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물가는 오르고 성장은 꺾이고...7연속 금리 동결로 마무리한 이창용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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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마지막까지 금리 멈춤 버튼을 누르고 4년 임기를 마무리했다. 취임 초 6%대 물가에 맞서 두 차례 빅스텝(0.50% 인상)으로 긴축을 이끌었던 그가, 임기 말에는 7차례 연속 금리 동결을 선택했다. 물가는 다시 오르고 성장은 둔화하는 딜레마 속에서 내린 결정이다.

한은 금통위는 10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했다. 지난해 7·8·10·11월과 올해 1·2월에 이어 7회 연속 동결이다. 지난해 7월 이후 다음 회의(5월 28일) 전까지 약 10개월 이상 금리 동결이 이어지는 것으로, 금통위원 7명 모두 동의했다.

금통위가 동결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중동전쟁이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2월 통화정책방향 회의 직후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대외 여건이 크게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향후 통화정책과 관련해 보다 긴축적인 메시지를 낼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실제로는 원칙 수준의 설명에 그쳤다.

이 총재는 “공급 충격이 일시적일 경우 금리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장기화할 경우에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금통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신중 모드에 들어간 것이다. 충격의 지속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하며 금리 경로에 대한 명확한 신호는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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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통화정책의 샌드위치에 갇혔다”고 평가했다. 물가는 오르는데, 성장은 꺾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사실상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딜레마 상황이라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2월 2.0%에서 2.2%로 소폭 상승했지만, 이달 이후에는 상승 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한은도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물가 상승률이 2%대 중후반으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졌지만, 내수 부진과 성장 둔화 때문에 한은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기도 쉽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7%로 낮췄고, 한은 역시 기존 전망(2.0%)을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이 총재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 “현시점에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면서도 “2주 뒤 상황도 예측하기 어렵고, 에너지 인프라가 파괴될 경우 충격이 장기화할 수 있어 최악의 경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율도 변수다. 원·달러 환율은 중동 긴장 고조 이후 급등해 3월 말 장중 1530원대까지 치솟았다. 이후 종전 기대감이 커지며 1470원대로 내려왔지만, 1500원 재돌파 가능성이 남았다. 성장 회복을 위해 금리를 낮출 경우 한·미 금리 차가 확대(현재 1.25%포인트)되면서 가뜩이나 치솟은 환율을 더 자극할 수 있다.

이처럼 물가·환율·성장 등 주요 변수들이 서로 방향을 달리하면서 한은도 금리 방향을 잡기 어려워졌다. 주요국 중앙은행들 사정도 비슷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유럽중앙은행(ECB)·일본은행(BOJ) 등은 지난달 일제히 금리를 동결하며 신중 모드에 돌입했다.

이번 금통위는 이창용 총재의 마지막 회의다. 그는 취임 직후 두 차례 빅스텝을 포함한 강도 높은 긴축 정책으로 물가 수준을 2%대로 빠르게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고, 금융시장 안정을 유지한 점도 성과로 꼽힌다. 다만 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 경기 대응이 부족했다는 지적과 동시에 환율 상승 국면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총재는 “금리 결정에 후회는 없다”면서도 “환율이 안정된 상태에서 후임자에게 넘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했다.

신현송 차기 총재 후보자도 취임하게 된다면 비슷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다음 달 28일 금통위에서도 금리 인상과 인하 모두 부담스러운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 후보자는 15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21일부터 한은 총재로 출근한다.

경기 하방 위험과 대외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연내 동결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준우 하나증권 연구원은 “신현송 후보자가 유가 충격이 일시적일 경우 통화정책 대응을 지양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어 이창용 총재의 동결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반면 환율·물가 안정에 방점을 두고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훼손된 공급망과 인프라 회복에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물가 등) 실제 데이터가 나오면 7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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