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퇴계 숨결 따라 270km…매년 수백명 걷는 '한국의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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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경복궁에서 제6회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경북 안동 도산서원까지 약 270km 귀향길 걷기를 시작한 모습. 사진 경북도

지난 8일 충북 제천시 청풍면 한벽루.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조선 시대 누각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는 건물로, 한벽루에서 보는 풍경이 매우 빼어나 조선 시대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이곳을 주제로 한시와 그림을 여러 편 남긴 곳이다.

이날 한벽루에는 250여 명이 모여 연극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공연의 이름은 ‘청풍에 오니 그리운 사람’이였다. 공연을 본 이들은 배를 타고 충주호를 통해 단양군 단성면 장회나루까지 13㎞를 이동했다. 이어 단양군 투구봉휴게소와 우화교를 건너 단양향교까지 12.5㎞를 걸렀다.

이들은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유학자 퇴계(退溪) 이황(1502~1571)이 450여 년 전 벼슬을 모두 내려놓고 고향인 경북 안동으로 돌아갔던 마지막 여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참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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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충북 제천시 청풍면 한벽루에서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는 1569년 음력 3월 퇴계 선생이 선조 임금과 조정의 만류에도 지역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 고향 안동으로 귀향해 이듬해 타계하면서 이 길이 퇴계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이 된 것을 되새기고자 마련됐다.

퇴계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은 1569년 4월 12일(음력 3월 4일) 경복궁을 출발해 4월 25일 안동 도산에 도착하는 14일간의 여정이었다. 총 거리는 약 270㎞(700리)에 달했으며 퇴계 선생은 이 길을 걸어서 이동했다.

주요 경유지는 경복궁에서 종로, 동대문, 뚝섬, 봉은사, 아차산, 광나루, 미음나루, 덕소, 팔당, 두물머리를 거쳐 양평, 여주, 원주, 충주, 단양, 영주, 안동을 거쳤다. 각 지점에서 퇴계 선생은 지역의 유지들과 만나 학문을 토론하고 지방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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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충북 제천시 청풍면 구간을 걷고 있다. 사진 안동시

2019년 퇴계 선생 타계 450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마지막 귀향길을 따라 걷는 재현 행사가 일부 구간에서 열렸다가, 2020년부터는 매년 전 구간을 함께 따라 걷는 행사로 거듭났다. 퇴계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14일에 걸쳐 서울 경복궁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총 270㎞를 이동한다. 하루에 많게는 31㎞, 적게는 1㎞를 걷는다. 올해 열린 제6회 행사에는 지난해보다 참여자 규모가 약 3배 늘어 성인과 학생 250여 명이 참여했다.

14일간 참가자들은 서울 봉은사, 남양주 다산 유적지, 여주 기천서원, 안동 노송정 등 각 지역의 인문‧문화 유산을 체험하고 봉은사, 충주 관아공원, 제천 한벽루, 영주 이산서원 등에서 진행되는 강연과 연극을 통해 퇴계 선생의 인품과 학문·철학의 깊이를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여정 12일차인 지난 10일에는 영주 풍기관아를 거쳐 이산서원을 지났다. 이 구간 인근에는 최근 16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주요 배경지인 금성대군 신단과 피끝마을이 위치해 있어 더욱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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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충북 제천시 청풍면 한벽루에서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경북도와 안동시, 경북문화재단이 매년 이 행사를 여는 것은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이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다.

한승일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원은 논문 ‘퇴계 귀향길의 인문학적 의의와 제언’을 통해 “퇴계의 귀향은 단순히 중앙에서 지방으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학문과 교육의 중심을 지방으로 옮김으로써 균형 잡힌 사회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퇴계 선생은 조선 중기 중앙집권체제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식 권력의 지방화’라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다”며 “퇴계는 중앙과 지방의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했으며 서원이라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통해 지방 교육의 자립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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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경복궁 만춘전 앞에서 제6회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경북도

경북도는 퇴계 선생이 걸었던 길을 ‘동양의 산티아고’로 브랜드화하고 국내를 대표하는 인문학적 문화 콘텐트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황명석 경북지사 권한대행은 “이번 행사는 권력을 내려놓고 지역과 후학을 위해 헌신한 퇴계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뜻깊은 자리”라며 “참가자들이 선생의 정신을 배우고, 국토와 지역문화 가치를 재발견함으로써 지방시대를 여는 소중한 경험을 얻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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