 튼튼하게, 빨리빨리 복원하는 게 우선이었다. 6·25 폭격으로 소실됐던 광화문 문루가 1968년 복원됐을 때도 콘크리트를 썼다(그 후 2006년에야 목조로 재건됐다). 박정희 정부의 명을 받든 문화재전문가들은 일본에서 콘크리트로 복원한 오사카 사천왕사를 집중 조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 사례에서 나타난 정서적·기술적·역사적인 문제점들을 보고했고 결국 불국사 복원은 콘크리트가 아닌 목재 복원으로 정부 정책이 바뀌었다(차윤정, 같은 논문). 콘크리트 불국사,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나.
박정희 대통령은 왜 그렇게 불국사에 관심을 가졌을까. 더 깊은 민족철학·정치역학적 셈법은 빼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건 경주를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발전시키고자 한 의지의 일환이다. 그의 집권 당시 1971년 작성된 ‘경주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지금의 경주 모습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9년 개장한 보문단지 내 대한민국 관광역사공원은 대한민국 1호 관광단지다. 이 시기 박정희는 직접 그림까지 그려가며 경주 관광코스를 제안했다(차윤정, 같은 논문).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경주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며 직접 그림까지 그려가며 제안한 경주 관광코스 지도 메모. 차윤정 서울대 박사논문에서 재인용.
여하튼 이렇게 불국사 수리가 완료됐다. 박정희는 1969년 기공식에 직접 참석했을 뿐 아니라 공사 기간 및 완공 후에도 수차례 들러 세세한 걸 챙겼다. 강희정 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1973년 복원이 완료되자 정부는 불국사를 ‘신라 시대 영광의 완전한 부활’이라고 홍보했다. 불국사 복원은 완벽한 학술적인 고증에 근거한 사업은 아니었지만,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민족문화의 재건‘,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을 내세운 국가 프로젝트이자 문화유산 복원의 전환점이 된 역사적 사업이었고, 경주 관광산업의 본격적인 성장과 함께 불국사는 한국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강희정, 같은 발표문)

1973년 경주 불국사 대웅전 전경. 사진 국가기록원
1300년 역사를 이어온 불국사 경내엔 국보 6건, 보물 5건이 있다. 국보 6건은 다보탑, 석가탑, 연화교·칠보교, 청운교·백운교,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이고 보물 5건은 사리탑,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석조(石槽, 돌로 된 저장고), 대웅전, 극락전이다. 이 중에 목조건물은 조선 영조 때 지어진 대웅전과 극락전뿐이다. 두 건물은 조선 후기 불국사 전체가 퇴락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건재했고, 일제 조선총독부의 수리·보수에 힘입어 불국사의 위용을 지켜갈 수 있었다. 박정희 정부 대대적인 수리·복원 후 약 반세기만에 ‘종합검진’을 받게 된 대웅전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발전된 문화유산 보존·복원 실력에 힘입어 건강을 되찾을 수 있길 기원한다.
“박사논문을 쓰면서 새삼스러웠던 게 불국사 수리·재건의 수백년 역사에서 ‘전통 존중’이 면면히 이어져왔단 사실이에요. 예컨대 17∼18세기 불국사 재건 땐 창건 당시에 없던 불전이 신축되기도 하고 불상이나 불화를 새로 조성하는 등 조선 후기에 맞는 변화가 있긴 했죠. 그럼에도 초석이 있던 자리에 회랑을 복원하는 등 신라 당시의 가람 배치 구조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요. 재건된 건물도 신라 때 기단과 초석 위에 그대로 올려 18세기 불전과는 다른 고대의 평면 구도거든요. 이렇게 면면히 이어져온 불국사인만큼 이번 보수도 전통을 존중하되 첨단기술을 접목시켜 천년 유산이 보존되길 바랍니다.”(차윤정 박사)
문화예술 곳곳의 사소하지만 의미심장한 뒷얘기들을 이따금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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