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화장지부터 휴대전화까지, 제조업이라는 세계와 그 네트워크[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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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제조된다
팀 민셜 지음
김태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20년대 초반 코로나19 팬데믹 때 전 세계적으로 화장지 등 생필품 대란이 벌어진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재기가 횡횡한 결과 마트의 진열대가 순식간에 텅텅 비었던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제품을 제조·유통·판매하는 기업과 사람을 연결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화장실용 휴지 등 생활용품들이 미국 버지니아주의 트레이더 조 마트 매장에 놓여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제조업연구소 소장인 팀 민셜 교수가 쓴 『우리의 삶은 제조된다』는 오늘날 글로벌 제조 네트워크가 어떻게 연계돼 있는지를 현장 위주로 파헤친 책이다. 지은이는 밭에서 식탁까지, 숲에서 화장실까지, 광산에서 휴대전화까지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뒷받침하는 물건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옮겨졌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전달했다. 공장에서, 유통 일선에서 직접 경험한 생생한 스토리를 토대로 제조업의 혼란과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혁신적인 대안도 제시했다.
단순해 보이는 화장지만 해도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제조, 유통된다. 거대한 벌목용 트랜스포머들에 잘려진 스코틀랜드의 침엽수들은 제재소로 운반돼 1차 가공된다. 펄프공장으로 보내진 나뭇조각은 열과 화학물질로 혹독하게 처리돼 화장지의 핵심 재료인 셀룰로스 등으로 분리된다. 셀룰로스는 펄프제조기에 투입돼 펄프지 뭉치로 만들어져 다른 나라에 있는 경우가 많은 압연 공장으로 운송된다. 압연 공장에서도 복잡한 공정을 거쳐 비로소 화장지가 생산된다. 이 화장지는 상품으로 포장돼 물류센터로 보내지고 공급망의 가시적인 종착점인 마트 진열대에 오른다.
이달초 브라질 바이아 카미카리 산업단지 신규 전기차 공장 생산 라인의 BYD 차량들. [로이터=연합뉴스]
화장지도 이럴진대 3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600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항공기 등은 훨씬 더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친다. 스마트폰 부품은 지구 여섯 바퀴 이상을 돌아 최종 소비자들의 손에 닿는다. 어느 한 군데서라도 문제가 생기면 전체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코로나 팬데믹 때 세계의 공급망과 생산 시스템이 단숨에 흔들린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여파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벌이는 전쟁이 장기화한 지금도 세계의 공급망은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한편 현대의 제조업은 디지털화와 스마트화 속도가 눈부시다.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 있는 지커 전기차 공장은 연간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거대 시설이다. 이 공장에는 방대한 생산 시설 전체에 걸쳐 이루어지는 활동의 이미지와 산출되는 실시간 데이터를 보여 주는 대형 스크린이 있다. 관리자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수백 대의 공작 기계·로봇·무인운반차·컨베이어·창고·에너지 시스템에 부착된 수천 개의 센서로부터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얻는다. 고객 측면에서도 지속적인 데이터가 들어온다. 이를 참고해 지커 전기차와 수백 개의 부품업체들은 끊임없이 바뀌는 고객 수요에 대비한다.
한때 미국과 영국 등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제조업을 도외시했다. 아이디어를 창출해서 다른 나라에 빌려주는 ‘지식경제’의 달콤함에 빠졌고 지금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와서 미국은 제조업 부흥을 외치지만 이미 상당히 기반이 무너져 재건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외국의 다른 기업에 제품을 생산하는 일을 맡겨 놓으면 그 기업과 국가는 제조 역량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현대 제조업 부문은 생산과 공급 체계가 너무나 취약하고 때로는 지구환경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제조업 없는 세계’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은이는 “보다 나은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 그리고 평등성을 제공할 부문은 제조업”이라고 확신한다. 기술력이 뛰어난 엔지니어, 현명한 투자자, 선견지명을 갖춘 정치인, 각성한 기업인이 생산시스템을 혁신한다면 제조업이 ‘덜 나쁜’ 수준을 지나 상황을 훨씬 낫게 만들도록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첨단을 달리고 있는 현대 제조업의 세계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들도 탐독해 볼 만한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아직은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 공급망과 환경을 개선하는 데 많은 힌트를 줄 수 있는 영양가 만점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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