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나는 죽지 않는다”…뇌종양 딛고 선 우들런드, 6년 9개월 만에 PGA 투어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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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을 딛고 6년 9개월 만에 PGA 투어 정상에 다시 오른 게리 우들런드가 우승 직후 두 팔을 벌려 하늘을 바라보며 자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23년, 갑자기 지옥이 찾아왔다. 처음엔 가볍게 손이 떨리거나 이따금씩 오한을 느끼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조만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머릿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슴에 들어와 박힌 이후엔 어떻게 해도 떼어낼 수 없었다. 훈련을 하거나 심지어 경기를 치르는 도중에도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에 시달렸다. 더 이상 좋은 스코어나 우승트로피가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남아야 했다. 매일 밤 아내와 부둥켜안고 “나는 죽지 않는다”를 되뇌다 지쳐 쓰러져 잠드는 상황을 반복했다.

이전까지 골프 선수 게리 우들런드(미국)에겐 거칠 게 없었다. 2007년 프로로 전향한 뒤 2년 만인 2009년 PGA 투어에 데뷔했다. 고교시절까지 농구 선수로 활약한 피지컬과 운동 신경을 활용해 시원한 장타를 선보이며 주목 받았다. 프로 초창기엔 ‘거리만 잘 내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정교한 쇼트게임을 추가 장착하며 정상급 골퍼로 성장했다.

데뷔 후 3년 만인 2011년 트랜지션스 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며 PGA 투어 첫 승을 신고했고, 2019년엔 메이저대회 US오픈 정상에 올랐다. 당시 세계 최강 브룩스 켑카의 추격을 3타 차로 뿌리치고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춘 그에겐 장밋빛 미래가 가득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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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직후 아내 개비(왼쪽)와 입맞추는 우들런드. 부부는 한 마음으로 뇌종양 투병 과정을 극복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리고 운명을 바꾼 2023년이 찾아왔다. 경기 도중 갑자기 멍하니 서 있거나 덜덜 떠는 모습에서 이상 징후를 눈치 챈 캐디의 권유를 받아 정밀 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뇌종양. 뇌의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부위를 종양이 파고들어 잠식한 게 갑작스럽게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이유였다. 고심 끝에 수술을 결정했다. 선수 인생을 건 도박이었다. 의사는 “두개골을 열어야 하는 대수술일 뿐만 아니라 종양의 위치가 시력과 운동 신경을 담당하는 뇌 부위와도 가까워 자칫 잘못하면 더 이상 골프를 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살아야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됐다. 우들런드는 4개월 만에 복귀전을 치렀다. 2024년 1월 소니오픈을 통해 필드에 돌아온 그는 머리에 선명히 남은 수술 자국에도 불구하고 “다시 골프를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승리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PGA 투어 홈페이지는 “우들런드의 소니오픈 복귀야말로 올 시즌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라며 격려했다.

경기력이 이전 같진 않았다. 복귀 이후 치른 26개 대회에서 11차례나 컷 탈락하며 흔들렸다. 수술 후에도 일부 불안감과 경계심이 남았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우들랜드는 낙담하지 않고 차분히 칼을 갈았다.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가족과 골프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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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는 우들런드. AP=연합뉴스

그리고 다시 PGA 투어 정상에 섰다. 29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메모리얼 파크 골프코스(파70)에서 열린 텍사스 칠드런스 휴스턴오픈(총상금 990만 달러) 4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언더파 67타를 기록해 최종합계 21언더파 259타로 우승했다. 우승 상금은 178만2000달러(약 26억8000만원).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은 건 US오픈 이후 6년 9개월 만이다.

3라운드까지 2위 니콜라이 호이고르(덴마크)에 한 타 앞선 그는 최종라운드에서 7번 홀(파3)부터 9번 홀(파3)까지 3개 홀을 연속 버디로 장식하며 격차를 벌렸다. 14번 홀(파4)에서 보기를 적어냈지만,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타수를 지킨 끝에 5타 차 우승을 확정지었다. 마지막 퍼트를 성공시킨 직후 그는 두 팔을 벌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우들랜드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골프는 철저한 개인 종목이지만, 오늘 만큼은 필드 위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다”면서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모든 분들이 나를 보며 절대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그냥 계속 싸워나가라”고 말했다.

김주형이 2언더파 공동 56위, 임성재는 1언더파 공동 60위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이 대회를 제패한 호주 교포 이민우는 15언더파 공동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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