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 세계가 '데이터센터' 공 들이는데, 韓 수도권선 찬밥신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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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동의 없는 데이터센터 즉각 철회!”

지난 3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 한 건설 현장 앞에는 이 같은 팻말을 든 주민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이곳에 공사 중인 지상 8층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설 중단을 반대하는 시위였다. 앞서 지난달 8일에는 금천구청이 마련한 데이터센터 관련 설명회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 끝에 파행으로 끝나기도 했다. 관련 인허가 기준을 정비해달라는 국민동의 청원은 지난달 31일 처음 올라온 지 닷새 만인 5일 1000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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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국회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금천구 독산동 데이터센터 건립 관련 반대 청원.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건설이 주민 반발에 부딪혀 표류하는 사례가 수도권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다. 금천구뿐 아니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인천 미추홀구 도화동, 경기 시흥시 광석동에 예정된 데이터센터도 비슷한 주민 반발로 건립이 지연되고 있다.

앞서 지난 2021년 건축허가를 받은 경기 김포시 구래동 데이터센터는 주민 민원으로 착공까지 예정보다 4년이 더 걸렸다. 경기 안양시에선 거센 주민 반대에 못 이겨 사업이 아예 철회되는 일도 있었다. 데이터센터가 유발하는 소음과 전자파, 화재나 정전 위험 등이 주민들의 주된 우려 사항이다. 세계 주요국이 AI 패권을 잡기 위해 데이터센터 확보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은 ‘님비(Not In My BackYard)’에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을 단순 ‘지역 이기주의’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집중되면서 갈등이 되풀이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데이터센터 165곳 중 60%(99개)는 수도권에 있었다. 민간 데이터센터만 따지면 수도권 비중은 75.3%(93개 중 70개)에 달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데이터센터의 전자파 위험성 등은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소음이 큰 문제는 분명히 있다”며 “인구 밀도가 높은 수도권에서는 데이터센터 건립이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석 위원은 “미국 일부 지역에도 데이터센터가 너무 많아지면서 주민 반발이 심해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데이터센터를 애초에 인구가 드문 지방으로 분산하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비수도권에선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데이터센터 유치전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최병호 고려대 연구교수(휴먼 인스파이어드 AI연구원)는 “초 단위 연결이 중요한 서비스 관련 데이터센터는 수도권에 두더라도, 그 외 목적의 센터는 비수도권으로 보내는 이원화 전략을 펴야 한다”며 “지방 대학과 연계해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고, 전력·통신 인프라 비용을 지원해주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전력을 많이 쓰는 데이터센터가 스스로 비수도권을 선택할 경제적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역별 전기요금 요금제를 조속히 시행하고, 재생에너지나 원전 등 발전량이 풍부한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내려가면 세제 혜택, 부지 제공 등 패키지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절차적 투명성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승훈 교수는 “정부와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주민이 신뢰할 만한 제3의 기관을 통해 전자파와 열 배출 관련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데이터센터 폐열을 활용한 지역난방 공급, 센터 내 문화·교육 시설 개방 등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수익 공유형 모델’로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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