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반도체처럼 뛰어보겠다…이재용 회장 보라는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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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4연승을 달리는 K리그2 수원 삼성의 이정효 감독. 험난한 세월을 거쳐온 이 감독에겐 1부 승격 너머의 목표가 하나 있다. 모기업 수장이자 초일류 그룹을 이끄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다시 축구장을 찾는 일이다. [뉴스1]
프로축구 수원 삼성 홈경기장 서포터스석에는 세 사람의 걸개가 나란히 걸려있다. 이건희, 이재용, 그리고 이정효. 팬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이정효 감독이 만드는 축구라면, 회장님도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정효(51) 감독은 지난 8일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말했다. “저한테는 도발적인 목표가 있다. 현존 최고 기업인이 홈경기에 오게끔 만드는 것.”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발길이 수원 홈구장에서 끊긴 지 10년이 넘었다.

수원 서포터스는 응원석에 이정효, 이재용 회장, 이건희 선대회장 그림 걸개를 나란히 내걸었다. 사진 K리그 중계 캡처
공교로운 대비가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수퍼사이클에 올라타 기술력과 수익성, 시장 지배력을 겸비한 세계 최상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모기업은 세계 정상을 향해 질주하는데, 수원 삼성은 2부 리그 K리그2를 3시즌째 헤매고 있다. 같은 이름을 쓰는 두 조직의 현주소가 이토록 다르다. 이 감독이 이재용 회장을 다시 경기장에 모시겠다고 공언한 건, 그 격차를 없애겠다는 용감한 선언이다.
초청장의 내용은 성적으로 쓰고 있다. 수원 삼성은 K리그2에서 개막 4연승을 질주했다. 1995년 창단 이래 30년 만의 최초 기록이다. 4경기에서 8골, 단 1실점. ‘정효볼’이라 불리는 그의 전술,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가 작동하고 있다. 윙어를 터치라인에 고정해 상대 수비를 측면으로 끌어당긴 뒤, 순간적인 역전환으로 반대편에 일대일 찬스를 만드는 전략이다.
그의 축구엔 쉼표가 없다. 지난 21일 김해FC와의 원정경기, 2-0으로 앞선 후반 추가시간 5분에도 수원 선수는 시간을 끌지 않았다. 박현빈이 공을 몰고 가 추가골을 터뜨렸다. “셀레브레이션을 하면 2~3분이 걸린다. 빨리 역전골을 넣으려면 공을 가져와야 한다. 수원 삼성이라면 승리가 목표기 때문에, 그 시간조차 아깝다.” 동점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펼치면 이 감독에게 혼쭐이 난다. 이기고 있어도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정효볼의 본질이다.
이정효 감독(오른쪽)이 작전을 내리고 있다. 이 감독은 거침없는 언변으로도 유명하다. [뉴스1]
이 집요함은 그의 인생에서 나온다. 부산에서 12년을 뛰면서 인터뷰 한 번 해본 적 없는 무명이었다. 아주대 94학번 동기인 안정환의 그늘 속에 살았고, 코치로만 7년을 보낸 뒤 40대 후반에야 감독 기회를 얻었다. 광주FC를 맡아 K리그2 우승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8강을 일궈내며 한국 축구가 가장 주목하는 지도자로 떠올랐지만, 그는 여전히 낭떠러지에 선 사람처럼 뛴다. 어느 선배 감독이 “콘(훈련도구)이나 놓던 놈이 많이 컸다”고 했다. 이 감독은 그 말을 잊지 않는다.
최근 출간한 『정답은 있다』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난 줄곧 낭떠러지에 서있는 것 같다. 지름길도, 패자부활전도 없다. 나 같은 사람이 이기려면 그냥 미쳐야 한다. 오늘이 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책 목차엔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고 썼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프로축구 수원 삼성 이정효 감독. 사진 프로축구연맹
수원 삼성은 한때 ‘레알 수원’이었다.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전폭적인 지원 아래 1998년 K리그를 제패했다. 그러나 제일기획 이관 이후 운영비가 깎이기 시작했고, 2023년 K리그2로 강등된 뒤 2시즌째 승격에 실패했다. 이재용 회장의 발길도 함께 끊겼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로 세계를 이끄는 동안, 그 이름을 단 축구단은 조용히 가라앉았다.
이 감독의 구상은 길게 뻗어있다. 1부 승격, 그리고 2029년 FIFA 클럽월드컵 출전. 그 무대라면 이 회장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반도체 초일류 기업이 축구에서도 초일류여야 한다는 논리, 그것이 이 감독이 이재용 회장에게 내미는 초청장의 본문이다.
팬들은 “정효볼에서 축구뿐만 아니라 인생을 배운다”고 한다. 80분을 버텨야 10분의 기회가 온다. 수적천석. 이정효는 지금, 물방울로 바위를 두드리고 있다. 조만간 그 소리는 이재용의 귀에 닿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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