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단종과 슬픔 나누러 왔어요"…1000만 영화가 바꾼 영월 풍경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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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니 단종이 실제로 어떤 풍경을 마주했을지 궁금해졌다. 직접 와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고립된 느낌이라 더 슬퍼졌다.”
지난달 25일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위치한 청령포에서 만난 이다인(25)씨는 강 건너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와 함께 영월을 찾았다는 박서연(26)씨는 “영화가 끝나고 바로 엄마한테 영월에 가자고 말했다. 단순히 촬영지를 보러 오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영화 속 장면이 겹쳐 보이는 그 자리에 직접 서 보고 싶었다”고 했다.
개봉 31일만에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영월군을 살려냈다. 삼일절 연휴에만 영월군 인구수(3만6000여명)보다 많은 9만 명이 영월군을 찾았다. 단종의 유배지라는 역사적 장소가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다시 호출되면서, 젊은 관객들이 그 비극의 흔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영월이 영화로 사람을 모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영화 ‘라디오 스타’ 흥행 당시에도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렸다. 당시 영화는 읍내 전체를 오픈 세트장처럼 활용해 영월의 일상을 화면에 담아냈다. 별도의 세트를 짓지 않고 터미널 앞 청록다방과 곰세탁소, 사팔철물점 등 그 주변 상점들까지 실제 공간을 그대로 촬영에 사용했다. 지역의 생활 풍경은 배경을 넘어 이야기의 일부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며 일상의 정취와 추억을 되새기는 흐름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최근 2030 사이에선 콘텐트 감상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배경을 직접 확인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인물이 서 있던 자리를 찾아 같은 방향으로 풍경을 바라보고, 기록을 대조하며 서사를 자신의 경험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스크린 속 감정을 현실에서 재확인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과거의 향수형 방문과는 차이를 보인다.
지난 2월 4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누적 관객 수가 900만명을 넘어서며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진 쇼박스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강원도 영월을 그린다.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낯선 땅으로 유배된 어린 왕 단종(이홍위), 그리고 유배지인 광천골 촌장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의 애달픈 서사가 핵심이다. 영화는 570여 년 전 청령포의 풍경을 화면에 담기 위해 이미 관광지가 된 청령포 대신 동강 지류를 새로 물색해 이곳에 촬영 세트장을 지었다. 촬영 여건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장항준 감독이 다른 지역이 아닌 강원도를 고집한 이유는 “영월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었다. 이처럼 영월의 자연을 그대로 담아낸 장면이 있었기에 관객들의 감정도 실제 현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돌에서 시작된 유배의 풍경
영월 방절리 서강가 절벽에 있는 선돌. 단종이 청령포로 가던 도중 선돌을 보고 “우뚝 서 있는 것이 마치 신선과 같다”고 하여 선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사진 이지영 기자
영월에는 단종의 슬픔이 남아있다. 2030이 영월을 찾는 건 슬픔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영월 방절리의 선돌은 단종의 유배길 초입에 놓인 상징적 장소다. 서강 절벽 위에 솟은 높이 약 70m의 기암은 수직 절리와 하천 침식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단종은 이 바위를 보고 “우뚝 선 모습이 신선과 같다”고 말해 ‘선돌(신선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570여 년 전 한양을 떠나 영월로 향하던 어린 왕이 마주했을 물길이라는 점에서, 풍경은 단순한 절경을 넘어선다.
청령포, 유배의 물길을 건너다
선돌에서 차로 7분 거리,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닿는다. 영화에서 청령포는 ‘오소리도 길을 잃고 너구리도 환장해 졸도하는 오지의 섬’으로 묘사된다. 삼면이 깊은 강물로 가로막히고 뒤편은 육육봉의 층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이곳은 말 그대로 ‘육지 속의 섬’이다. 영화 속에서 단종은 뗏목에 실려 이곳으로 들어오고, 물에 빠지는 장면은 궁궐 밖 세상에 내던져진 왕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은 수시로 관광객을 실은 도선이 오간다. 평온해 보이지만 단종에게 이 짧은 물길은 사실상 돌아갈 수 없는 경계였다.
배에서 내려 자갈밭을 지나면 소나무 숲이 이어진다. 단종이 그 곁에 기대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청령포의 상징 관음송(천연기념물 제349호)과 단종이 머물렀던 단종어소가 자리한 숲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철저히 고립된 공간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곳을 완전한 절망의 공간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충신들이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 뒤 죄책감과 무력감 속에 갇혀 있던 단종은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조금씩 숨을 고른다. 권좌를 잃은 자리에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더는 아끼는 이들을 잃지 않겠다고 조용히 다짐하는 순간도 이곳에서 그려진다.
하지만 현실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단종은 이곳에 머물다 여름 홍수 위험으로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청령포는 삼면이 깊은 강물로 가로막히고 뒤편은 육육봉의 층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육지 속의 섬’ 모습이다. 영화에서 단종은 뗏목 위 가마에 실린 채 청령포로 향한다. 지금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도선이 수시로 오가고 있다. 사진 쇼박스, 이지영 기자
청령포는 단종이 머문 시간만큼이나 긴 기억을 품고 있다. 영화가 그 시간을 한 인물의 서사로 풀어냈다면, 관객들은 이제 그 장면을 실제 풍경 위에 겹쳐 본다. 단순한 관람을 넘어, 이야기가 놓였던 자리를 확인하려는 움직임이다. 영월군 관계자는 “영화 흥행 이후 청령포 방문객 중에는 영화 대사를 인용하거나 단종의 유배 경로와 역사적 배경을 미리 공부해 오는 젊은 층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해지는 ‘노산대’와, 아내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았다는 ‘망향탑’도 꼭 봐야하는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단종이 청령포에서 머물던 단종어소. 그리고 청령포의 상징인 관음송과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기 위해 세운 금표비. 사진 이지영 기자
장릉, 복위된 이름
영월의 여정은 단종이 잠든 장릉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소나무 가득한 언덕을 오르면 단정한 봉분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조 치세에는 능호조차 얻지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했지만, 숙종 대에 복위되며 비로소 ‘장릉’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장릉은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조선왕릉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노산군(단종)이 영월에서 죽었다’는 단 한 줄의 기록만 남아 있어 단종의 죽음과 관련한 여러 가지 기록이 전해진다. 영화는 『연려실기술』 등 야사에 기록된 이야기와 상상력을 가미해 단종의 최후를 극적으로 재현하고, 엄흥도가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상영관을 나선 뒤에도 그 장면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단종이 잠든 장릉. 세조 치세에는 능호조차 얻지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했지만, 숙종 대에 복위되며 비로소 ‘장릉’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장릉은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조선왕릉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이지영 기자
역사 기록 속에서 짧게 언급됐던 단종의 마지막을 영화가 구체적으로 그려낸 지점에 대한 호평도 이어진다. 청령포로 향하는 배에서 만난 정현중(28)씨는 “다들 영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평일인데도 저처럼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며 “영화가 제대로 치르지 못한 단종의 장례를 570년 만에 성대하게 치러준 느낌이라는 글을 봤는데 읽고 나니 공감이 됐다. 그래서 더 청령포에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백 년 전 인물에 대한 평가가 오늘의 언어로 다시 쓰이는 현상은 콘텐트가 역사적 공간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방식이 어떠한지를 잘 드러낸다. 장릉 방문자 리뷰에는 “영화 보고 찾아오니 더 마음이 먹먹해졌다”, “단종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는 글이 이어진다. 반면 세조가 잠든 남양주 광릉과 천안 한명회 묘역 등의 온라인 공간에는 비판적 반응도 적지 않다.
금맥과 복, 그리고 다시 찾은 이름
영화 속 광천골 촌장 엄흥도는 처음에는 유배 온 고관대작이 마을에 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기대한다. 가난한 마을에 금맥이 터지듯 변화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사진 쇼박스
영화에서 광천골 촌장 엄흥도는 유배 온 인물이 마을에 복을 가져다주길 기대한다. 가난한 마을에 금맥이 터지듯 변화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한양에서 내려온 이는 고관대작이 아니라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선왕이었다. 마을의 기대는 순식간에 어긋났고, 단종의 마지막 시간은 결국 역사 속 비극으로 남았다.
그로부터 57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서사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유배 온 양반이 다시 돌아가면 마을이 잘 된다더니, 영월에 관광객이 몰리는 걸 보니 촌장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역사 속에서 화(禍)로 남았던 유배가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오늘의 방문으로 연결되는 장면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시선이다. 젊은 관객들은 이 겹침을 단순한 흥행 효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극의 공간이 다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장면 자체를 또 하나의 서사처럼 읽는다.
이런 해석과 공감은 실제 이동으로 이어졌다. 영월군에 따르면 2월 한 달 동안 청령포를 찾은 방문객은 3만822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763명)의 약 8배에 달했다. 단종의 무덤인 장릉 역시 지난달 2만6578명이 방문해 지난해 같은 기간(2917명)보다 약 9배 늘었다.
‘왕과 사는 남자’ 900만 관객 돌파 기념 포스터. 왕위에서 쫓겨나 청령포로 유배된 이홍위가 강가에 홀로 앉아 쓸쓸히 물장난치는 장면을 담았다. 사진 쇼박스
영월군이 더 주목하는 건 숫자 그 자체가 아니다. 영월군 관계자는 “최근에는 단체 관광보다 개별 방문 비중이 높고, 영화 속 장면과 역사 기록을 연결 지어 보려는 젊은 층이 많다”고 말했다. 풍경을 소비하는 관광이 아니라, 서사를 따라 이동하는 방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제 젊은 관객들에게 영월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영화로 재조명된 단종의 시간을 체감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스크린에서 시작된 몰입이 실제 방문으로 이어지면서, 콘텐트가 역사적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스크린의 여운, 봄의 축제로 피어나다
영화가 불러낸 단종의 이름은 이제 영월의 봄 축제로 이어진다. 올해로 제59회를 맞는 ‘단종문화제’는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영월읍 동강둔치와 세계유산 장릉 일원에서 열린다. 영월군은 영화 흥행의 영향으로 이번 축제에 역대 최대 규모의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화 제작진과 배우들도 축제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영월문화관광재단에 따르면 장항준 감독은 해외 영화제 참석 일정을 취소하고 단종문화제 개막일인 24일 영월을 방문한다. 장 감독은 이날 문화예술회관에서 단종과 관련된 특강을 진행한 뒤 개막식에도 참석할 계획이다. 출연 배우들도 축제 홍보에 나선다. 단종 역을 맡은 박지훈은 영월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단종문화제 홍보 영상을 제작해 재단에 전달할 예정이며, 엄흥도 역의 유해진과 한명회 역의 유지태 등 주요 배우들과도 축하 영상 제작 및 영월 방문 일정이 협의되고 있다.
유배와 죽음의 비극으로 남았던 단종의 이야기는, 스크린을 넘어 이제 영월의 봄 축제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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