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경제적 상호의존’의 배신…연결점이 곧 무기가 된 시대[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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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에드워드 피시먼 지음
이성민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선봉에 서있던 미국이 제재, 관세 같은 무역 통제 수단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라고 한다. 막대한 인명 피해와 천문학적 전비 소모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로 귀결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이 전환의 계기가 됐다. 미국의 전략통들은 물리적 전쟁 대신에 경제적 수단으로 상대국을 압박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신간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의 저자 에드워드 피시먼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그 전략통 가운데 한 명으로서, 지난 20년간 미국 외교 정책 변화의 현장에 참여했던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NASA(미 항공우주국)의 테라 위성이 지난해 2월 촬영한 이미지. 왼쪽편에 호르무즈해협이, 가운데에 오만만이 보인다. [AFP/NASA=연합뉴스]
저자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 미 국무장관 정책기획실에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저지를 위한 금융 제재 정책의 실무자였고, 2014년에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맞서 실행한 에너지 통제 정책을 담당했다. 이란과 러시아, 그리고 기술 패권을 꿈꾸는 중국 사이에 진행되는 각종 ‘경제전쟁’이 이 책의 큰 줄기를 형성한다.
저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방안을 찾는 가운데,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킨다”는 가르침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피 흘리는 전장 대신 상대의 ‘경제적 급소’를 압박하는 전략이 도입된 배경이다. 그 급소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이 이 책의 원제목인 ‘초크포인트’(Chokepoints)다.
2006년 이래 지난 20년간을 저자는 ‘경제전쟁의 시대’로 규정한다. 세계화를 거치며 촘촘하게 연결된 글로벌 네트워크의 핵심 통로, 즉 달러 결제망, 첨단 반도체 공급망, 클라우드 데이터 서버 등이 바로 초크포인트로 부각된다. 국가 간 상호 의존을 가능하게 하며 평화의 지렛대로도 여겨졌던 글로벌 네트워크가 새로운 경제전쟁의 무기로 변질되는 셈이다. 미국은 이 급소의 통제권을 장악했기에, 물리적 전쟁 대신 글로벌 시스템에서 상대를 제외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26년 2월 발생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경제전쟁이 물리적 전쟁을 대체했다는 저자의 진단과 달리, 왜 다시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과거로 회귀했는가,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근처 걸프만의 화물선.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 속에서 이달 11일 촬영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대목에서 저자가 짚어내는 과거의 실패와 현재의 충돌 사이의 중요한 차이가 드러난다. 과거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이 영토를 점령하고 체제를 이식하려던 무모한 ‘포괄적 개입’이었다면, 현재의 이란 침공과 우크라이나 지원은 경제 제재를 기본으로 하면서 정밀한 물리적 타격을 부분적으로 추가하는 양상이다. 경제전쟁을 설계한 저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앞으로 이란이나 우크라이나에 미국이 지상군까지 투입해 전면전으로 확대하기 전까지는 이 책의 진단이 계속 유효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경제전쟁 설계자 아닌 제3의 독자의 눈으로 볼 땐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오랜 기간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결국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2026년의 이란 침공은 전면전은 아닐지라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의 구현에는 실패한 사례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적의 땅으로 지상군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그 전쟁이 우아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은 직접 피를 흘리지 않을지 모르나, 무력 충돌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가격 폭등과 공급망 붕괴의 고통은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과 전 세계 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이는 미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도덕적 지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세계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주요 접합점이 오히려 취약점으로 공격의 대상이 되는 비정한 신세계를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초크포인트의 순기능을 살려내면서 ‘경제 안보’의 문제를 풀어가는 더 큰 의미의 전략적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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