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국민 22%가 노인, 더 늘텐데…‘무임승차 제한’ 없던일로?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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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에서 노인들이 게이트를 통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퇴근 시간에 한 두시간 ‘피크 타임’만 어르신들의 무료 이용을 좀 제한하는 것을 연구 한 번 해보라.”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직장인들이 출퇴근 시간에 (이용) 집중도가 높으면 괴롭지 않느냐”고도 했다. 중동 사태로 인한 에너지 위기 대책을 논의하던 도중이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에너지 절감차원에서 직장인들이 승용차 대신 지하철을 이용할 때 혼잡도가 높으면 불편이 커질 것을 우려해 내린 지시라는 해석이 나왔다. 출퇴근 때 노인 무임승차를 제한하면 그만큼 혼잡도를 완화할 수도 있을 거란 측면에서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그 수준을 뛰어넘었다. 출퇴근 때 노인들의 무료 이용 제한이 실제 효과가 있을지를 넘어 아예 노인 무임승차를 없애야 한다든지, 만 65세 이상인 노인 기준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까지 쏟아졌다.
무임수송 탓에 지하철 운영기관들의 적자가 심각하다는 보도도 여럿 나왔다. 여기에 생계를 위해, 병원을 가기 위해 피크타임에 지하철을 타는 노인들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1984년 도입된 노인 무임승차 제도에 대한 논쟁이 세대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였다.
그러다 지난 3일 청와대에서 혼잡시간대 노인 무료승차를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날 대한노인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어르신들의 무임승차를 제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때문에 대통령의 지시로 촉발된 ‘노인 무임승차 제한’논의가 며칠 만에 없던 일이 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노인 무임승차 제도 전반을 다시 따져보고, 지하철 운영기관의 손실 보상 방안 등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진혁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언급을 기점으로 무임승차의 구조적인 문제와 정책 대안들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사회적 합의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등 전국의 도시철도운영기관들은 무임수송으로 인한 손실이 한해 7000억원을 넘는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 중 80% 이상을 노인 무임승차가 차지한다는 설명이다. 서울교통공사만 해도 지난해 무임손실이 4500억원 가까이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요금을 내고 타는 승객보다 무료 승객 비중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국내의 노인 인구는 전체의 22%에 육박한다.
여기에 지하철 요금 인상도 쉽지 않은 탓에 도시철도운영기관들은 상당한 적자를 안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은 전무하다. 코레일만 일부 보조를 받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도시철도운영기관들은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무임수송에 대한 지원을 계속 요구해왔다. 노인복지법을 근거로 무임수송이 이뤄지는 만큼 중앙정부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면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재정 당국에선 지하철이 없는 지역에 사는 노인들과의 형평성, 도시철도 운영이 기본적으로 해당 지자체 책임인 점 등을 들어서 지원에 반대해 왔다.
하지만 더는 이런 상태로 놓아둘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도시철도운영기관의 적자는 자칫 안전 운행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가뜩이나 요금이 묶인 상황에서 무임수송이 계속 늘면 신규 전동차 교체 등 안전 운행을 위한 투자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진우 KAIST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운영기관이 손실을 지속적으로 자체 부담해야 한다면 서비스 유지와 투자 확대 모두에서 구조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노인 무임승차를 대책 없이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현 교통대 교통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노인의 무임승차를 통한 외부 활동은 우울증 예방 및 신체 건강 유지에 기여하고, 이는 건강보험 재정 절감으로도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노후희망유니온 조합원들이 지난달 26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대중교통 노인우대제도 축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양한 해법이 거론된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운영 손실은 대상자의 연령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푸는 게 최선”이라며 “여기에 중앙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도 “대구 사례처럼 노인 기준을 점진적으로 70세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지하철이 없는 지역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도시철도운영기관에 직접 지원하는 대신 해당 노인들에게 교통비 명목으로 일정금액을 일괄 지급하고 무임승차를 없애는 방안도 거론된다.
김진희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외국에선 특정 시간에 무료 이용을 제한하거나 할인 폭을 달리하는 등 여러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이런 해외 사례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 무임승차 논란은 중앙정부나 지자체나 손대기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노인 표를 의식해 이런저런 선거가 임박했을 때는 더더욱 어렵다. 그렇다고 점점 쌓여가는 문제를 외면만 할 수는 없다. 이제라도 해법을 제대로 찾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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