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기적? 이타적? 인간은 효율적 경쟁 위해 협력하는 척도 하는 존재[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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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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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 배신
조너선 R 굿먼 지음
박지혜 옮김
다산초당
루소의 “고상한 야만인” 대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좀 더 외연을 확장하면 맹자의 성선설 대 순자의 성악설까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 하는 이 해묵은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몇 년 전에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며 적자생존의 최종승자는 ‘강한 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라고 주장하는 책까지 나왔다. (한국인들이 특히 살가움을 갈망하는지 이 책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등교길에 손을 잡은 어린이와 어른. 셔터스톡
그 책의 인기에 편승해보려는 듯 제목을 『다정함의 배신』이라 붙인 출판사의 노력이 눈물겹지만, 이 책의 의도는 새삼스럽게 논쟁에 참여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그러한 논쟁이 무의미할뿐더러 부적절하기까지 하다고 단언한다. 복잡하기 짝없는 종인 호모 사피엔스를 이분법의 틀로 딱 잘라 규정하는 순간, 잘못된 정책과 규범이 만들어지고 그것으로는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인류진화학과 교수인 저자는 인간은 경쟁하면서 협력하고, 때로는 더 효율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협력하는 척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스스로 보이지 않는 경쟁자가 되도록 진화했으며 서로 협력하는 동시에 개인의 이익을 위해 협력 시스템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이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다.
책의 원제이기도 한 ‘보이지 않는 경쟁자(Invisible Rivals)’, 즉 타인에게서 이득을 취하면서도 보답하지 않는 무임승차자들을 사회에서 걸러내기 위해 인류는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하지만 무임승차자들 역시 자신의 속임수를 더욱 잘 숨기도록 진화했다.
그것은 무임승차자가 되는 부류가 따로 있는 게 아닌 까닭이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자본주의자”인데, 자신이 이타적 의도를 지녔다고 타인을 설득하는 자기기만적 진화를 거듭했다. 이러한 ‘다정함’이 사실은 타인을 속여 착취하고 자원을 선점하려는 보이지 않는 경쟁의 산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정함의 배신』이 아주 억지 제목은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난해 8월 미국 앨래크사주 앵커리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위한 회담 후 기자회견 때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I
이런 상황에서 자본(이기심)을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숨기거나 무시하면, 결국 가장 이기적인 인간이 가장 성공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오늘날 사회가 신뢰 붕괴의 위기에 처하고, 푸틴과 트럼프 같은 독재자들이 부상하는 이유가 그래서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사람들에게는 다수를 따르는 동조 편향과 성공한 사람을 모방하는 명성 편향이 있기 쉬운데, “사이코패스나 나르시시스트들이 사회적 능력을 발휘하면 사람들이 그들에게 끌리게 되고 위험한 리더를 추종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어둠의 힘’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이기심과 이타심이 혼재하며 상황에 따라 협력과 경쟁을 선택하는 인간의 본성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게 우선이라고 저자는 거의 매 챕터마다 강조한다. 인간의 본성이 그런 만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경쟁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암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 암과 공존하는 것과 같다.
대신 “보이지 않는 경쟁자를 구분하는 능력으로 지적 무장을 한 뒤 그 체계를 나의 행동에도 적용”해야 한다. 나 자신도 언제든지 보이지 않는 경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회를 착취하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도 해롭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한증식을 거듭하다 끝내 숙주와 함께 죽음을 맞는 암세포처럼 말이다.
그것만이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위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유일한 도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다. 그렇지 못하면 결과는 뻔하다. 착취의 가능성이 있는 시스템에서는 필연적으로 착취가 발생하며, 사회적 지위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타인을 어떻게 착취할지 결정하는 자리가 될 뿐이다.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열린 사회가 지속적인 독재의 위협을 받는 이유다. 사회의 퇴보를 방지할 충분한 안전장치가 없다면, 아무리 열린 사회라도 독재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원시사회를 연구하는 고고학과 민족지학은 물론, 심리학·정치학·철학과 문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사례들을 두루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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