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상처받은 영혼 어루만지는 록 사운드 ‘씻김굿’…뮤지컬 ‘홍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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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심판하는 저승의 심판정 ‘천도정’. 한 소녀의 양팔이 붉은 줄로 매여있다. 죄인이라는 징표. 하지만 그는 당당하다. 자신이 분명 아버지를 죽였으니 지옥에 보내달라고 한다. 그런데 재판관은 소녀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끈질기게 이어지는 재판은 13만9998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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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홍련' 공연 장면. 아버지를 죽인 죄로 '홍련'의 영혼이 재판을 받는다. 사진 마틴 엔터테인먼트

지난달 28일 서울 신당동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개막한 ‘홍련’은 2024년 초연만으로 확고한 팬덤을 만든 작품이다. 지난 2022년 CJ문화재단 창작 뮤지컬 지원 사업 ‘스테이지업’ 선정 작품으로 개발됐다. 당시 예매처 평점 9.9점, 평균 객석 점유율 99%라는 기록을 남겼다.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1월 열린 제9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에서 작품상(400석 미만)을 받았다. 중국 상하이와 광저우에서도 관객을 만나 현지의 호평을 이끌었다. 초연에 이어 비교적 이른 시간에 재연 공연으로 다시 국내 관객을 찾았다.

작품의 두 주역은 ‘홍련’과 ‘바리’다. 한국인이라면 익숙한 이름. 고전 소설 『장화홍련전』과 ‘바리데기’ 설화의 주인공이 저승의 재판장에서 만난다는 설정이다. ‘바리’는 판사, 홍련은 아버지를 죽이고 남동생을 해친 죄인이다.

내용은 익숙함을 따라가지 않는다. 작품은 ‘홍련’과 ‘바리’를 전래동화와 설화에서 꺼내 유교적 가부장제하의 가정 폭력 피해자로 위치시킨다. 재판이 이어지고 홍련이 기억하지 못했던, 잊혀진 과거가 얼개를 갖추기 시작한다. 재판은 점차 상처받은 소녀의 영혼을 씻어 보내는 굿판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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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홍련' 공연 모습. 재판관 '바리'와 '죄인' 홍련은 유교적 가부장제의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사진 마틴 엔터테인먼트

우울하고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신파와는 거리가 멀다. 억눌린 인물의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리며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강렬한 밴드 사운드가 ‘홍련’의 감정 변화를 폭발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뜨거운 에너지를 과하지 않게 녹여내며 극에 설득력을 더한다

배우의 노래와 락 음악이 어우러지며 굿판은 절정에 이르고, ‘홍련’이 상처를 마주하고 아픔을 씻어내는 모습에 관객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한(恨)을 굳이 풀어내 설명하는 대신 무대 위의 음악과 함께 무대 장치로 풀어낸 게 인상적이다. 330석 정도 규모의 크지 않은 무대를 채우는 강렬한 조명과 무대 연출은 천도정이라는 초현실적인 공간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동시에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홍련의 감정 변화를 잘 드러낸다.

‘바리’가 냉소적이던 ‘홍련’의 마음을 열고 극 후반부 둘이 넘버 ‘사랑하라’를 함께 부를 때는 객석에서 흐느낌이 이어졌다. 재판관인 ‘바리’ 역시 사실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피해자여서 울림을 더한다. 한 관객은 예매 사이트에 “처음 본다면 손수건을 꼭 챙겨가길”이라는 관람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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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홍련' 공연 모습. 고전적 서사에 록 사운드를 결합했다. 사진 마틴 엔터테인먼트

‘홍련’ 역은 이지혜, 강혜인, 김이후, 홍나현이 연기한다. ‘바리’ 역은 이아름솔, 김경민, 이지연이 맡았다. 저승차사이자 ‘바리’를 도와 재판을 진행하는 ‘강림’ 역에는 이정수, 신창주, 이종영이 캐스팅됐다. 지난해 최연소 서울시극단장에 오른 이준우가 초연에 이어 재연도 연출을 했다. 공연은 오는 5월 17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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