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 한 문장으로 사건 끝냈다…경찰 불송치 5년새 38만→60만건

본문

#A씨는 자신을 사칭해 보험을 해약한 후 환급금을 가로채고, 보관을 부탁한 샤넬‧구찌‧루이비통 명품까지 맘대로 처분한 지인을 사기죄로 처벌해달라며 경찰에 고소했다. A씨는 변호사까지 선임해 보험해약금이 이체된 내역, 명품 구매내역 등을 모두 제출했지만 경찰은 혐의없음으로 지난해 6월 불송치 결정했다. A씨가 받은 불송치결정서엔 “증거 불충분하여 불송치(혐의없음) 결정하였기에 통지합니다” 한 문장이 전부였다. A씨는 수사가 이뤄지긴 했는지, 증거가 부족하다면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bte1e7de6c843087decf1fb14fb65a4a54.jpg

지난해 A씨가 경찰로부터 통지 받은 수사결과 통지서(불송치 결정서). 불송치 이유는 한 문장이 전부였다. 독자 제공

#B씨는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제추행을 당했다며 병원 직원을 경찰에 고소했다. B씨는 장애로 인해 피해 사실을 정확히 진술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경찰은 한 차례 고소인 조사를 하고 추가 조사 없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B씨가 최근 받은 불송치결정서엔 “피의자 진술이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고 어렵다”고 적힌 게 전부였다. 문장도 주어와 술어가 맞지 않는 비문이었다.

bt57b36558b4fd704f1e08970968630453.jpg

B씨가 경찰로부터 통지 받은 수사결과 통지서(불송치 결정서). 불송치 이유는 한 문장이 전부였고, 주어와 술어가 안 맞는 비문으로 작성됐다. 독자 제공

가파르게 늘어난 불송치, 이의신청 비율은↓

5일 법조계에 따르면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자체 수사종결권을 확보한 이후 5년간 불송치 사건 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불송치 사건에 대해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데다 경찰도 사건이 적체되다 보니 불송치 사유마저 제대로 적시하지 않는 사례까지 덩달아 늘었다.

경찰 불송치 건수는 2021년 37만9821건에서 2023년(40만6957건), 2024년(54만5509건)을 거쳐 지난해엔 59만4060건으로 늘었다. 60만건에 육박했다. 반면 지난해 불송치 결정에 대해 불복해 제기하는 이의신청은 건수는 늘었지만, 전체 불송치 사건 대비 비율은 2022~2023년 대비 감소했다. 전건송치(모든 사건 송치)가 이뤄지던 이전 제도에선 경찰이 혐의없음을 판단하더라도 검찰이 이를 다시 따져봤지만, 지금은 고소인이 이의신청을 해야 송치가 이뤄진다.

bt346511919059dab3881856f29c366c0d.jpg

김영희 디자이너

김상균 변호사(법무법인 태율)는 “수사를 해봤을 때 혐의를 입증하는 데 있어 어떤 증거가 부족한지, 아니면 법리적으로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인지 설명을 해줘야 그에 맞춰 이의신청하거나 증거를 추가로 제출할 수 있다”며 “증거 불충분 무혐의와 같은 결론은 고소인 입장에선 절망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검찰도 책임 안 져…사건 그대로 종결 

경찰이 불송치를 결정하면 기록은 모두 검찰청으로 보내고, 검찰이 90일 내로 검토해 재수사를 요청할 순 있다. 그러나 사실상 작동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에 송치 사건 수백건이 미제로 쌓여 있는 상황에서 불송치 기록을 점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전체 불송치사건 중 검사가 재수사요청을 한 비율은 매년 감소 추세다. 2021년 37만9821건의 불송치 사건 중 3.82%에 해당하는 1만4494건 재수사요청이 이뤄졌다. 지난해엔 재수사요청 비율이 2.15%까지 하락했다. 일차적 수사 권한을 갖는 경찰이 죄가 없다고 판단하면 사실상 그대로 사건이 종료된다는 뜻이다. 불송치 사건의 경우 검찰에서 사건번호가 별도로 부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검사 사건’이 아니라는 의미다.

bt5aff8441f737b706801eca1f26fffe7e.jpg

김영희 디자이너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기존에 전건송치를 통해 검찰이 책임지고 기소·불기소를 판단했지만, 이젠 불송치 기록은 경찰에서 종결한 사건이라는 게 대부분 검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송치기록을 꼼꼼히 거르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볼 수는 있지만, 책임이나 보상이 없는데 일만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1차 수사기관의 판단, 완벽할 수 없어”

검찰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회는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전건송치 제도의 필요성을 검토하기로 했다.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전환에 따라 1차 수사 결과에 대한 통제와 보완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최근 자문위원장을 사퇴한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청을 폐지하는 상황에서 1차 수사기관에 대한 감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전건송치는 제도 개선과 같이 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완수사권 등에 밀려 전건송치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1차 수사기관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완벽할 순 없다. 1차 수사에서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이를 한 번 더 살펴보는 제도가 전건송치”라며 “검찰개혁으로 보안수사·보안수사요구 권한이 더 축소될 경우 경찰의 수사 종결을 견제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련기사

  • [단독]음주운전 보완수사 시켰는데...캐비닛에 5년 방치한 경찰

  • 경찰 대신 증거 찾으려 500만원짜리 민사소송…법률비 3배 늘어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7,099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