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피비의 유산과 에디의 감각을 잇다, 마이클 라이더의 셀린느 [더 하이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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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슬리먼이라는 거대한 시대정신이 지나간 자리에 마이클 라이더가 섰다. 그는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는 대신 유산의 진화를 선택하며 셀린느의 새로운 챕터를 열고 있다.
셀린느 2026 여름 컬렉션 쇼. 크리에이티브 마이클 라이더가 선보인 두 번째 컬렉션이다. 사진 셀린느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던 독특한 이력의 디자이너는 이제 셀린느(Celine)라는 패션 하우스를 통해 럭셔리가 어떻게 삶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학구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태도로 증명하고 있다. 패션업계가 그의 셀린느 데뷔를 단순한 인물 교체 이상의 사건으로 기록하는 이유다.
유산의 진화, 하우스 정체성의 재정립
이번 시즌, 우리가 매장에서 만날 수 있는 여름 컬렉션은 마이클 라이더가 셀린느의 아티스틱 디렉터로서 처음으로 선보인 봄 컬렉션에 이은 두 번째 컬렉션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정규 파리 패션위크에서 이를 소개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컬렉션 디자인은 하우스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라이더는 쇼 노트를 통해 “셀린느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는 뿌리와 미래를 연결하는 본질적인 고민이었다.
셀린느의 상징적 가방인 러기지 백을 재해석해 선보인 뉴 러기지 백. 사진 셀린느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발렌시아가(2004~2008)에서 구조적 정밀함을,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2008~2018)에서 10년간 지적 미니멀리즘을, 그리고 폴로 랄프 로렌(2018~2024)에서 아메리칸 라이프스타일의 상업적 파급력을 체득한 그는 지금 셀린느에 가장 필요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컬렉션 쇼에 첫 번째 룩으로 등장한 블랙 미니 드레스. 사진 셀린느
1960년대 감성의 데이지 프린트 원피스. 사진 셀린느
쇼의 포문을 연 블랙 트위드와 1960년대 감성의 데이지 프린트 원피스는 전임자들의 유산을 부정하지 않는 라이더의 영리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보그는 “피비 시대의 페미니즘적 화려함과 슬리먼의 락스타 분위기가 교차하고 있다”고 분석했고, 또 다른 패션 매체 더 임프레션은 아예 “필로파일과 슬리매니아의 화해”라며 기존 팬덤을 완벽히 만족시키는 컬렉션이라 평했다.
역동적인 럭셔리, 긴장과 경쾌의 조화
이번 컬렉션은 '긴장감(Tension)'과 '경쾌함(Lightness)'이란 두 단어로 요약된다. 라이더는 쇼 노트를 통해 “신중함과 살갗을 드러내는 것 사이의 긴장감, 그리고 즐거운 시간과 경쾌함에 대해 생각했다”고 밝혔다. 럭셔리 패션이 갖춰야 할 절제된 태도를 긴장감으로, 여름철의 자유로운 태도를 경쾌함으로 정의한 것이다.
정교하게 재단된 네이비 블레이저와 구조적인 코트는 럭셔리의 엄격함을, 그 아래 매치된 스키니진과 펄럭이는 드레스는 일상의 경쾌함을 표현한다. 라이더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셀린느는 세상에서 가장 파격적인 패션을 찾는 곳이 아니지만, 당신이 그 방에서 ‘가장 좋은 코트(Best Coat)’를 입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며 본질에 충실한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테일러링이 잘 된 구조적 실루엣의 재킷에 스키니 진을 함께 입혀 긴장감과 경쾌함의 조화를 보여줬다. 사진 셀린느
목 부분 리본을 타이처럼 늘어뜨린 라발리에르 스타일. 사진 셀린느
특히 실크 스카프의 다채로운 스타일링은 포착해야 할 라이더의 핵심 전술이다. 가방에 감거나 타이처럼 늘어뜨린 라발리에르(Lavallière) 스타일은 이달 초 선보인 가을·겨울 컬렉션까지 관통하는 상징적인 디테일이다. 또한 팔꿈치에 낀 자전거 헬멧은 파리지앵의 일상을 럭셔리와 결합한 상징적 장면이다.
가로가 길게 비율을 변경해 재해석한 트리옹프 폴리오 백 사진 셀린느
어떤 룩에도 잘 어울리는 닥터 백과 손등 중간까지만 덮은 감각적인 장갑. 사진 셀린느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셀린느의 로퍼. 사진 셀린느
추억이 될 옷, 영속적 가치의 제안
컬렉션을 통해 라이더는 ‘추억이 될 수 있을 만큼 좋은 옷’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쇼 노트에서 “모든 것이 어떻게 추억의 일부가 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는 그의 고백은 마이클 라이더가 지향하는 패션의 종착역이 삶의 기록임을 시사한다.
구조적인 실루엣의 코트들은 수십 년 뒤에도 옷장에서 꺼내 입을 수 있는 영속적인 가치를 지닌다. 가로로 길어진 트리옹프 백과 러기지 백은 전임자들의 대표작을 재해석해 기존 팬들의 환호를 얻었다. 새로 선보인 소프트 트리옹프 백은 사용자의 몸에 맞춰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실루엣으로 롱런이 예상된다. 정통과 유행, 상업과 예술, 그리고 실용과 미학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는 이 치밀한 설계 끝에 탄생할 가장 인간적이고도 지적인 럭셔리의 내일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남성의 새 옷장, “옷보다 입는 사람이 중요해”
고급 소재를 선택해 오래 입을 수 있는 "베스트 코트"를 만들어낸 셀린느의 올해 가을겨울 남성복 트렌치 코트. 사진 셀린느
지난 1월 24일 프랑스 파리 비비엔느 거리에 위치한 셀린느 본사에서 열린 올해 가을·겨울 시즌 남성복 프레젠테이션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룩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엄청난 양의 작업도 놀라웠지만, 마이클 라이더가 지난 시즌부터 일관되게 추진해 온 ‘하우스 유산의 연장선’을 남성복의 시각에서 정의하는 자리여서 더 큰 관심이 쏠렸다.
라이더가 가장 먼저 내세운 화두는 ‘사람’이다. 직접 작성한 레터에서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컬렉션을 설명한 그는 패션 브랜드가 제시하는 일방적인 패션 대신, 옷을 입을 착용자의 삶과 개성에 집중했다. 그는 “셀린느는 당신의 다양한 낮과 밤, 인생의 순간들을 위한 옷을 찾기 위해 오는 곳”이라며 “모든 사람이 최고의 옷을 찾게끔, 그리고 찾아낸 옷을 자신의 삶과 자신만의 리듬, 본인의 스타일에 맞게 활용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먼저 소재부터 고급스럽게 바꿨다. 캐시미어 중에서도 최상급 소재에 속하는 비쿠냐(Vicuña)를 선택해 다양한 아이템으로 풀어냈다. 좋은 소재의 선택은 그가 지닌 테일러링 노하우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무기가 된다. 윤기가 흐르는 램스킨을 사용한 트렌치코트 역시 고급스러운 럭셔리 패션의 정수를 보여준다.
안 어울릴 것 같은, 서로 다른 분위기의 아이템을 조합해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마이클 라이더의 놀라운 능력이다. 그는 정갈한 재킷과 타이 차림 위에 혼 펜던트의 빨간 가죽 줄 목걸이를 착용시켜, 정통성과 여유로움을 동시에 표현했다. 사진 셀린느
긴장감과 여유로움의 공존
이번 컬렉션은 어떤 스타일에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과 이를 활용한 스타일링이 돋보인다. 정통 테일러링의 엄격함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 입는 이의 여유로운 태도를 담는 라이더의 영민한 전략이다. 예를 들어 각이 잘 잡힌 블랙 재킷과 코트는 청바지 또는 데님 상의와 함께 연출하고, 정제된 코트와 셔츠 차림에는 동물 송곳니 모양의 혼(horn) 펜던트를 단 빨간 가죽 줄 목걸이를 착용하게 하는 식이다. 또한 톤온톤으로 컬러를 맞춘 카키색 셔츠와 팬츠는 톡톡한 실크 소재를 사용하고, 독특한 형태의 벨트를 착용해 단조로움을 없앴다.
올해 봄·여름 시즌 여성복 컬렉션에서 이미 시사했던 것처럼, 이번 남성 컬렉션에서도 미국식 프레피 룩과 프랑스식 미니멀리즘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블랙 캐시미어 코트와 가죽점퍼, 카멜·브라운 톤의 트렌치코트와 셔츠 등 프렌치 시크를 보여주는 우아하고 미니멀한 아이템들과 함께 미국식 프레피 룩의 상징과도 같은 넥타이 차림의 강렬한 블루·레드 컬러 셔츠가 공존한다. 생경할 수도 있는 이 조합은 의외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고전적인 클래식에 생동감을 더한다.
본질에 집중한 가방과 슈즈
가방과 슈즈 라인 역시 ‘살아갈 모든 순간’을 위해 디자인했다. 하우스의 아이콘을 남성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빅 러기지(Big Luggage) 백은 가로로 길어진 실루엣으로 트렌디한 감각을 더했다. 동시에 허리 밑으로 내려올 정도로 큰 크기의 가죽 쇼퍼 백도 선보여 실용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
슈즈는 더욱 본질에 집중했다. 광택감이 도는 카프스킨(송아지 가죽) 소재의 클래식 로퍼와 고트(염소)·오스트리치·벨벳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오라 로퍼, 부드러운 램스킨 소재의 레이스업 슈즈 등 발을 부드럽게 감싸는 낮은 굽의 슈즈들은 라이더가 추구하는 ‘오래 지속하는 가치’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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