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자위대 파병’ 숙제 남았지만…다카이치 ‘칭찬 외교’에 트럼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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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이란 사태 속 ‘최악의 타이밍’으로 불렸던 미·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자위대 파병이란 무거운 숙제를 안고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730억 달러(약 109조원)대의 대미 투자 선물 보따리와 ‘칭찬 외교’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정상회담이 이뤄지면서 일본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최악의 전개는 면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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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만찬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연설을 하고 있다. 곁에 서있던 트럼프 대통령이 미소를 짓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X 캡처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다카이치 총리는 첫 등장부터 남달랐다.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이 방일한 이래 5개월만의 정상회담으로 다카이치 총리는 악수하려 손을 내미는 트럼프 대통령을 반갑게 얼싸안았다. 이어진 정상회담은 칭찬 세례로 출발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세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사람은 도널드뿐”라며 이름을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2월 총선에서 압승한 사실을 언급하며 “일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선거를 치러냈다”라거나 “위대한 여성”이라며 화답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도 불거졌다. 한 일본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공습을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들고나온 것이다. 그는 “누가 일본보다 서프라이즈(기습)를 더 잘 알겠나. 일본은 왜 진주만에 대해 말하지 않았나”라고 뼈있는 농담을 던져 다카이치 총리를 당황케 했다.

한때 긴장감도 감돌았다. 당초 예정됐던 오찬을 취소하면서다. 정상회담은 당초 예상 시간인 30분을 넘겨 1시간 30분가량 이어졌다. 회담 후 다카이치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등에 공개 요청한 호르무즈 해협 함정 파견에 대해 “일본법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에 상세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자위대 파병 요청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함구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와 동행한 오자키 마사나오(尾崎正直) 관방 부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호르무즈 해협 안전에 대해 일본을 시작으로 하는 각국에 대한 공헌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이해를 표명했고, 일본 측이 우려하던 공개적인 불만을 제기하는 ‘최악의 전개’는 피했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의 항해 안전을 위한 ‘공헌’을 일본에 요청하고 있어 일본은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고 평했다.

최악의 상황을 모면한 배경엔 치밀한 전략이 있었다. “이란 핵무기 개발은 결코 용인되어선 안 된다”면서 다카이치 총리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비난하는 입장을 내놨다. 미국의 이란 공습에 대해 ‘국제법 평가’도 거론하지 않았다.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번 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먼저 중동정세를 꺼내든 것은 “일본의 스탠스를 명확히 하기 위함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자위대 파병이 법적으로 어렵다는 일본의 현실을 인식시키고 영국, 프랑스와 함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관련해 이란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는 등 선제적으로 이란을 비판해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누그러뜨렸다는 설명이다. 또 미국산 원유 비축 사업을 제안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을 포함한 대규모 대미 투자 선물 보따리를 푼 것도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에 일조했다.

일본은 이란 사태와 관련해 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자위대 파병에 대한 법적 검토를 해왔다. ‘평화 조항’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 제9조는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 전쟁과 무력 위협, 무력행사를 포기하고 전력보유와 교전권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과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2019년 당시 트럼프 정권으로부터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호위 연합’ 참여를 요청받았지만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 조사·연구 목적으로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오만만에 해상자위대 함정을 보낸 바 있는데 일각에선 이런 ‘아베 모델’이 대안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아사히는 “전투 중인 지역 파견은 법적으로 어려워 전망하기 어렵다”면서 “전투 종결 후 파견이 상정되지만, 자위대의 안전확보가 문제가 되는 것 외에도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한 국내 여론도 엄격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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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만찬장에서 다카이치 총리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있다.AP=연합뉴스

정상회담 후 이어진 만찬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막내 아들 배런의 생일(3월20일)을 하루 앞서 축하하며 “멋지고 잘생기게 성장했다고 들었다. 틀림없이 부모를 닮았다고 생각한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도널드’로 부르며 친근감을 시종일관 드러낸 다카이치 총리는 벚꽃나무 250그루 선물 이야기도 했다. “직접 벚꽃다발을 안고 와 ‘도널드, 다시 만나서 반갑다’고 하고 싶었지만, 미국 검역이 엄격해 갑자기 꽃을 들고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강한 일본, 강한 미국, 풍요로운 일본, 풍요로운 미국”을 힘줘 말한 뒤 “우리는 이를 실현할 최고의 버디(친구)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 발언의 화룡점정은 아베 전 총리 부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외교로 막역한 사이로 지냈던 아베 전 총리를 언급하며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미국에서 했던 말인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를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만찬장에선 박수와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곁에 서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전 총리 이야기에 시종일관 미소를 보냈다. 고타니 테츠오(小谷哲男) 메이카이(明海)대 교수는 지지통신에 “유럽과의 공동 성명도 미국 측 기대에 부응했다”면서도 “하지만 이대로 일본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일본을 비판하는 발언이 언제 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다카이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널드라고 여러 차례 부른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다카이치 총리 이름을 부른 적이 없다”며 “이것이 관계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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