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달 간 ‘응급실 뺑뺑이’ 0…환자 이송 해법 찾는 광주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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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전남대병원 응급실. 평일 낮인데도 빈 병상을 찾기 어려웠다. 이날 하루에만 100여명의 환자가 몰렸다고 한다. 응급실은 여전히 붐볐지만, 응급실 앞에서 만난 한 119 구급대원은 “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헤매는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응급 환자가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해 헤매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줄이기 위해 지난달 시작된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이 시행 한 달째를 맞았다. 보건복지부는 지역별로 맞춤형 이송체계를 만드는 이 사업을 광주·전남·전북 3곳에서 우선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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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의 응급환자 이송지침 설계를 맡은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원스톱 응급의료 플랫폼을 통해 지역내 응급 환자 현황을 확인하고 있다. 이에스더 기자

광주 이송지침을 설계한 조용수 전남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지난 한 달간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사례는 0건이었다”라고 말했다. 변화는 실제 사례로 확인된다. 며칠 전 새벽 80대 여성 환자가 살충제를 마셨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응급처치를 하면서 이송할 병원을 찾았다.

당시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 응급실은 화재 사고로 발생한 중증 화상 환자들을 치료 중이어서 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구급대원이 병원마다 전화를 돌리며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새 환자는 구급차 안에서 몇 시간씩 떠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119대원이 이송병원 결정위원회(FLT)회의를 요청했다. 지역 내 21개 응급의료기관 상황과 환자 현황이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원스톱 응급의료 플랫폼’을 통해서였다. 응급실 6곳 당직자와 구급상황실, 119대원 등은 실시간 채팅창에서 환자 상태와 병원별 여건을 공유하며 이송 방안을 논의했다.

“혹시 A병원에서 수용 가능할까요?” 119대원이 물었다. A병원 응급실에선 “살충제가 유기인제(유기인 화합물로 만든 화학물질)면 해독제가 없어서…환자 확인 뒤 바로 이송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조선대병원 응급실에선 “유기인제가 의심되거나, 아니더라도 삽관이 필요할 정도면 (받을테니) 유선 연락을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논의를 거쳐 환자는 2차병원인 A병원 응급실로 먼저 이송돼 급한 처치를 받았다. 3시간여 뒤 조선대병원 응급실이 “이제 받을 수 있다”고 알렸고, 환자는 조선대병원으로 옮겨져 최종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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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상황실 모습. 전국 6개 지역에 이러한 모습의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있다. 뉴시스

광주에선 이런 방식으로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다시 짜고 있다. 복지부가 짠 이송 지침에 따르면 응급환자 분류체계(pre-KTAS)상 1·2등급 중증 환자는 중앙응급의료센터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병원을 찾도록 했다.

광주는 복지부안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지자체와 지역 병원 의료진, 소방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 의료자원과 이송 여건에 맞춘 ‘광주형 이송지침’을 내놨다. 병원을 강제로 지정하기보다 현장 의료진과 소방이 먼저 조정하고, 그래도 결론이 나지 않을 때만 광역상황실이 개입하는 구조다. 조 교수는 “한 달간 FLT 회의에서 대부분의 환자가 이송 병원을 찾았다”라고 말했다. 매달 회의를 거쳐 지침을 개정하는 작업도 한다.

광역상황실도 중요하다. 광주에서는 FLT가 대부분 해결하지만, 지역 안에서 풀리지 않을 때는 광역상황실이 관내·외 병원을 동시에 수배하고 전원까지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달 30일 전남 완도에서 50대 남성이 호흡곤란 증상을 보였다. 119 요청에 전남 2곳, 광주 1곳이 모두 못 받는다고 답하자 광역상황실이 개입했고, 14분 만에 병상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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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 앞에 환자를 이송한 119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현장 반응은 긍정적이다. 전남대병원에서 만난 또 다른 구급대원은 “예전엔 환자가 갈 곳을 빨리 찾지 못하면 속이 탔는데, 시범사업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어져 마음이 놓인다”며 “환자 초기 처치와 이송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한 2차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환자를 일단 받고,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를 마친 뒤 보낼 곳이 결정돼 있으니, 제때 치료하지 못하거나 전원시키지 못할까 봐 환자 수용을 주저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조 교수는 “무작정 환자 수용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2차 병원에서 처치를 마치면 상급 병원으로 전원된다는 약속이 있고, 민간구급차를 대신 119가 최종 치료 병원까지 인계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만, 광주의 실험을 100% 정답이라고 보긴 어렵다. 대한응급의학회는 “복지부가 제시한 하나의 모델을 전국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지역별 의료자원 현황과 주민 구성, 병원 간 거리, 배후진료 역량에 맞춰 이송체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국 공통의 정답이라기보다, 지역 거버넌스를 통해 현장에 맞는 해법을 짠 사례인 셈이다.

의료계에서는 응급실에 못 가는 환자는 줄었지만, 내부 과밀이 심해지면 정작 골든타임 사수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성적인 인력난, 배후진료 취약성도 여전하다. 우선 수용 뒤 치료 지연이나 전원 지체가 생길 경우 의료진이 소송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사법 리스크 우려도 남아 있다.

조 교수는 “우리 지역 의사들이 ‘어떻게든 환자부터 살려야 한다’며 참여해준 덕분”이라며 “광주소방이 환자가 가장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에 끝까지 인계해준 점도 큰 힘이 됐다. 시와 정부의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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