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내 귀에 차임벨 소리"...일본사회 불안 포착한 영화 &a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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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차임'은 요리교실 강사 마쓰오카(요시오카 무쓰오)가 한 수강생의 이상 행동을 목격한 뒤 점차 광기에 휩싸이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 디오시네마

요리 교실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일을 그린 영화 '차임'(4일 개봉), 도쿄 도심의 연쇄 폭탄테러를 다룬 영화 '폭탄'(18일 개봉). 두 영화는 현대 일본 사회의 불안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이다.

소외와 불안 강박 속에 고통 받는 개인을 사회가 외면하고('차임'), 통제와 차별 속에 억압 받던 감정이 파괴적인 방식으로 분출되는('폭탄') 스토리는 실제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불안과 분노가 인간 내면을 잠식해 가는가 아니면 밖으로 표출되는가 차이만 있을 뿐, 두 영화 모두 안전하다고 믿었던 일상이 한 순간에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섬뜩하게 전달한다. 점차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는 인간 소외와 계층 격차에 대한 영화적 경고다.

◇전염되는 내면의 균열=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45분 짜리 중편 영화 '차임'은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시작한다. 고급 레스토랑의 메인 셰프를 꿈꾸는 마쓰오카(요시오카 무쓰오)는 요리 교실 강사로 일하며 반복되는 일상에 갇혀 있다. 꿈과 현실 간 괴리 앞에서 자괴감을 느끼는 대다수 소시민들과 다르지 않다.

어느 날, 무언가에 홀린 듯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던 수강생이 "차임벨 소리를 견딜 수 없다. 머릿속 기계에 조종 당하고 있다"며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른다. 사건 이후 마쓰오카는 셰프 면접을 준비하며 일상을 이어가지만, 어딘가 어긋난 느낌을 떨쳐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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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차임'은 요리교실 강사 마쓰오카(요시오카 무쓰오)가 한 수강생(가운데)의 이상 행동을 목격한 뒤 점차 광기에 휩싸이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 디오시네마

아내는 혼자 빈 캔을 분리 수거하며 이유 모를 쾌감을 느끼고, 아들의 눈은 휴대전화에 고정돼 있다. 새 수강생의 이상 행동은 마쓰오카의 내면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다.

모든 것이 계량화되고 질서정연하게 정돈돼 있는 금속 질감의 요리 교실은 통제와 질서를 우선시하는 일본 사회의 축약판이다.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원인 모를 소음과 사건은 사람들의 내면을 헤집어 놓는다.

차임벨 소리를 마쓰오카도 듣게 된다는 설정은 병리 현상이 전염병처럼 확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소통 부재 속에서 SNS가 조장하는 비교 지옥과 알고리즘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태로운 내면을 영화는 건조하면서도 서늘한 공기에 담아 전달한다. 현대 일본인의 병리 현상을 서스펜스로 풀어내는 구로사와 감독의 연출이 짧은 분량에서도 빛을 발한다.

구로사와 감독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는 바가 스트레이트하게 나온 드문 영화"라고 말했다. 자신이 목도한 지금 일본 사회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그려냈다는 뜻이다. 오진우 영화평론가는 "바이러스처럼 전염되고 일상을 뒤흔드는 미스터리한 '무엇'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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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폭탄'은 도쿄 도심의 연쇄폭탄테러를 예고한 노숙자 스즈키(사토 지로, 왼쪽)와 젊은 형사 루이케(야마다 유키) 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블루라벨픽쳐스

◇누가 괴물을 만드는가= 영화 '폭탄'(나가이 아키라 감독)은 단순히 말하면 일본판 '조커'다. 상처 받고 고립된 개인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하며, 사법 당국 등 사회 시스템의 위선을 까발린다는 점에서다.

영화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 체포된 노숙자 스즈키(사토 지로)가 경찰에 "한 시간 뒤 도쿄 도심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는 예고를 하면서 시작한다. 실제로 폭발이 발생하자 경찰은 패닉에 빠진다. 스즈키는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말한다. "이제부터 세 번. 다음 폭발은 1시간 후 입니다."

재일 한국인 3세 작가 오승호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인 영화는 경찰서 취조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정체 불명의 노숙인 스즈키와 경찰 간 두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스즈키의 표정, 종잡을 수 없는 말 한 마디에 사건의 단서가 담기며 경찰은 물론, 관객까지 추리의 늪에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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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폭탄'의 한 장면. 도쿄의 한 주택가에서 연쇄폭발테러범이 설치한 폭탄이 터지고 있다. 사진 블루라벨픽쳐스

'폭탄'이 단순한 오락 영화에 그치지 않는 건, 관객들 앞에 일본 사회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던져 놓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인간이란 존재를 믿을 수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최근 열린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 등 12개 부문을 휩쓴 이유다.

시민 안전보다 책임 회피에 신경 쓰는 경찰 조직, 이기적인 군중 심리, 선정주의에 매몰된 언론, 소외된 약자 등 영화의 칼날은 일본 사회의 치부를 향한다. 유치원생들이 아닌 노숙자들이 폭탄 테러에 희생 당하자, 스즈키는 형사들에게 묻는다. "다행이라 생각하지 않았냐?"고. 생명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인간 본성을 파고든 질문이다.

범죄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건 한 남자의 광기가 아닌, 인간 내면의 모순과 이를 증폭시키는 사회 부조리다. 영화의 메시지는 단순 명료하다. 폭탄은 건물이나 전철역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다는 것.

'스즈키는 왜 괴물이 되려 했나'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사회는 그런 괴물들을 만들고 있는가'다. 오승호 작가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야기가 단순히 자극적인 쾌감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는 점을 제작진에 당부했다"며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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