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국 위스키 ‘기원’… 매운맛으로 세계를 홀리다[스튜디오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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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주라 자극적일 줄 알았는데 은은함의 여운이 짙어.
많이 다듬어지고 성숙한 맛이야. 기분 좋은 매콤함도 있는걸.
지난 15일 서울 북촌 한옥 위스키바 와옥에서 열린 시음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최근 출시된 '시그니처'를 시음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의 휴일. 서울 북촌의 한 위스키 바가 젊은 위스키 마니아들로 북적였다. 이날은 기원 위스키의 시음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참석자들은 취하기 위해 들이켜는 대신, 밝은 곳에 잔을 비추어 색을 보고, 잔 속 깊이 코를 박고 향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목넘김을 느끼며 ‘오롯한 한 잔’을 음미하고 있었다.
기원 위스키 도정한 대표(왼쪽)와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 장진영 기자
경기도 화도읍에 위치한 기원 위스키 증류소에서 관계자가 시음용 잔을 따르고 있다. 이 오크통은 지난 2020년 7월부터 숙성을 시작한 아메리칸 오크통으로 100번째로 채운 위스키가 담겨있다. 장진영 기자
기원 위스키는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증류소다. 싱글몰트는 100% 보리를 원료로 하나의 증류소에서 생산된 몰트위스키 원액만을 사용하는 위스키를 말한다. 지난 2020년 설립된 회사지만, 5년 만에 세계 3대 주류 위스키 어워즈 가운데 두 곳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영국 국제 와인 & 스피릿 대회(2025 International Wine & Spirit Competition·IWSC)'에서 최고상(Trophy)을 받은 데 이어, 11월에는 '샌프란시스코 세계주류경연대회(2025 San Francisco World Spirits Competition·SFWSC)'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베스트 오브 클래스(Best of Class)를 거머쥐었다. 한국의 신생 증류소가 일본의 산토리와 대만의 카발란 등이 독식하던 대회에서 최고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한국에서 위스키를?’, ‘그것도 싱글몰트를?’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증류소를 찾은 기자에게 도정한(52) 기원 위스키 대표는 “왜 한국 위스키는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위스키로의 모험을 시작했다”며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위스키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숙성 창고의 오크통 모습. 극한 연교차를 이용해 숙성하기 때문에 별도의 온도, 습도 조절은 하지 않는다. 현재 약 5000개의 오크통이 숙성중이다. 장진영 기자
‘한 잔의 위스키가 만들어지기까지’
위스키 양조는 크게 '분쇄-당화-발효-증류-숙성-병입'의 단계를 거친다. 먼저 보리에 물을 줘서 싹 틔운 몰트를 분쇄한다. 이것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게 당화 과정이다. 이때 다른 온도의 뜨거운 물을 3차례 넣어준다. 다음은 효모를 넣어 알코올과 탄산가스를 만들어내는 발효다. 기원 위스키는 여타 스카치위스키 증류소들보다 2배 이상 긴 시간(120~150시간)동안 몰트를 발효시킨다. 향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어지는 증류 과정은 증류소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과정이다.
위스키에 사용되는 몰트.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오는 것이 특징이다. 장진영 기자
식혜처럼 당도가 있는 맥아즙에 효모가 더해져 탄산가스가 발생하는 발효과정 모습. 장진영 기자
다양한 풍미를 품고 있는 오크통들. 장진영 기자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가 발효조를 들여다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증류기 모양으로 각각의 위스키들이 어떤 느낌을 만들어내고 싶은지를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증류기의 오목한 중간 부분을 ‘목’, 상단의 길쭉한 부분을 ‘팔’이라고 한다. 이들의 길이와 각도로 맛과 향을 조절할 수 있다. 이곳의 증류기는 목이 짧고 팔이 위로 올라간 형태다. 이렇게 되면 ‘진하지만 지나치게 거칠지 않은’ 질감의 술이 만들어진다. 도 대표는 “한국의 식문화가 지닌 풍부하고 입체적인 맛의 조화, 그중에서도 점차 진해지는 매운맛을 위스키에 적용하기 위해 증류기 모양을 디자인했다”며 “이로써 달큰함과 오크의 느낌, 알싸한 스파이스로 긴 여운을 주는 매콤한 맛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원 위스키 증류기. 목이 짧고 팔이 올라간 형태다. 긴 발효과정을 통한 과실향이나 꽃향기등을 완성하고자 제작 의뢰해 설계했다. 장진영 기자
증류는 1,2차로 나눠서 진행되는데 2차 증류시 오크통에 채울 가장 맛과 향이 좋은 부분만을 선별하는 컷팅 작업을 진행하며 2군데로 나눠서 받는다. 장진영 기자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가 증류기를 열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각각 다른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 블랜딩 작업. 풍미가 다른 위스키들의 배합을 조정해 새로운 맛을 내기 위한 과정이다.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가 블랜딩한 위스키 향을 맡고 있다. 장진영 기자
블랜딩 작업을 각각의 위스키 원액과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의 작업 노트. 장진영 기자
‘극단적인 연교차를 이용한 숙성… 천사도 훔쳐가는 술’
위스키의 황금빛은 오크통 숙성과정에서 물이 드는 것이다. 오크통 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이전 술의 흔적이 서서히 새 술에 전해진다. 기원이 남양주에 터를 잡은 것은 극단적인 연교차가 위스키 숙성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남양주는 여름에는 영상 30도 안팎, 겨울에는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지는 극단적인 온도 변화를 보이는 지역이다. 오크통은 날이 더워지면 술을 머금고, 추워지면 술을 내보내며 숙성감을 만들어낸다. 극단적인 연교차가 숙성에 크게 관여하는 것이다. 이때 전체 양의 6~7%가 증발해 사라지는데, 이를 ‘결감량(엔젤스 셰어)’이라 부른다. 천사들이 이미 마셔 사라졌다는 시적 표현이다. 스코틀랜드의 결감량은 2% 정도인데, 스코틀랜드의 서늘함과 대만의 더위를 동시에 품고 있는 이곳이 위스키를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저장된 몰트의 모습. 글렌리벳, 발베니 등의 위스키에도 사용되는 몰트다. 장진영 기자
필링스테이션에서 통입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불순물을 걸러내고 화분 갈이를 하듯이 다른 오크통에 옮겨 담는다. 각각의 오크통에 입혀져있는 향과 맛을 숙성 과정에서 입히기 위한 작업이다. 장진영 기자
어떤 오크통에 숙성하느냐에 다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분해한 오크통의 단면에 그간 담겼던 술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다. 위쪽은 버번 오크통, 아래는 셰리 오크통. 장진영 기자
‘자랑스럽게 소개할 만한 위스키’
기원 위스키의 다음 목표는 함께 성장하는 한국 위스키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도 대표는 “스코틀랜드나 일본·대만의 복제품이 아닌 한국만의 위스키를 만들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 업계에서 좋은 경쟁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며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나갈 때 ‘이게 우리나라 술’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할 만한 술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기원 위스키 제품들. 왼쪽부터 이글, 유니콘, 타이거. 장진영 기자
도 대표는 다음 목표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지난 15일 서울 북촌 한옥 위스키바 와옥에서 기원 위스키 시음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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