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송원섭의 와칭] 천만 관객 '왕사남', 왜 새롭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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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사진 쇼박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줄여서 ‘왕사남’이 마침내 천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그 반향은 그야말로 ‘왕사남 현상’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영화의 배경이자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이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세조의 능인 광릉이 댓글 테러를 당하고, 도서관과 서점에서 단종-세조 관련 도서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흥행 이유에 대해 지난번 글에서 ‘민초의 의리’라는 해석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유교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주공 단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의미, 그리고 그 유학의 가르침을 목숨처럼 숭상했던 사대부들도 절의를 지키지 못한 나라에서 묵묵히 인간의 의리를 지킨 서민들의 모습. ‘왕사남’이 담고 있는 이런 분위기가,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2026년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과 맞물려 큰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것이 아니겠냐는 이야기였죠.
(관련기사: [송원섭의 와칭] '왕사남' 500만 관객의 이유는 '민초의 의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6230 )
그런데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왕사남’의 이런 이야기가 2026년의 절대다수 관객들에게는 꽤 새로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희생된 어린 조카 단종’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대략 지난 50년간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단종-세조 시대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단종의 억울함 보다는 세조의 시각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내용이었던 겁니다.

영화 '단종애사'(1963)에서 세조 역을 맡은 배우 이예춘. 당대 최고의 악역 배우로 명성을 날린 이예춘은 배우 이덕화의 부친이기도 하다. 사진 영화진흥공사.
이광수 대 김동인, '단종애사' vs '대수양'.
세조의 즉위 과정을 그려낼 때 단종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는가, 아니면 세조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것인가. 이 두 시각의 대립은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1928)와 김동인의 ‘대수양’(1941)에서 시작합니다.
‘단종애사’는 제목 그대로, 단종의 슬픈 사연을 안타까움을 담아 그려냅니다. 이 소설이 나온 1928년의 시점에서 이광수는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작가였죠. 독자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강제로 왕권을 빼앗긴 단종에게서 우리 민족의 모습을 보았고, 단종을 핍박하는 수양대군과 한명회, 신숙주에게서 일제의 총칼과 매국노들를 연상했던 겁니다. 그래서 당시 신문 연재소설이던 ‘단종애사’는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 알고 있듯, 뒷날의 이광수는 이때의 신념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한편 김동인의 ‘대수양’은 일제 식민 통치가 훨씬 강화된 1941년 3월부터 12월까지 ‘조광’지에 연재되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의 무능이 가져올 왕권의 추락을 걱정하는 사심 없는 보호자로, 김종서는 권력욕에 가득한 노회한 악당으로 그려집니다.
연재가 끝날 무렵인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해 태평양 전쟁을 시작했죠. 당시 총독부 주관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이었던 김동인은 같은 시기 소설 ‘백마강’을 통해서는 내선일체(내지, 즉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주장)의 홍보에 앞장서고 있었는데, 과연 이 분위기에서 세조 미화를 통해 무엇을 주장하려 했는지도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합니다.

영화 '나를 버리시나이까'에서 어리고 무능한 단종으로 출연한 당대의 아역 스타 김정훈. 사진 영화진흥공사
영화 속 '단종의 비극'과 '성군 세조'
이후 해방과 6.25를 거쳐 대한민국은 분단과 전쟁이라는 약소국의 설움을 겪게 됩니다. 이 시기 이광수 원작 소설 ‘단종애사’는 1955년과 1963년, 두번이나 영화화되며 극장을 눈물 바다로 만듭니다. 그런데 1963년 작을 연출한 이규웅 감독은 정 반대의 시각에서 두 편의 영화를 더 만듭니다. 바로 1970년작 ‘세조대왕’과 1971년작 ‘나를 버리시나이까’입니다.
1963년작 ‘단종애사’에서는 당대 최고의 악역 배우 이예춘(이덕화의 부친입니다)이 수양대군 역을 맡은 반면, ‘세조대왕’에서는 신영균, ‘나를 버리시나이까’에서는 최무룡이라는 톱스타들이 같은 역을 맡았습니다. 캐스팅만 봐도 알 수 있듯 뒤의 두 영화는 세조 집권의 필연성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때는 3선 개헌과 유신을 향해 달려가던 박정희 정권의 전성기죠. 나라를 지키기엔 턱없이 어린 단종과 주위의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권좌에 오른 뒤 많은 치적을 쌓는 '성군' 세조. 이 선명한 대비는 장기집권을 위한 정권 미화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1984년 MBC TV 드라마 '설중매'에서 한명회 역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정진. 사진 MBC
세월이 흘러 1984년, MBC TV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 중 ‘설중매’는 세조의 정권 탈취 과정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큰 화제를 일으키죠. ‘대수양’과 마찬가지로, 양심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수양대군이 ‘김종서 같은 야심가들’로부터 왕권을 수호하는 내용이 그려집니다. 때는 전두환 대통령 집권 4년째인 제5공화국 시절. 많은 사람들이 “단종이 불쌍하긴 하지만, 세조가 또 정치는 잘 했네”라는 시청 소감을 얘기했지만, 또 다른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 속 세조의 모습에서 어렵지 않게 12.12 쿠데타를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세조 중심의 역사 서술이 진행되다 보니 세조의 측근들도 긍정적으로 묘사되는데, 이때 한명회를 연기한 무명 배우 정진이 이 작품을 통해 스타덤에 오릅니다.
세조에 중심을 둔 해석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1998년 KBS ‘왕과 비’, 2012년 JTBC ‘인수대비’는 모두 정하연 작가의 작품인데, 이 작품들도 세조의 집권 필연성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IMF와 외환위기의 시대,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선호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해석의 영향은 2013년작 영화 ‘관상’까지 이어집니다.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관상가 내경 역할의 송강호지만, 많은 사람이 수양대군 역의 이정재를 주인공으로 기억할 정도로 잔혹하지만 강력하고 호방한 수양대군이 돋보입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평가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은 대략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단종과 수양대군의 입장에 대한 묘사는 그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진 시대의 배경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대한민국 건국 이후, 수양대군을 미화하는 콘텐트들은 각각 그 시대의 두드러진 욕망을 투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둘째는 그 결과, 1970년대 이후 일반 관객/시청자들은 단종의 입장에서 단종애사를 그린 작품을 보기 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굳이 찾자면 2011년작인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 정도가 있지만, 정통 사극이라기엔 소설 ‘금계필담’에 근거한 팩션 사극이라, 단종 이야기가 초반 배경으로 그려지는 정도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영화 속 광천골 촌장 엄흥도는 처음에는 유배 온 고관대작이 마을에 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기대한다. 가난한 마을에 금맥이 터지듯 변화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사진 쇼박스
이런 측면에서 보면 2026년의 ‘왕사남’은 한편으론 매우 익숙한 이야기지만, 또 다른 면에선 신선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지난 50년간 그려졌던 진취적이고 강력한 지도자 수양대군의 이야기가 뒤로 미뤄지고(아예 등장하지 않죠), 단종의 비극과 사람들의 동정이 오랜만에 전면에 부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는 지금까지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엄흥도라는 인물을 통해 양반 사대부들이 지키지 않았던 ‘인간의 도리’를 민초들이 지켜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죠. 2년 만에 한국 영화계에 다시 천만 관객의 시대를 가져온 ‘왕사남 현상’의 배경에는, 바로 이런 새로운 시선의 역할이 절대 작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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