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혁신만 중요한 게 아니다...'느린 재난' 막는 유지보수의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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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탱하는 힘
리 빈셀·앤드루 러셀 지음
박서현·유상운·최형섭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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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현재는 메타)의 핵심 가치는 ‘빠르게 움직이고 무언가를 망가뜨리라’입니다.” 2009년 당시 25세이던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나중에 그는 심지어 “우리는 이를 위해 제품에 약간의 결함이 있는 것을 용인하고 넘어가기도 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 말에서 보듯이 ‘파괴적 혁신’ ‘창조적 파괴’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을 보여 주는 모토가 됐다.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가 지난해 11월 미국 캘리포이나주 레드우드시티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실제로 파괴적 혁신은 엄청난 과실을 맺었다. 창업 16년 만에 페이스북은 세계 각국에서 20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또 수십억 명은 구글이나 아이폰 없이는 제대로 기능할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됐다.
하지만 혁신의 전도사 저크버그는 2014년 페이스북의 좌우명을 “안정적인 인프라와 함께 빠르게 움직이라”로 바꾸었다. 파괴와 혁신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정말로 불안으로 파괴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이맘때 『지탱하는 힘』의 지은이들이 혁신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 주고 대형사고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유지보수와 수리,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을 쓰기로 작정했다. 이 책의 공동저자 리 빈셀(버지니아공대 교수)과 앤드루 러셀(뉴욕주립대 폴리테크닉대 교수)은 기본적인 유지보수를 소홀히 했을 때 발생하는 엄청난 결과를 준엄하게 경고했다.
지은이들은 주로 미국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대형사고의 사례를 깊이 있게 분석한 결과 유지보수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매우 부족했다는 근본 원인을 찾아냈다. 이 과정에서 지은이들은 유지보수의 중요성을 각성한 ‘메인테이너(maintainer) 커뮤니티’의 열정적인 공감과 도움을 받았다.
이 책에는 점진적인 방치로 서서히 피해를 보게 되는 이른바 ‘느린 재난’이 많이 소개돼 있다. 느린 재난은 새로움만 우선시하다 유지보수를 게을리한 결과로 일어나는 사고를 일컫는 말이다. 2014년 기준으로 미국 연방 예산 중 인프라 관련 지출의 70% 이상이 신규 건설에 들어갔고 이미 만들어진 시설물을 유지보수하는 데는 극소액만이 할당됐다.
지은이들은 “경제 성장과 삶의 질 향상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혁신은 물론 중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흔히 혁신이라고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혁신-언어’이다”라고 지적한다. 이미 존재하거나 새로운 지식, 자원, 또는 기술을 유익하게 조합하는 실질적인 혁신과는 달리 혁신-언어는 우리가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이용한 과대광고 행위로 ‘무늬만 혁신’이다. 가짜 혁신을 팔고 다니는 돌팔이들이 영웅으로 등극하는 동안 정작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지키는 진짜 영웅들은 잊히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미국 사회와 비슷한 점이 있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겪은 우리는 최근에만 해도 대전 자동차부품공장 화재 등 유지보수를 등한시한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건들이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혁신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에게도 강력한 경종을 울린다. 유지보수의 중요성을 단지 말로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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