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잘못 설계하면 10년 뒤 낭떠러지”…재판소원 사전심사 방안 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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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뉴스1
헌법재판소에 막대한 양의 재판소원이 쏟아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헌재 산하 연구모임인 헌법실무연구회(회장 정정미 헌법재판관)가 재판소원 처리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줄일 기준에 대해 논의했다.
20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강당에서는 ‘재판소원 적법요건 심사 방안’을 주제로 정기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발표회에는 김상환 헌법재판소장과 김형두 재판관, 정정미 재판관이 참석했다.
“지금 잘못하면 10년 뒤 헌재를 낭떠러지 몰 수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비치된 헌법소원심판청구서와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심판 청구 안내문.뉴스1
이날 발표회는 사전심사 설계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 속에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발제자로 나선 김진한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지금 우리는 재판소원 제도의 첫 발자국을 만들고 있다”며 “만일 우리가 잘못된 길을 들어선다면 10년 20년 후에 헌재를 자칫 낭떠러지로 모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더 많이 생각하고 토론해서 가장 지혜로운 운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김 변호사는 헌재가 “모든 오류를 시정하는 기관”이 될 수는 없다고 전제했다. 그는 “헌재가 재판소원이 도입됐다는 이유로 일반 법원의 사소한 오류를 다 나서서 교정해주겠다고 하면 재판소원 제도 자체가 작동하기 어렵다”며 “일반 법원의 역할을 존중할 필요가 있고, 헌재는 일반 법원들의 관행적인 판단을 바꾸어 향후에 법원의 재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기본권을 구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1951년대 독일에서 재판소원 도입 직후 헌재가 포화상태에 빠졌던 역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1954년 독일 헌재는 막대한 사건 부담으로 인해 재판소 스스로 SOS 요청을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했다. 당시 재판관 전원의 이름으로 의견서를 내고 사전심사 제도 도입을 요청했다. 이후 사전심사에 관한 법률조항은 6번 개정됐다.
김진한 “헌재가 모든 오류 시정할 순 없어”
손인혁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별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재판소원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스1
김 변호사는 헌재의 사전심사는 ‘적법성’이 아닌 ‘중요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소원의 기능 역시 ‘당사자 권리구제’가 아니라 헌법적 의미를 가지는 재판취소를 통해 수많은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봤다. 김 변호사는 “재판소원을 단순한 개인구제 제도로 본다면 3심 이후의 4심이 될 것이라는 국민적인 우려에 부합하는 현실이 될 수 있다”며 “결국 시간과 재력이 있는 당사자들에게만 유리한 제도가 될 것이고, 헌재는 사건 부담으로 본래의 헌법 보호 기능이 위축되고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헌재의 ‘직권주의’ 전통을 깨야 한다고 했다. 직권주의란 당사자의 주장에 얽매이지 않고 헌재가 스스로 판단 범위를 정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당사자의 주장 내에서만 판단하는 법원의 ‘변론주의’와 반대된다. 김 변호사는 직권주의를 유지하면 법원의 재판 기록을 전면 분석해야 하고, 이 경우 사건의 규모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봤다.
김 변호사는 “당사자가 제기하지 않은 기본권 침해 문제를 헌재가 다 찾아서 구제해 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직권주의 하에서는 변호사의 주장 책임을 엄격하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당사자가 막연하게 주장만 제출한 뒤 헌재가 알아서 해석, 판단해주기를 기다리도록 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사전심사 방식에 이견…“보완 입법 필요” 의견도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퇴근하고 있다. 뉴스1
사건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토론자들의 의견이 갈렸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는 재판관 3인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에서 사건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소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매우 우려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는 “한 해에 수천건씩 기각 이유를 밝힌다면, 수많은 다른 미래의 사건들과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지정토론자로 참여한 정광현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전향적으로 지정재판부에서 기각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관 수를 정규구성원 9명과 예비구성원 6명, 합계 15명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사건을 선별하는 기준은 정치적 판단으로 비칠 수 있는 ‘중요성’이 아닌 ‘적법요건’ 등 사법적 판단이 돼야 한다고 했다.
서경미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사전심사 규정에 대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 교수는 “현행법은 헌법적 중요성을 기준으로 한 실질적인 사건 선별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했다.
국회에 파견돼 있는 이재강 헌법연구관은 “헌재는 재판소원 사유를 ‘중대한 헌법적 의미를 가지거나 기본권 보장에 필요한 경우’로 한정하자는 의견을 제출했지만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의견이 반영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어 “해석을 통해 심판 대상의 범위를 최대한 좁혀나가는 방법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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