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제가 없앤 덕수궁 조원문, 110여년 만에 건축 흔적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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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조원문 권역을 조사한 결과, 1910년대 일제에 의해 훼철된 조원문의 건축적 실체를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사진은 1904년 대화재 이전의 경운궁(덕수궁)과 조원문. 사진 국가유산청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덕수궁(경운궁)의 중문인 조원문(朝元門)의 흔적이 발굴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덕수궁 내 조원문 권역을 조사한 결과, 1910년대 일제에 의해 훼철(헐어서 제거)된 조원문의 건축적 실체가 확인됐다”고 9일 밝혔다. 발굴조사는 재단법인 호서문화유산연구원이 맡았다.

조원문은 궁궐의 ‘삼문(三門)체계’에서 두 번째 문에 해당한다. 1902년 중화전을 중층으로 건립할 당시 궁궐의 격식을 갖추기 위해 대안문(현 대한문)과 중화문 사이에 세워졌다. 1904년 덕수궁에 발생했던 대화재 당시에도 살아남았지만 1910년대 일제강점기 궁궐 훼철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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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조원문 권역을 조사한 결과, 1910년대 일제에 의해 훼철된 조원문의 건축적 실체를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사진은 발굴 조사 후 확인된 조원문 위치와 궁장, 소방계, 이왕직사무소.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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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조원문 권역을 조사한 결과, 1910년대 일제에 의해 훼철된 조원문의 건축적 실체를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사진은 1904년 대화재 이후의 경운궁(덕수궁)과 조원문. 사진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보는 “발굴조사에서 기단석과 모서리석 등이 드러남에 따라 『경운궁 중건배치도』 등 문헌과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조원문의 건축적 실체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유구(遺構·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는 1900년대 촬영한 사진 속 조원문 배치와도 일치한다. 인근에서는 궁궐 담장의 기단, 궁궐에서 화재 예방과 초기 대응을 위해 설치된 시설인 소방계(消防係) 건물 흔적도 나왔다.

궁능유적본부는 2029년까지 잡혀 있는 덕수궁 복원·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올해 조원문 권역 복원·정비를 위한 설계를 본격화하고 단계적으로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궁능유적본부는 “덕수궁의 삼문 체계를 회복하고, 그 가치를 국민에게 보다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덕수궁 터는 애초에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재위 1469∼1494)의 형 월산대군이 살던 사저였다. 임진왜란 이후 임시 궁궐로 쓰이며 ‘정릉동 행궁’으로 불렸고 1611년 경운궁이 됐다. 이후 1897년(광무 1)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됐다. 이후 규모를 확장하고 격식을 높였으며, 궁궐 내 서양식 건물을 짓기 시작해 전통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됐고,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퇴위하면서 궁의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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