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생명줄은 석유 아닌 물"…담수화시설 폭격 다음 최악 시나리오

본문

중동 무력 충돌 양상이 민간의 생명선인 해수 담수화 시설을 정면으로 겨누는 인프라 타격전으로 번지고 있다. 군사 기지나 원유 시설을 타격하는 것을 넘어서 지역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략을 두고 "석유가 아닌 물이 가장 위태로운 자원이 됐다"(AP통신)는 분석이 나온다.

bt50a77b14e81a6c840cc3df014e1d2f56.jpg

6일 바레인 마나마의 바레인 파이낸셜 하버 타워 상공에서 이란 드론이 요격된 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바레인 담수화 시설 파괴…물 인프라가 전장 한복판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은 곳은 바레인이다. 8일(현지시간) 바레인 정부는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해수 담수화 시설 1곳이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 나라는 지하수를 공급하는 수원이 고갈된 탓에 담수화 공장 100여 곳에 식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담수화 시설 타격이 단순한 물적 피해를 넘어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태인 이유다.

bt1b1861191703de586a40f9180f4b36a3.jpg

박경민 기자

그러나 이란은 자국의 담수화 시설이 먼저 공격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 7일 바레인의 미 공군기지에서 시작된 공격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 케슘섬의 담수화 시설을 타격해 30여 개 마을의 물 공급이 전면 중단됐다고 발표했다. 바레인의 담수화 시설 공격은 방어적 차원이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미국 중부사령부는 케슘섬 인프라 타격에 미군이 관여한 바 없다고 이란의 주장을 일축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역시 담수화 사태에 휘말렸다. 예루살렘포스트 등 이스라엘 매체는 "UAE가 8일 이란의 해수 담수화 시설을 공격했다"며 "걸프 국가 최초의 보복 공세"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UAE 정부는 해당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반박하고 있다.

단 한 번의 타격으로 마비되는 생존망

각국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은 그만큼 담수화 시설이 이 지역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요 걸프국들의 담수화 의존도는 숫자로 잘 드러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카타르와 바레인은 사실상 식수와 생활용수의 전량을 담수화에 의존하고 있다. 또 쿠웨이트는 약 90%, 오만은 약 86%, UAE와 이스라엘은 각각 약 80%, 사우디아라비아는 약 70%를 담수화에 기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동 지역이 전 세계 해수 담수화 역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담수화 시설 약 5000곳이 중동 지역의 상수도 시스템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bt963afa0ef953246bcbacd03f511b5c52.jpg

박경민 기자

문제는 주로 걸프 해안에 위치한 담수화 시설들이 중앙집중화된 거대 설비 형태로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각국은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같은 방식을 택했지만, 단 한 번의 정밀 타격이나 폭발만으로도 대도시 전체의 식수 공급망이 마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취약하다.

bt66bd573d5580557d79721029bc127af8.jpg

4일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의 석유 정제 거점에서 요격된 드론 잔해로 불이 나 불길이 치솟고 있다. EPA=연합뉴스

AP통신은 2010년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서를 인용해 "걸프 지역에서 생산되는 담수화 물의 90% 이상이 해안선에 밀집된 56개의 핵심 대형 플랜트에서 생산된다"고 짚었다. 2008년 유출된 미 외교전문은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의 경우 걸프 해안에 위치한 담수화 시설이 손상을 입는다면 일주일 내 거주민 대피를 검토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핵심 담수화 시설 몇 곳만을 골라 타격해 내부의 혼란을 유발하는 전략이, 분산돼 있는 여러 군사 기지를 때리는 것보다 더 위협적인 카드라는 얘기다.

물이 흔들리면 기름도 흔들린다

담수화 시설을 겨냥한 위협은 중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에너지 인프라와 물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해수 담수화 시설은 바닷물에서 염분과 불순물을 걸러 식수·생활용수·공업용수로 바꾸는 설비다. 높은 압력을 가해 특정 성분을 특수 분리막으로 걸러 내는 역삼투압 방식과 고온으로 가열시켜 수증기를 다시 모으는 증발 방식이 대표적이다. 어느 방식이든 상당한 전력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대규모 담수화 시설은 대형 발전소 옆에 건설된다. 인근에는 주로 정유 시설이 자리 잡는다. 원유 정제에도 물이 필요해서다.

btdcf1b950cc519510a9f294910f6fe75b.jpg

이라크가 중국 기업과 함께 추진하는 약 40억 달러 규모의 이라크 바스라 해수 담수화 플랜트 사업 부지.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이유로 유사시 에너지 생산망 전체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마이클 크리스토퍼 로우 유타대학교 중동센터 소장은 AP통신에 "사우디와 그 주변국들은 산유국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인간이 만들어낸 화석 연료 기반의 수력 강대국"이라며 "이는 20세기의 기념비적인 업적인 동시에 일종의 취약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담수화 인프라를 둘러싼 우려 역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위협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최악의 방사능 유출 시나리오

담수화에 쓰일 해수 자체의 오염 가능성도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거론된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의 유일한 상업용 원전인 남부 해안의 부셰르 원전이 공격받을 경우를 최악의 시나리오로 지목했다. 방사성 등 오염물질이 지형상 폐쇄적인 걸프 해역으로 퍼져 바닷물이 오염되면 담수화 설비가 온전하더라도 정수 가동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bt141b954397d213f5dbc6205f10ff840f.jpg

이란 부셰르 원전 건물 앞에 휘날리고 있는 이란 국기. AP=연합뉴스

부셰르 원전을 마주하고 있는 카타르는 바닷물 오염 시 3일 안에 식수 부족 사태가 닥칠 수 있다고 보고, 세계 최대급 콘크리트 저수지 15개를 구축했다. 셰이크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만 알 타니 카타르 총리는 "이란 원전 시설을 공격하면 걸프 지역에 물도, 물고기도, 아무 생명체도 남지 않을 것"이라며 "카타르는 어떤 형태의 군사적 조치도 지지하지 않고 외교적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UAE, 이란 담수화 시설 공습…걸프국 첫 보복 공격”

  • 공격 사과하더니 또 걸프국 친 이란…'중동 전쟁'으로 번지나

  • 美·이스라엘-이란, 공방 격화…핵심 시설 잇단 타격에 불길 휩싸인 중동

  • 이란 물귀신 작전…철통 이스라엘 대신 약한 걸프국 때렸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7,172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