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조카 켄 하쿠다가 말하는 ‘나의 삼촌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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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한강대로 APMA 캐비닛에서 가고시안 갤러리가 마련한 '백남준: 되감기와 반복' 개막에 앞서 조카 켄 하쿠다가 1969년작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샬럿이 이 ‘브라’를 입고 벗는 걸 도와달라고 했어요. 제가 18세쯤이었던 것 같아요. 남준 삼촌이 그걸 알고는 ‘어떻게 애한테 그런 일을 시킬 수 있냐’고 소리 지르며 화를 냈어요. 꽤 엄격한 보호자셨거든요.”
가고시안 서울 백남준전 개막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를 가리키며 백남준(1932~2006)의 장조카 켄 하쿠다(75)는 껄껄 웃었다. 서울 한강대로 아모레퍼시픽 본사 1층의 AMPA 캐비닛에서 1일 개막한 ‘백남준: 되감기와 반복(Rewind / Repeat)’ 전시장에서다.
'TV 브라'를 착용한 샬럿 무어만의 사진 앞에 선 켄 하쿠다. 권근영 기자
소형 흑백 텔레비전 두 대를 투명 비닐 속옷에 내장한 이 작품은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이 1969년 뉴욕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창조적 매체로서의 TV’의 개막 퍼포먼스에서 처음 착용했다. 백남준은 첼로 연주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통해 TV 화면의 이미지를 변화시킴으로써 ‘전자기기의 인간화’를 추구했다. 이 작품의 서울 전시는 2001년 서소문 호암갤러리 전시 이후 25년 만이다.
중고 시장과 상점에서 수집한 빈티지 라디오들로 만든 백남준의 '2002년작 베이클라이트 로봇(Bakelite Robot)'. © Nam June Paik Estate Photo: Ben Blackwell Courtesy Gagosian
이번 전시는 미국 굴지의 화랑 가고시안이 백남준 작품 저작권을 가진 백남준 에스테이트와 협력해 마련했다. 빈티지 라디오를 개조해 영상 매체로 탈바꿈시킨 ‘베이클라이트 로봇’(2002)과 TV부처 시리즈의 후기작 ‘골드 TV부처’(2005) 등 주요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디어 아티스트 구보타 시게코와 결혼했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백남준의 사후 작품 관리는 켄이 맡아 왔다.
1990년 마이애미 비치의 백남준 © Nam June Paik Estate Photo: © 1990 Brian Smith Courtesy Gagosian
“삼촌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가장 오래된 건 제가 9개월 정도 아기일 때 삼촌의 등에 업혀 말타기하는 장면”이라고 말한 켄은 “엄마에게 ‘TV 빨리 사줘라’ ‘더 좋은 TV 사서 보여주라’고 했기 때문에 삼촌이 정말 좋았다. 정작 삼촌은 TV를 틀면 바로 잠들어 버렸지만”이라며 웃었다.
가장 많이 떠오르는 장면은 삼촌과의 산책. “한때 뉴욕 소호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였다. 삼촌과 거기서부터 차이나타운까지 산책하곤 했다. 삼촌은 신문 가판대에서 갓 나온 뉴욕타임스를 한 부씩 구매했다. 14살쯤이었나 처음으로 이름이 실렸을 때 나한테 ‘뉴욕타임스 지면에 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고 하셨다”라고도 돌아봤다.
1982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 전시에 출품됐던 '런던과 해외를 위하여(우편함)'을 설명하는 조카 켄 하쿠다. 연합뉴스
총 11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에는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 여러 점이다. ‘런던과 해외를 위하여(우편함)’는 1982년 뉴욕 휘트니미술관 회고전 출품작이다. 나무 우편함에 내장된 흑백과 컬러 두 대의 TV에서는 현지의 방송이 라이브 송출되게 돼 있다. 켄과 함께 에스테이트를 운영 중인 큐레이터 존 호프먼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작품”이라며 “백남준은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각자의 필요가 해소돼 화합하며 살 수 있을 거라고 꿈꿨다”고 말했다. 켄은 “휘트니미술관 전시에 나온 작품은 현재 딱 세 점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이게 그 중 하나”라며 “당시에는 미디어 아트를 소장할 생각을 아무도 안 했고, 부품값이 비싸서 삼촌도 전시하고 난 작품을 해체해 다른 작품을 만들곤 했다”고 덧붙였다. 김환기의 ‘우주’ 소장가이기도 했던 뉴욕의 의사 김마태가 휘트니미술관 전시 후 사들인 이 작품은 10년 전 백남준 에스테이트로 들어왔다.
초기작 '미디어 샌드위치'(1961~64)을 설명하는 켄 하쿠다. 연합뉴스
‘미디어 샌드위치’(1961~64년)도 보기 드문 초기작이다. 오케레코드에서 낸 임방울의 판소리 음반 등 한·일의 레코드판 8장과 독일의 전자공학 잡지 8권, 그리고 한 남자가 소년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 담긴 인쇄물로 이뤄져 있다. 해당 인쇄물에 백남준은 인쇄물 제작 연도인 1832년과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 뒤인 자신의 출생연도를 함께 적어 넣었다. 켄은 “삼촌이 독일에서 음악가로 살아가기를 그만둔 전환기에 만든 작품”이라며 “에스테이트에서 딱 한 점만 남겨야 한다면 이것”이라고 설명했다.
백남준, 〈골드 TV 부처(Gold TV Buddha)〉, 2005, 폐회로 비디오(컬러, 무음), 27인치 모니터, 비디오 카메라, 삼각대, 케이블, 금도금 청동 불상 위에 유성 마커, 80 x 66 x 215.9 cm © Nam June Paik Estate. 사진: Paula Abreu Pita, Brooklyn Museum
백남준은 1932년 일제강점기의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 최초의 재벌인 태창그룹 총수이자 친일파 백낙승의 3남 2녀 중 막내였다. 도쿄대 미학과 졸업 후 작곡을 공부하러 독일로 유학, 퍼포먼스로 이름을 날렸다.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그가 연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 최초의 비디오 아트 전시다.
한편 백남준의 큰형 백남일의 장남인 켄은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장난감 사업을 했고, TV 프로그램(‘Dr. Fad Show’)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아들 저스틴 하쿠다가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은 앨리 웡의 전 남편이다.
백남준의 저작권자로서 켄은 국내 미술 관계자들과 오래 불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실제로는 많은 분이 제게 연락도 않거나, 답변도 기다리지 않고 일을 진행해 버리는 일이 잦았다. 제가 한국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2006년 삼촌이 세상을 떠난 뒤 함께 하고 싶다는 갤러리들도 있었지만, 방대한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고도 말했다.
가고시안의 아시아 총괄대표 닉 시무노비치는 “2014년 백남준 에스테이트와 손을 잡았고, 2015년 홍콩에서 첫 전시를 열었다”고 했다. 이어 “백남준은 ‘미래엔 뉴욕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번호보다 훨씬 많은 TV 채널이 탄생할 것’이라고 했는데, 인스타그램·유튜브·틱톡 등 개인화된 채널들이 이를 증명한다”며 “그는 예언자였다”고 말했다.
켄은 “최종목표는 삼촌의 주요 작품이 세계적 미술관과 컬렉션에 안착해 영구히 사랑받게 하는 것”이라며 “그 뒤에는 에스테이트가 사라져도 좋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16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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