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더버터] 신혼부부 100쌍, 산불로 폐허된 안동에 희망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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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 ‘신혼부부 나무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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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2026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에 참여한 김상한·이경은 부부. [사진 유한킴벌리]

올해 경쟁률 24대1 기록, 5500그루 식재

“지난해 산불로 고향집이 전소됐습니다. 할머니는 평생을 살아온 집을 잃고 지금도 임시 컨테이너에서 살고 계십니다. 이곳 식재지로 올라오는데 할머니 계신 곳이 보였어요. 마침 40일 전 첫 아이가 태어났는데, 오늘 이곳에 나무를 심고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새로운 희망을 품고 싶습니다.”

지난달 28일 경북 안동시 풍천면. 유한킴벌리가 주최하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2026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 현장. 단상에 올라 소감을 전하는 참가자 김상한(37)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 식재지인 안동 풍천면이 상한씨 가족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난해 경북 지역을 덮친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본 곳이다. 산불로 할머니가 평생을 가꾸며 아버지까지 길러낸 고향집이 잿더미가 됐다. 마을 전체가 피해를 보았지만 전소된 집은 김씨 집 한 곳이었다.

행사 신청은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아내 이경은(34)씨가 했다. 아내 경은씨는 “공고가 올라온 때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할 때였는데, ‘산불 지역을 되살린다’는 문구를 보고 무작정 신청했다”고 했다. 상한씨는 경은씨 몫까지 묘목 심을 땅을 파며 “출발 전까지도 아내가 걱정돼 ‘가지 말자’고 했지만, 막상 와보니 너무 뿌듯하다”며 웃었다.

5500그루 묘목, 민둥산을 되살리는 생명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은 유한킴벌리가 1984년부터 진행해온 사회공헌프로그램으로, 신혼부부 나무심기는 1985년부터 시작했다. 사회공헌 많이 하는 기업으로 유명한 유한킴벌리 내에서도 대표 행사로 꼽힌다. 42년째 이어지는 이 캠페인으로 지금까지 심고 가꾼 나무만 5800만 그루. 유한킴벌리는 2030년까지 국유림을 중심으로 총 6000만 그루를 심고 가꿀 계획이다.

이날 행사는 유독 경쟁률이 높았다. 참석 경쟁률은 24대1. 참가자 중에는 “지난해 신청했다 떨어져, 올해 고심하고 고심해 신청서를 써 올 수 있게 됐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지난해 산불 피해를 본 안동 지역을 돕는다는 게 큰 반향을 가져온 것 같다”고 했다. 행사에 신청한 신혼부부 2389쌍 중 대부분이 신청 이유로 “안동 산불 피해지를 방문해 힘을 보태고 싶다”고 선택했다. 신혼부부 100쌍에 유한킴벌리 임직원, 전현직 임원진에 행사 진행을 돕는 자원봉사자까지 400여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이날 식재지인 안동 풍천면 일대는 높이 솟았단 점을 제외하면 산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자연적으로 쇠락한 숲이 아니라 산불로 한순간에 나무가 죽고 훼손된 탓에, 죽은 나무 잔해를 모두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모래만 남은 민둥산이었다. 모래산은 발만 대도 푹푹 빠져 삽을 깊이 넣어야 겨우 깨끗한 흙이 나왔다. 참가자들은 힘주어 버티면서 땅을 파내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나무가 없으니 그늘도 없어서, 행사 내내 따가운 땡볕이 내리쬈다. 모래바람은 계속 흩날렸고 참가자들은 행사 내내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참가자들은 “숲과 나무가 얼마나 소중한지 몸으로 느끼고 있다”며 입을 모았다.

인천에서 온 결혼 3년차 김광웅-조수빈 부부는 “푸르지 않은 산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면서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놀랐지만 나무를 심은 티가 나서 정말 뿌듯하다”며 웃었다. 7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고준영-주연주 부부는 “우리 부부는 산악회를 운영할 정도로 산을 좋아해서, 만난 곳도 산이다”라며 “사랑하는 산이 황폐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 최선을 다해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도 있었다. 이번 행사는 ‘신혼부부 나무심기’이지만, 기존에 신혼부부로 참여한 적이 있는 가족은 재참여 신청이 가능하다. 천안에서 온 정지운(11)군 가족도 그중 하나다. 지운군은 “나무 심기도, 곡괭이질도 태어나 처음이라 많이 힘들지만, 모래산에 생명을 피운다고 생각하니까 신이 난다”며 제 몸통만 한 곡괭이를 연신 내려쳤다. 어머니가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라며 만류해도 “제대로 심으려면 더 파야 한다”며 진지하게 작업에 몰두하는 지운군 이마 위로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부부뿐 아니라 가족의 역사까지 함께한 ‘나무심기 키즈’도 있었다. 남양주에서 온 박윤찬(13)군 가족이다. 어머니 박묘연씨는 “신혼이던 2014년 당시, 와서 열심히 땅을 팠는데, 얼마 뒤 임신 중이었던 사실을 알았다”면서 “둘이 심은 줄 알았는데 셋이 심었더라”며 웃었다. 이제 윤찬군에 두 동생까지 다섯 명이 된 박묘연씨 가족. 이들에게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는 가치 있는 일을 하며 가족의 추억을 쌓은 행복한 기억이다. 묘연씨 “7년 전, 2014년 당시 양평에 심은 나무를 보고 왔는데, 당시 윤찬이 키와 비슷하게 자라 있었다”며 “오늘 심은 나무도 몇 년 뒤 온 가족 모두 다시 보러 올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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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신혼부부 나무심기 식재지인 안동 풍천면 일대. 지난해 산불 피해를 입고 민둥산이 됐다.

민관 협력으로 숲 복원, 120ha 단계적 추진

유한킴벌리의 나무심기 프로그램이 장기간 유지된 배경에는 참가자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전문가의 신뢰가 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단순히 심는 게 아니라 정말 숲이 복원되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관계자와 오랜 기간 협의를 진행한다”고 했다.

산림 복원이 짧은 시간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몇 개년 계획을 세우고 진행한다. ‘신혼부부 나무심기’와 같은 대중 참여 행사는 유한킴벌리가 진행하는 산림복원 활동의 일부인 셈이다. 이날 행사에도 참가자들이 묘목을 심을 수 있도록 죽은 나무 제거는 미리 해두었고, 경사가 급하거나 면적이 너무 넓어 다 심지 못한 빈 공간은 추후 전문 인력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어떤 나무를 심을지도 지역 주민 상황과 자연환경을 고려해 전문기관 및 관계 기관 협의를 통해 결정했다. 이날 심은 묘목은 헛개나무와 굴참나무다. 헛개나무는 대표적인 밀원수종으로 양봉 등을 통해 지역 주민의 소득원이 될 수 있다. 굴참나무는 불길에 잘 견디는 내화수종으로, 혹시 모를 추가 산불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유한킴벌리 측은 “여러 활엽수 수종이 섞인 ‘혼효림’은 침엽수나 단일 수종으로 이뤄진 숲보다 화재, 병해충 등에 강하다”면서 “생태 복원력이 강하고 자연 방화림이 될 수 있는 수종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지역 사회에서도 이미 반향이 높다. 현장에서 만난 김점복 영주 국유림관리소장은 “지역에 큰 도움이 된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김 소장은 “진짜 지역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무를 심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죽은 나무 위로 그냥 새 나무를 심지 않고 제거 작업부터 시작한다는 점, 다양한 수종이 필요하단 걸 알고 세심하게 골라오는 점이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이미 죽은 나무를 치우지 않으면 지반이 계속 약화돼 새로 나무를 심어도 잘 자라지 않고, 산사태 위협도 여전하다. 김 소장은 “지역 주민 걱정이 훨씬 줄었고, 정부 예산을 아꼈으니 나라에선 더 많은 지역 사업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유한킴벌리 측은 앞으로도 이러한 CSR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배철용 유한킴벌리 CSR팀장은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진행하는 사업이지만 산림청의 후원과 도움을 비롯해 산림조합중앙회, 생명의숲, 지자체 및 관련 기관의 도움 덕분에 실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서 “심화하는 기후위기 속에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숲의 가치를 알리고, 소비자들이 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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