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유럽 ‘스리백’파 이탈리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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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패해 북중미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후 마르코 팔레스트라(왼쪽)가 동료 레오나르도 스피나촐라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월드컵에서 4차례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자부심이 여전한데 최근 3회 연속 본선행에 실패하자 이탈리아 전역이 충격과 분노로 들끓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2위 이탈리아는 지난 1일 북중미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65위)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1-4로 졌다. 역대 월드컵 우승국 중 3회 연속 본선(2018·22·26) 무대를 밟지 못한 나라는 이탈리아가 유일하다.

전반 41분 알렉산드로 바스토니(인터밀란)가 거친 태클로 퇴장 당해 한 명이 모자란 상태로 승부차기에 돌입했지만, 결국 승리하지 못 했다.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PSG)가 이탈리아 선수들의 킥 방향을 적어둔 상대 골키퍼의 ‘커닝 페이퍼’를 발견해 고의로 훼손하는 등 비신사적인 행동까지 해봤지만 끝내 눈물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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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태클로 퇴장 당해 이탈리아의 월드컵 탈락의 빌미를 제공한 바스토니(가운데). AFP =연합뉴스

이탈리아 매체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제3의 종말’이라는 표현을 쓰며 본선 탈락을 맹비난했다. 성난 팬들은 자국 축구협회 건물로 몰려가 날계란을 던지며 분노했다. 정치인들은 “가브리엘레 그라비나 축구협회장의 사임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축구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검투사역 러셀 크로우(뉴질랜드)조차 “이탈리아에 암울한 새벽이 또 오고 있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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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를 막지 못한 가투소 감독. AFP=연합뉴스

“본선행에 실패하면 나라를 떠나겠다”고 말했던 젠나로 가투소 감독의 전술적 고집이 패착으로 지목된다. 스카이 이탈리아는 “세계 축구의 전술적 흐름인 포백을 외면하고 구식 3-5-2 포메이션을 고수한 게 화를 불렀다”고 꼬집었다. 영국 BBC와 미국 CNN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수년 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를 방치한 결과”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탈리아가 2006년 독일월드컵 정상에 오른 건 앞서 1990년대 청소년대표팀의 성공을 물려 받은 결과다. 하지만 1995년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1부)가 팀당 외국 선수 보유 제한을 폐지하면서 재앙이 시작됐다. 실력 있는 외국 선수들이 대거 몰려들자 자국 유망주들의 출전 기회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는 국가대표 경쟁력 약화를 불러왔다.

리그 시스템도 건강하지 못 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막대한 중계권료를 앞세워 급성장하는 동안 이탈리아 클럽들은 낡은 운영 방식 아래 경기장 현대화도, 수익 구조 개선도 해내지 못했다. 그 결과 회계법인 딜로이트가 올 초 발표한 세계 축구 매출 상위 10팀에 이탈리아 클럽은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최근 세리에A는 루카 모드리치(AC밀란) 등 은퇴를 앞둔 노장들의 무대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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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전을 지켜보는 이탈리아 팬들. AFP=연합뉴스

이탈리아 축구계가 수차례 승부조작 스캔들에 휩싸이며 신인도가 추락한 것 또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마피아를 고발한 소설 ‘고모라’의 작가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이탈리아 구단들은 범죄조직에 휘둘리는 돈세탁 금고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2013년 이탈리아 축구 전설 로베르토 바조가 이탈리아축구협회 기술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900쪽 분량의 계획은 묵살 당했고, 배정된 예산 1000만 유로(175억원)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폭로는 현재 위기와 맞물려 다시 소환됐다.

얀니크 신네르를 앞세운 테니스가 축구 인기를 위협하면서, 이탈리아에선 아이들에게 축구 대신 테니스를 가르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수비수 레오나르도 스피나촐라(나폴리)는 “아이들에게 이탈리아 없는 월드컵을 또 보여주게 돼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때 경기력과 흥행에서 모두 초일류를 자부하던 이탈리아 축구의 몰락은 한국 축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스리백을 고집하는 축구대표팀의 전술적 경직성,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한 팬들의 불신 등은 이탈리아의 상황과 묘하게 닮았다. 영국 가디언은 북중미월드컵 본선에 나설 48개국이 모두 가려진 직후 참가국 랭킹을 산정하며 한국을 44위로 평가했다. 아래 네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보베르데, 아이티, 퀴라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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