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시인 꿈꾸다 '신의 대리인' 됐다…하메네이 비참한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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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AFP=연합뉴스
“모두가 읽어야 하는 지혜의 책”
1993년 9월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한 공개면담 중 프랑스 소설 『레 미제라블』을 극찬하며 했던 말이다. 작가 빅토르 위고에 대해선 "현자(Hakim)"라고 칭송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하메네이는 이슬람 원리주의, 신정정치 독재 등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한때 시인을 꿈꿨으며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도 유명했다. 젊은 시절 레프 톨스토이와 빅토르 위고 등의 서구 문학에 깊이 매료됐던 그는 집권 후 매년 자신의 집무실에서 시 낭송회를 열고, 시인들의 작품에 대해 피드백을 줄 정도였다.
문학청년의 꿈과 상처
하메네이는 1939년 이란 북동부 마슈하드(Mashhad)에서 성직자 집안의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저녁으로) 빵과 건포도만 먹을 때가 많았다"고 기억하는 가난한 가정이었다. 보수적인 성직자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5세가 되자 신학 공부를 시작하게 했고, 19세에는 명문 쿰(Qom) 신학교로 보냈다.
신학교 시절의 하메네이. 사진 하메네이 공식 홈페이지
그렇다고 젊은 하메네이가 종교적 열정으로 가득했던 건 아니다. 그는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부친을 어려워했고, 문학을 '해방구'로 삼았다. "젊은 시절 수많은 소설과 시집을 읽었고, 문학 모임에서 밤새 토론하며 열정적인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한때 시인을 꿈꾸기도 했지만, 모임에서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유명 시인으로부터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권고를 듣기도 했다.
독재자는 권력을 젊은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사용한다. 미술 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던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뒤 명화를 수집하고 일부에 대해선 '퇴폐적'이라며 퇴출했던 것처럼 하메네이 집권 후 이란의 몇몇 유명 시인들은 보안 기관의 사찰 대상이 되고, 노령연금에서 제외됐다. 심리학자들은 실패에 대한 무의식적 보상 매커니즘이라고 해석한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1979년 이란 혁명이 성공한 뒤, 하메네이를 미래의 최고지도자로 거론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호메이니의 핵심 '이너서클 3인방', 호세인 알리 몬타제리, 모하마드 베헤슈티, 알리 아크바르 라프산자니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김주원 기자
하메네이는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입지를 다져갔다.
1981년 대통령에 오른 뒤,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자신의 전선 시찰 등을 적극 홍보하면서 정적을 만들지 않고 각 정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1986년 후계자 '1순위'였던 몬타제리가 독자 세력화를 도모하다가 축출될 때는 침묵을 지켜 보신했다.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했을 때 기회가 왔다. 정국의 키를 쥔 국회의장 라프산자니가 "생전에 호메이니는 하메네이를 후계자로 지목했다"고 주장하며, '킹메이커'로 나선 것. 하메네이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실권을 쥐겠다는 계산이었지만, 완전한 오판이었다.
라프산자니가 서방과의 관계 개선과 경제 개방 등 실용주의 노선을 꺼내 들자, 하메네이는 반미(反美), 체제 수호 등 강경 보수 노선을 앞세워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포섭했고, 사법부와 의회까지 장악하며 '1인 통치'를 완성해갔다. 라프산자니는 2013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후보 자격이 박탈됐고, 2017년 1월, 수영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전선을 시찰하는 하메네이. 중앙포토
'트럼프'라는 벽
그런 하메네이도 미국을 넘진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민주당 정부와 달리 강력한 '채찍'으로 일관했다. 일방적인 핵협정 파기와 경제 제재로 이란 경제는 최악의 위기로 치달았다. 리알화 가치는 10년 만에 44분의 1로 쪼그라들었고, 물가는 1년 만에 40% 올랐다. 상인들까지 가세한 대규모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강경 진압으로 수 만명의 희생자가 나오자 외부의 적 앞에서 내부 결속력은 더할 수 없이 이완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왕정의 압제에서 민중을 구하겠다며 혁명에 나섰던 문학 청년은 결국 최악의 철권 독재자로 이름을 남긴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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