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화환 행렬도 조문객도 없다…'작은 장례' 늘어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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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가족끼리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는 게 고인의 뜻이었습니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광진구의 종합병원 부속 장례식장. 복도 한쪽에서 만난 상주 임정준(55)씨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임씨의 등 뒤로는 고인을 추모하는 가족들 모습만 눈에 들어올 뿐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주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인의 빈소를 따로 마련하지 않고 조문객도 받지 않은 채 가족들만 모여 고인을 안치·입관·발인하는 이른바 ‘무빈소 장례식’이었기 때문이다. 임씨는 “고인은 생전에도 제사상에 공들이지 말고 간소하게 하라고 수차례 당부하곤 하셨다”며 “고인의 뜻에 따라 조문객을 맞느라 정신없는 장례식 대신 가족들끼리 차분히 고인을 추억하며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고 말한 뒤 화장장으로 향했다.

무빈소 장례식을 선택한 건 임씨 가족만이 아니었다. 장례식장 복도에 비치된 안내판에는 임씨 말고도 다수의 상주 이름이 적힌 무빈소 장례 일정이 소개돼 있었다. 장례지도사 김정훈(46)씨는 “예전엔 삼일장이 기본이었지만 요즘은 장례 상담 세 건 중 한 건은 빈소 없이 하루이틀 만에 끝내는 무빈소 장례나 2일장 상담일 정도로 장례 문화가 크게 바뀌었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장례식장을 수놓는 화환 행렬도, 상주들이 조문객을 맞는 분주함도 없는 간소화된 장례가 이처럼 갈수록 늘어나는 건 무엇보다 가족 구조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란 게 장례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한국의 가족 구조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전통적인 대가족 대신 핵가족 구조가 주류로 떠올랐다. 1970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산하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조사에서도 이미 전체 가구의 66%가 부부 중심의 핵가족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한 시기를 대표하던 핵가족 세대가 세월이 흘러 이젠 상주를 맡게 된 데다 최근엔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 비중이 급속히 증가한 것도 2일장이나 무빈소·디지털 장례가 한국 사회 전반에 널리 확산되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다. 국가데이터처 조사 결과 2024년 말 1인 가구는 804만5000가구로 전체 가구 대비 역대 최대인 36.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가구 비중은 2000년(15.5%) 이후 매년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2052년엔 1인 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의 41.3%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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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부분은 가족의 규모가 꾸준히 축소되는 가운데 고령층 1인 가구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70세 이상 1인 가구(19.8%)는 전체 1인 가구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60대와 50대도 각각 17.6%, 15.1%에 달한다. 전통적인 대가족 형태에서 벗어나 핵가족을 꾸리던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는 자식들과도 떨어진 채 ‘나홀로’ 노후를 보내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비율은 상조업계가 체감하는 무빈소 장례식 증가 추세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무빈소 장례식 비중이 전체 장례식의 15~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통적인 혈연 중심의 관계망이 축소되면서 ‘집안의 큰일’인 경조사에 대한 개별 부담이 커진 것도 장례 간소화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상조업계에선 삼일장 기준으로 빈소 임대 비용을 포함한 평균 장례비를 1500만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최영준(54)씨도 무빈소 장례를 치른 주된 이유로 경제적 부담을 들었다. 최씨는 “형제가 둘뿐이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다 보니 빈소를 따로 마련하기엔 부담이 컸다. 슬픈 일이지만 가족들이 추모하는 마음만은 고인도 이해해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문가들은 장례 간소화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국내 연간 사망자 수는 2010년 25만5400명에서 2020년 30만4900명, 지난해 36만3400명으로 증가 추세인 데 비해 출산율 감소로 65세 미만 인구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관계자는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는 추세 속에서 고령 사망자는 늘지만 이들을 돌봐야 하는 인구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지금의 장례식 간소화 현상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만 전통적인 장례 문화 측면에서 볼 때 장례식 간소화가 예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오늘날 삼일장을 치르거나 일정 규모 이상의 빈소를 꾸리는 문화는 한국 사회가 가파른 경제 발전과 산업화를 거치는 가운데 1969년 정부가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하면서 일반화된 것으로, 유교적 장례 의례에 장례식 날짜나 형식·규모 등이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서정택 성균관 전례위원장은 “관혼상제 의례를 정리해 놓은 ‘주자가례’도 고인을 애도할 충분한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을 뿐 날짜를 명시하진 않아 과거에도 형편에 따라 빈소를 간소하게 꾸리곤 했다”며 “장례 기간이 짧거나 빈소를 차리지 않았다고 해서 전통 예법에 어긋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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