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인들은 한류를 뭐라고 생각합니까?" [송원섭의 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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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무대로 한 인도 영화 '다시 서울에서'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콘서트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되면서 큰 화제를 일으키는 사이, 한국을 무대로 한 한편의 인도 영화가 소리소문없이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서울에서(원제 Made in Korea)'.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에 대한 꿈을 키우던 인도 여성 센바가 곡절 끝에 한국에 오게 되고, 다양한 한국인을 만나 우정을 나누며 한층 성장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이런 식의 판타지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더없이 흥미로웠지만, 이 영화는 한국 밖에서도 큰 호응을 얻어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권 영화 1위를 차지했습니다.

#SEAbling의 등장

이런 현상을 신기해하는 사이, 다른 생각도 좀 해볼 만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한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SEAblings’라는 신조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올 연초부터 지금까지 식지 않고 있는, 한국인들과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네티즌들 사이에 일어난 온라인상의 분란에서 비롯된 신조어입니다.

최근 몇년 사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열린 대규모 K-POP 콘서트장에서 일부 한국 팬들이 현지의 공연 문화나 규칙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충돌이 일어난 사건들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일부 한국 팬들이 이 과정에서 구타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해 현지 팬들이 ‘왜 현지 규정을 지키지 않는가’ ‘한국인들은 백인들에게는 비굴하게 굴면서 아시아인들에게는 고자세’라는 식으로 비판했고, 한국 팬들이 ‘일부 한국인이 저지른 문제를 갖고 왜 전체 한국인을 매도하느냐’고 항변하면서 문제가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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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지는 지난 5일자로 '왜 #SEAblings가 동남아시아 국가 디지털 주권의 상징이 되었나'라는 제하의 기사로 한국 네티즌들과 동남아 네티즌들의 설전을 다뤘다. 사진 SCMP 홈페이지 캡처

그 과정에서 동남아시아 국가 네티즌들은 ‘#SEAbling’이라는 용어를 내걸고, 동남아시아인들이 연대해 K-POP 보이콧, 한국 상품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SEAbling’이란 동남아(South East Asia)와 형제자매를 뜻하는 영어 단어 ‘sibling’의 합성어입니다.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에게 이 문제는 올 연초 폭발한 사건이지만, 사실 최근 몇년 사이, 아슬아슬한 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2023년 7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블랙핑크 콘서트는 약 7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성공작이었지만, 개최 직전 많은 베트남 네티즌들이 콘서트 불매운동에 나서 잠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공연 주최 측이 공연 사이트에 게재한 베트남 지도에 중국이 주장하는 ‘남중국해 9단선’이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중국해 9단선’이란, 중국이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는 영역을 표시한 가상의 선을 말합니다. 현재 베트남 영해의 상당 부분과 겹쳐져 베트남에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이죠. 굳이 비유하자면 한국인에게 독도가 일본 땅으로 표기된 지도를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경우였고,  할리우드 영화 ‘바비’는 이 선이 나왔다는 이유로 베트남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주최 측이 즉시 사과해 문제가 더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아찔했던 순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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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콘서트와 '남중국해 9단선' 관련 내용을 보도한 베트남 유력 매체 VNEXPRESS의 기사. 사진 VNEXPRESS 홈페이지 캡처.

또 2024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 뮤직페스티발에서, 한국의 한 인기 가수가 무대에서 베트남의 전통 모자 논 라(non la)를 선물로 받고 바로 휙 던져 버려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비록 다음 안무로 빠르게 이어가기 위한 무대 연출이었지만, 베트남 문화에서 논 라를 선물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표현하기 때문이었죠. 당시 한국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많은 베트남의 유력 매체들은 이 사건을 꽤 심각하게 다뤘습니다.

이 사례들은 최근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원장 정길화)에서 펴낸 ‘아시아가 말하는 K컬처한류학’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베트남, 일본, 인도네시아, 튀르키예의 한류 연구자들이 직접 한국어로 집필한 책이죠. 읽다 보니 문득 한한령이 시작될 무렵, 중국의 영상 콘텐트업계 관계자들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그들은 개인 의견이라기보다는 중국 내 한류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라는 임을 전제로 하고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중국 방송사들은 여러 경로로 한국 드라마, 영화, 예능을 수입하고 내보냈다. 그런데 거기보다, 한국은 중국 콘텐트를 소개하는 데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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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가 말하는 K컬처 한류학'의 표지.

이 말을 들었을 때 쉽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한국에는 이미 중국 드라마 전문 케이블 채널도 있고, 나름의 팬들이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들이 그걸 몰라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지상파 방송에 중국 연예인이 출연하거나 중국 드라마를 편성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 채널이 두 개인 ‘국영방송’(그들의 표현입니다)도 그렇지 않은가. 한국은 중국에 일방적으로 ‘한류’를 팔려고 할 뿐, 문화 교류를 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한국은 교류의 의지가 있는가

한국 콘텐트를 수입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니 한한령은 이들에게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고, 그런 맥락에서 한 이야기임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당시 중국 정부에서는 실제로 이런 ‘중국내 정서’를 한한령의 명분으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사실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일본이라고 처음부터 한국 드라마의 수준이 너무 높고 상품성이 보여서 ‘겨울연가’를 편성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세월이 흘러, 최근 데뷔하는 K-POP 아이돌들은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 멤버들을 한두명씩 포함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고, 이제는 동남아시아보다 미국과 유럽이 K-POP의 더 중요한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과 한국인의 관심은 그저 ‘한류 확산’과 ‘수출’에 있을 뿐, ‘상호 이해’나 ‘교류’에 대한 시도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문화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일방적인 짝사랑은 쉽게 ‘나는 이렇게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나서 한번도 나를 바라보지 않니’ 같은 서운함으로 흘러가곤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이 더 큰 시장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애정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좀 위험해 보입니다..

다시 ‘아시아가 말하는 K컬처 한류학’으로 돌아갑니다. 이 책의 외국인 저자들은 K-콘텐트가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 노래에서 그치지 않고 아시아의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이뤄 가는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처럼 세련되고 성공한 나라의 문화 속에서 숨 쉬고 있는 자신을 꿈꾸고, 그 안에서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는 힘을 얻는다는 것이죠. '다시, 서울에서'의 센바가 큰 호응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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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울에서'의 주인공 센바(프리앙카 아룰 모한). 사진 넷플릭스

동경의 대상 vs 오만한 한국

그렇게 한국을 사랑하고 동경하는 사람들 덕분에 현재 한국인은 이전에 상상하기 어려웠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어로 인사를 받고, 한국 기업과 한국 상품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아시아가 말하는 K컬처한류학’의 기획자이며 편집자인 최원재 교수(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는 한류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가 있지만, 해당 국가의 기성세대 사이에는 이런 열광을 자국의 전통문화 유지에 위협으로 작용한다는 인식이 있다는 사실도 지적합니다. 여기에 만약 ‘오만한 한국인’의 이미지가 겹쳐진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한류’의 지속 가능성은 아티스트들과 기획자들의 노력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한류는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2026년의 모든 한국인이 실천하는 행동 양식과 마음가짐의 총체라고 할 수 있겠죠.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의 한류 발전에 정책 당국이 기여한 바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앞으로 할 일은 아주 많아 보입니다. 당장 생색을 내기는 어렵고 긴 시간과 세심한 고안이 필요하겠지만, ‘어떻게 하면 한국에 대한 호감이 식지 않게 할 것인가’ 쪽에 지금부터라도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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