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우리 설비 경쟁력 있다”…석화 재편 어려운 울산의 속사정

본문

bt455f8accb7ac3173f627f7379eca59fa.jpg

에쓰오일은 울산 온산 국가산단에 첨단 석유화학 복합시설 건설 사업 ‘샤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올 6월 완공 이후 시운전을 거쳐 연말 상업 운전 가동이 목표다. [사진 에쓰오일]

석유화학 기업들의 사업재편안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정부가 제시한 재편안 제출 시한인 올해 1분기를 넘기게 됐다. 국내 3대 석유화학 단지 중 대산(HD현대오일뱅크·롯데케미칼)과 여수(여천NCC·롯데케미칼)에서는 기업들이 사업재편 계획서 최종안을 제출했지만, 울산(SK지오센트릭·대한유화·에쓰오일) 기업들은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게다가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 봉쇄 이슈가 ‘발등의 불’이 되면서 석화산업 구조조정은 사실상 우선순위가 밀리는 분위기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울산 석화단지의 3개 기업은 지난달 31일까지 정부에 사업재편 계획서 최종안을 제출하지 못했다.

앞서 2월, 산업통상부는 대산의 사업재편 최종안을 승인했고, 지난달엔 여수 1호 프로젝트(여천NCC·롯데케미칼)의 최종안이 정부에 제출됐다. 하지만 울산 산단은 기업마다 상황과 이해관계가 크게 다르다.

bt489f76349916bf66c652c1e1adc0bfa1.jpg

중동 전쟁 여파로 지난달 23일 전남 여수 LG화학 NCC 2공장이 가동을 중단했다. [뉴스1]

먼저 나프타 분해 설비(NCC) 감축을 두고 기업별 주장이 판이하다. 에쓰오일은 올해 말 상업 가동이 목표인 ‘샤힌 프로젝트’가 감축 대상에 포함돼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샤힌 프로젝트는 2019년 에쓰오일이 약 9조원을 투자해 시작한 대규모 석화 프로젝트로, 연산 180만t 규모의 에틸렌을 생산하는 설비가 올해 6월 새로 완공돼 11월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에쓰오일에 따르면 통상 원유로 나프타를 만들 때 수율이 15~18%라면, 이 설비는 60~70%로 높다. 석화산업 경쟁력 개선이라는 정부 구조개편 목표를 감안하더라도 고효율 설비를 가동하기도 전에 감축 대상에 포함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게 에쓰오일 측 입장이다.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도 설비 감축에 소극적이다. SK지오센트릭은 연 66만t 규모, 대한유화는 80만~90만t 규모 NCC를 보유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 설비가 가장 오래됐지만 규모가 작고, 가동을 멈추면 이 회사가 NCC로 만드는 후공정 제품 원료 조달이 어렵다.

대한유화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흑자를 기록하는 등 사업재편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울산에서는 샤힌프로젝트가 실제 가동되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논의하자는 이야기도 나오는 등 재편안이 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업계에선 “먼저 줄이기로 한 곳들만 감산하고, 버틴 곳들은 (석화산업 구조조정에)무임승차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반면 구조조정의 핵심은 일괄적인 양적 감축이 아니라 질적 선별의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무조건적인 감산과 설비 축소는 과거 요소 공장을 정리한 뒤 중국 수입 의존도가 높아졌던 과오를 반복할 수 있다”며 “석화 구조조정은 총량이 아니라 경쟁력 중심의 선별 재편이 핵심인 만큼, 기업 간 이해관계에 맡기기보다 정부가 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중동 전쟁으로 원유·나프타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구조조정보다 당장 생산 유지에 집중하면서 논의는 더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에선 이번 위기가 구조조정의 기준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급과 원가 압박이 동시에 커지면서 어떤 설비와 기업이 취약한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라며 “결국 시장이 먼저 정리의 방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7,099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