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자유와 제국의 역설적 결합...'국제' 관점으로 재해석한 서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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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국제정치사상
박성우 지음
아카넷

흔히 ‘정치사상’은 국가 내부의 정의 문제를, ‘국제정치’는 국가 간의 세력 균형을 다루는 별개의 영역으로 치부되곤 한다. 박성우 서울대 교수의 신간 『서양국제정치사상』은 그런 관행에 도전한다. ‘서양정치사상’이라는 익숙한 표현이 있는데 여기에 ‘국제’를 추가했다. 굳이 ‘국제정치사상’이라는 낯선 이름을 명명하며 그 ‘정체성’ 정립에 나선 이유는 뭘까. 저자에게 이 명명은 파편화된 현대 정치학에 대한 비판이자, 정치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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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칸트의 모습. 요한 고틀립 베커가 18세기 후반에 그린 초상화. 퍼블릭 도메인에 속하는 이미지.

저자는 ‘국제’와 ‘정치사상’이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복원하려고 한다. 2500년의 서양정치사상을 ‘국제’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내린 결론이다. 인간의 공동체적 삶을 고민하는 정치사상은 처음부터 국가 내부와 외부(국제)를 동시에 고려하는 통합적 사유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 개의 연구 방법론 중에서 ‘맥락주의(Contextualism)’ 대신 ‘텍스트주의(Textualism)’를 선택했다. 맥락주의는 자칫 사상가를 그 시대의 특수한 상황에 가두면서 고전이 정작 전하려는 교훈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전의 텍스트와 그 행간의 깊이를 정밀하게 헤아리면서,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주요 사상가들을 오늘날 우리 시대의 고민 앞에 동등한 대화 상대로 불러낸다. 이를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교훈’을 현대의 언어로 길어 올리고 있다.

저자의 ‘국제적 재해석’은 사상가들의 새로운 면을 부각시킨다. 예컨대 투키디데스가 단순히 현실주의적 힘의 논리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전쟁의 비극 속에서 파괴되는 인간의 도덕성과 공동체의 운명을 통찰했다는 점에 더 주목한다. 칸트는 국가 내부의 도덕성과 공화적 법치를 외부로 확장시키며 국제 평화를 모색한 ‘현실적 이상주의자’로 재평가된다.

투키디데스, 플라톤, 로크, 존 스튜어트 밀 등에서 ‘자유와 제국의 역설적 결합’을 이끌어낸 대목은 단연 돋보인다. 이상적 정치 이념으로 간주되는 ‘자유민주주의’가 부도덕하고 탐욕적인 ‘제국주의’로 변질되는 현상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배경을 분석하며, 그 방지책의 탐구를 국제정치사상의 과제로 자임했다.

저자는 근대 정치사상이 고대의 것보다 더 진보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근대 정치사상은 국제정치사상이 근본적으로 천착해야 할 문제를 왜곡하거나 악화했다고 본다. 근대 사상은 대개 국제 사회를 ‘법이 없는 정글’(무정부 상태)로 규정하곤 한다. 이는 저자가 정립하고자 하는 국제정치사상의 정체성과 어긋난다. 저자는 고전의 힘을 빌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가치, 그리고 ‘좋은 삶’이라는 근원적 질문과 연결시키면서 이성적 해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 책의 주장은 맥락주의를 더 중시하는 시각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또 급박한 외교 현안에 직면한 정책 실무자에겐 이상적 철학 이론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이익이 충돌해온 전쟁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낸 국제정치의 ‘오래된 본질’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줄어들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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