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잉글랜드 잡은 일본, 그 시작은 ‘벨기에 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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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자와 카이토(오른쪽 둘째)가 골을 터트린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벨기에 프로축구 신트트라위던은 일본 선수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일 일본축구대표팀이 ‘축구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를 1-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일본이 치밀하게 설계한 ‘유럽 현지화 프로젝트’의 결실이다. 그 중심에는 일본의 유망주를 보석으로 만들어내는 ‘유럽 현지 공장’ 벨기에 프로축구 신트트라위던이 있다.
인구 4만명의 과일 재배로 유명한 소도시 신트트라위던을 연고로 둔 이 구단은 일본 축구의 ‘유럽 생산기지’다. 현 국가대표 핵심 멤버인 엔도 와타루(리버풀), 카마다 다이치(크리스탈팰리스), 도미야스 다케이로(아약스) 등 9명이 이곳을 거쳐 유럽 빅리그로 상륙했다. 잉글랜드전 결승골을 도운 나카무라 케이토(랭스), 선방쇼를 펼친 스즈키 자이온(파르마) 역시 신트트라위던 출신이다.
잉글랜드와 경기에서 선방쇼를 펼친 일본 대표팀 골키퍼 스즈키 자이온(왼쪽). 신트트라위던 출신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대담한 프로젝트는 2017년 FC도쿄 단장 출신인 다카유키 다테이시 CEO가 시작했다. 그는 일본 J리그 선수들이 유럽 진출 과정에서 겪는 이적료 문제와 현지 적응의 한계를 절감하고 해결책을 고심했다. 그 결과 성인용 비디오(AV) 제작 사업으로 번창한 일본 온라인 기업 DMM.com의 가마야마 게이시 회장을 설득해 신트트라위던을 인수했고, 이 팀을 일본 축구 사관학교로 탈바꿈시켰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스포츠 매체 디애슬레틱도 최근 “벨기에의 한 지방 구단은 어떻게 일본축구 인재 양성소가 되었나”라며 주목했다. 신트트라위던은 지난 8년 동안 일본 선수 29명을 영입했고, 그중 26명을 1군에 데뷔시켜 총 1100경기 이상의 출전 시간을 보장해 실전 경험을 쌓게 했다. 올 시즌 신트트라위던의 베스트11 중 무려 6명이 일본 국적이다. 그러면서도 리그 3위를 달릴 정도로 성적도 좋다.
신트트라위던의 다니구치 쇼고. 일본 국가대표 주전 수비수다. AFP=연합뉴스
원활한 유럽 적응을 위해 영어 수업도 제공할 정도로 지원도 세심하다. 대표팀 주전 수비수 다니구치 쇼고(35)가 카타르 알라얀을 떠나 이곳을 선택한 이유다. 다카유키 CEO는 “세계와 싸울 수 있는 선수를 고르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며 “지나치게 꼼꼼하다는 반발을 살 만큼 치밀한 일본식 매니지먼트 ‘재팬 웨이’가 성공 비결”이라고 했다.
신트트라위던은 골키퍼 스즈키와 수비수 도미야스를 유럽 빅리그에 매각해 300억원 이적료 수익을 올렸다. 또 지난해 J리그 V-바렌 나가사키를 소유한 홈쇼핑 회사 재팬넷의 투자를 유치하고, FC도쿄 등 J리그 5팀과 파트너십을 맺어 인재 공급망을 구축했다. 발굴과 육성의 ‘밸류 체인’이 더 탄탄해진 거다.
신트트라위던 성공으로 현재 벨기에 프로축구 1부, 2부리그에서 뛰는 일본 선수는 25명에 달하며, 유럽 전체로 넓히면 150명에 육박한다. ‘축구종가’ 잉글랜드를 무너뜨린 일본 대표팀 27명 중 15명이 유럽 5대 리그 소속이며, 자국 J리거는 단 3명뿐이고 그중 2명은 골키퍼다. 한일 프로축구를 모두 경험한 재일동포 공격수 출신 정대세는 “이제 해외에서 활약하지 않으면 일본 대표팀에 뽑힐 수 없는 환경이 됐다. 그만큼 일본축구가 세계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평했다.
과거 한국도 벨기에의 AFC 투비즈를 인수해 유럽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려 했으나 뚜렷한 성과 없이 실패했다. 반면 ‘국가대표 주축을 신트트라위던 출신으로 채우겠다’는 다카유키 CEO의 꿈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자본력과 축구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덕분이다. 일본축구가 세계의 벽을 넘기 위해 유럽에 구축한 병참 기지는 한국 축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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