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내 선택이라는 착각...."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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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문학동네
당신이 집을 나서는데 비가 온다. 우산을 가지러 가려고 등을 돌릴 때 마침 빈 택시가 지나간다. 1초쯤 고민하던 당신은 택시를 불러 세운다. 생각지 않은 지출이 있었지만 약속 시각에 늦지 않았으니 잘했다고 당신은 흐뭇해 할 수 있다. 천만에!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 아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기로 이미 결정돼있었다. 예는 내가 들었지만 강한 부정은 저자의 뜻이다. 로버트 새폴스키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는 600쪽이 넘는 책에서 시종일관 그렇게 단언한다.
책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의 저자 새폴스키. [사진 Thompson McClellan Photography]
세계 최고의 신경과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저자는 우리가 사실상 우리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적, 환경적 운이 누적돼 어느 순간에 이르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창밖을 안 보고 나와 버스 대신 택시를 타기로 결정돼있었다고? 그렇다! 그것은 바로 전 당신의 뇌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결과이며, 당신의 뇌가 지금의 모습인 건 유전자와 양육환경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요인 또한 당신 부모의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인과관계의 사슬은 까마득한 빅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축하한다. 당신은 빅뱅 때문에 택시를 탔다!
인간의 자유의지 담론은 고대 그리스까지 소환될 수 있지만, 현대의 본격적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1983년 미국 신경학자 벤저민 리벳의 실험이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피험자 앞에 버튼을 놓고 아무 때나 누르게 한다. 피험자는 다만 누르겠다고 결정했을 때의 시간을 확인하면 된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들이 누르겠다고 마음먹기 0.3초 전에 뇌가 이미 버튼을 누를 준비를 했다. 의지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는 말이다.
저자도 리벳의 실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훨씬 야심찬 전략을 수행한다. 태아기 환경과 유아기 경험이 뇌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유전자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인간행동으로 이어지는 인과관계의 모든 연결고리를 추적한다. 논쟁에 종지부라도 찍겠다는 듯, 결정론을 반박하는 데 이용되는 카오스 이론과 창발적 복잡성, 양자 불확정성 등 물리학 이론까지 섭렵하며 자유의지가 들어설 자리가 없음을 증명해낸다.
선두에서 출발하건 후미에서 출발하건 큰 영향이 없는 마라톤처럼 “운은 장기적으로 평균에 수렴한다”는 반박을 부인하고, “우리의 세계는 불운과 행운이 더 증폭되도록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놀라운 끈기로 불운을 극복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끈기와 불운 모두 운에 의해 부여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행동이 그렇게 결정된다면 심각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까. 총기난사범이나 연쇄살인마를 처벌하는 게 윤리적으로 어긋날뿐더러, 자유의지 개념에 기반한 형사사법제도 자체를 비합리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칭찬하거나 보상하는 것 또한 무의미한 짓이 돼버린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이러한 의문에 대답하면서 휴머니즘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자유의지의 부재에 직면한다고 해서 반드시 비도덕적이 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고 역설한다.
‘정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실상은 ‘보복의 즐거움’을 만끽했던 부조리들을 예시하고, 그것이 더욱 깊은 이해심과 용서가 필요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보복 대상이 되지 않은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인 까닭이다. 문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면 문제 해결에 더 효과적이며, 뇌전증이나 조현병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랬듯 우리는 이미 그러한 사고 변화의 경험이 있음을 저자는 일깨운다.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저자에게 100%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의 결론에 회의적인 사람조차 이 벽돌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뇌과학과 신경생물학, 물리학, 역사학을 넘나드는 지적 향연을 “젠장(Fuck)!” 같은 욕도 마다하지않는 유머러스한 문체로 이끄는 덕분이다. 특히 거의 매 페이지마다 있는 각주가 웃겨서 (보통은 짜증나는) 각주 읽는 재미도 있다.
이 책을 읽고 우울하다면 자신과 상관 없는 일로 더 나은 대우를 받은 운 좋은 사람이니 만족할 테고, 반대로 일생에서 더 나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낀다면 ‘해방감’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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