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어르신, 빨리 약 타가세요"…공보의 절반, 내달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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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부터 오는 4월 9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의과 휴진'에 들어간 경남 고성군 삼산면보건지소. 다음 달 복무 만료를 앞둔 공중보건의사가 그간 사용하지 못한 휴가를 쓰면서 휴진에 들어갔다. 안대훈 기자
“약 빨리 타 가세요”…보건지소 운영은 벌써 ‘구멍’
지난 5일 강원 고성군 죽왕·토성면의 두 보건지소 직원들은 온종일 전화통을 붙들었다. 진료받던 주민 750명에게 “어서 약 타러 오시라”고 연락하기 위해서다. 다음 달 전역할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남은 연가를 모두 사용해 나흘 뒤(9일)부터 ‘한 달 휴진’을 앞둔 탓이다. 죽왕면 보건지소 관계자는 “어르신들 약 떨어지면 안 돼서 전화 받을 때까지 연락했다”고 전했다. 탁춘화(81) 토성면 용촌1리 노인회장은 “지소에 공보의가 없으면 속초시까지 버스 타고 가야 하는데 복잡해서 나가기 쉽지 않다”고 했다.
4100여명이 사는 경남 고성군 삼산·하이면의 두 보건지소도 전역을 앞둔 공보의 휴가로 지난 6일부터 한 달간 ‘의과 휴진’ 중이다. 두 지역엔 민간 의원이 없다. 의사를 보려면 하루 두 번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고성읍에 가거나 인근 사천시로 가야 한다. 삼산면 용호마을에 사는 하순연(86)씨는 “근방에 뱅원이 없응께 이장이 지소 쉰다꼬 마을 방송도 해따이가”라고 귀띔했다. 김경인(79) 용호마을 이장은 “급하모 지소에 먼저 와가 진찰받고 중뱅(중병)이다 싶으모 큰 뱅원으로 퍼뜩 가야 하낀데 이래 비워가 될 끼냐”고 했다.
김영옥 기자
보건소 공보의 43% 전역…‘공공의료 최일선’ 마비되나
오는 4월 9일 ‘공보의 대거 전역’을 한 달 앞두고, 이미 지역 보건·의료 현장에선 ‘공보의 공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보의들이 전역 전 밀린 휴가를 떠나면서다. 시·군·구에 있는 보건소와 읍·면에 있는 보건지소에서는 공보의가 필수 인력이다. 특히 보건지소 공보의는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마을 주치의’ 역할을 한다.
이주영 개혁신당 국회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보건소·보건지소에 배치된 공보의는 2160명이다. 전체 공보의(2551명)의 84%다. 그런데 다음 달이면, 보건소·보건지소 공보의 2명 중 1명꼴(43%)인 930명이 복무 만료한다. 민간 의료기관이 적고 1차 진료를 보건소·보건지소 공보의에 의존하고 있는 광역도의 경우 공공의료 공백 우려가 크다.
정근영 디자이너
실제 농어촌·산간벽지·도서 지역이 많은 경상·전라·충청·강원권 광역도에서 복무하는 보건소·보건지소 공보의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6%가 4월 전역한다. 수도권인 경기도에서도 보건소·보건지소 공보의 63%가 복무를 마친다.
“보건지소 순회진료는 사실상 불가능”
이미 공보의가 부족한 데다 올해 대거 공보의 전역이 예정되면서 ‘보건소·보건지소 순회진료’를 중단하는 지역도 있다. 충남 부여군은 지난해 11월 전체 보건지소 15곳 중 은산·외산·홍산·임천·석성면 5곳의 운영을 중단했다. 앞서 채용한 관리 의사들이 의료계 파업 해소로 기존 병원에 복귀한 데다 4월이면 공보의 7명 중 4명이 전역해 3명만 남게 되자, 군은 전체 보건지소를 운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충남 서산·청양도 각각 보건지소 10곳 중 5곳, 9곳 중 4곳의 진료를 중단한 상태다.
전남은 보건지소 216곳 중 절반이 넘는 126곳에 공보의가 없어, 당장 순회 진료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전남엔 섬이 많아 의료 공백 우려가 더 크다. 다만 전남도는 전남 도서 지역에 1년 차 공보의가 우선 배치돼 올해 공보의 전역 여파는 덜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충남 청양군보건의료원 의료진이 공보의 부족으로 보건지소 운영이 중단된 지역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의료원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보건지소 줄이고 원격협진 확대”…하지만 현장에선
보건복지부는 공보의 급감에 따라 ▶보건진료소 확대 ▶원격협진 또는 비대면 진료 활성화 등 지역 보건의료기관 체계 개편을 진행 중이다. 공보의가 맡는 보건지소를 줄이고, 간호사인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이 투입되는 보건진료소를 확대하겠단 의미다.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은 농어촌의료법에 따라 의료 취약지에서 간단한 응급 처치나 만성질환 관리 등 제한된 범위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6개월(24주) 교육을 이수한 간호사가 맡는다.
또 공보의와 민간 의료 기관이 간호사가 있는 보건지소·보건진료소를 찾은 환자를 전화·영상통화 등 방식으로 진료하는 원격 협진을 늘리겠다는 게 복지부 대안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우려도 나온다. 군 지역 보건지소에 복무 중인 한 공보의는 “환자를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돌발 질환이 있다”며 “뇌졸중·심근경색인데 그냥 ‘팔 한쪽이 힘이 없다’ ‘가슴이 불편하다’ 정도로 표현하신 분들이 있는데, 걷는 모습이나 어눌한 답변 등 이상한 낌새를 보고 직접 물어봐야 답하기 때문에 대면 진료가 아니면 발견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달 경남 합천군의 한 보건지소를 찾은 한 주민이 공중보건의사와 원격 협진 방식으로 진료를 받고 있다. 합천은 오는 4월 9일 26명 공중보건의사 중 17명이 복무 만료해 보건지소 운영에 비상이 걸리자, 대면 진료 대신 원격 협진을 진행 중이다. 사진 합천군
전남 영광군 보건소에서 공보의로 복무 중인 박재일 대한공중보건의협의회장은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이라며 “의사 입장에선 책임 문제도 있기 때문에 (원격 진료를 하면) 방어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고, 유의미한 진료 행위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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