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계단 한칸이 1만년” 전곡선사박물관의 은밀한 7.5m 구덩이 [사소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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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의 ‘E55-S20-IV 피트’. 2000~2001년 전곡리 유적 시굴 조사 과정에서 만들어진 깊이 7.5m 구덩이를 후대 고고학을 위해 보존하고 있다. 앞에 선 이는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강혜란 기자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위치한 전곡선사박물관. 첫인상이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기도, 거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금속 파충류 같기도 하다. 초현대적 건물을 끼고 언덕배기로 올라가면 움막이 한 채 있다. 구석기 움집을 흉내 낸 듯한 이 초가 건물의 정식 명칭은 ‘E55-S20-IV 피트’.

수수께끼 같은 이름은 시작일 뿐이다. 자물쇠로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깊이 7.5m에 이르는 구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 사면 벽에 콘크리트를 발라 육중한 지하창고 같기도 하다. 경사가 가파른 계단이 구덩이 바닥 근처까지 이어져 있다. 내부를 안내하던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이 말했다.

“지금 빗물이 차 있어서 바닥의 현무암이 잘 보이진 않을텐데요. 저 현무암반이 약 50만년 전에 형성된 겁니다. 즉, 이 계단을 한칸씩 밟아 내려가는 게 1만년씩 거슬러 올라가는 겁니다.”

움막 속 7.5m 깊이 구덩이…50만 년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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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 전곡선사박물관이 2000년대 초반 발굴조사 현장을 보존한 피트 내부. 사진 오른쪽 아래 네모난 구덩이에 깊이 7.5m까지 파내려간 현무암반 부분을 드러나 있다. 이를 포함해 당시 발굴조사한 현장 전체를 보존하고 사방 벽에 콘크리트를 둘러 안전을 강화했다. 다만 층위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게 콘크리트벽 위에 퇴적층의 색깔 변화를 재현했다. 우상조 기자

‘사소한 발견’이 주목한 이 구덩이는 2000~2001년 전곡리 유적 시굴 조사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연구진은 유적 전체 23만 평(약 77만㎡)을 대상으로 바둑판처럼 구획을 나누고, 100m 간격으로 120여 개의 구덩이를 팠다. 유적의 범위와 층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사들과 작업 인부가 합세해 삽으로 한 칸씩 파내려간 작업이었다.

특히 해발고도(약 60m)가 가장 높은 지역에서 시범 삼아 가장 큰 구덩이를 팠다. 가로 5m, 세로 5m, 깊이 약 7.5m. 몇 달에 걸쳐 파내려 간 끝에 현무암 기반암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움막 아래 남아 있는 피트가 바로 그때의 결과다. E55-S20-IV는 동쪽과 남쪽 기준의 좌표에 따라 매겨진 피트 번호다.

피트 벽면에는 서로 다른 색의 층이 반복된다. 붉은 흙, 누런 흙, 다시 다른 색의 층. 연구진은 이를 기후 변화의 흔적으로 해석한다. 더웠던 시기와 추웠던 시기가 교차하며 서로 다른 퇴적층이 쌓였다는 것이다. 강물이 흙을 옮기고, 바람이 먼지를 쌓고, 주변 지형이 이를 더했다. 이 같은 수십만년의 퇴적층이 전곡리 일대를 관통하고 있단 얘기다. “전곡리 유적의 형성 과정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한용 관장)이란 설명이 와닿는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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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리 선사유적

주한미군 병사의 ‘주먹도끼’, 세계사를 뒤집다 

전곡리 유적이 애초 ‘구덩이’에서 시작된 건 아니다. 1978년 한탄강변에서 주먹도끼 하나가 발견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발견자는 주한미군 병사 그렉 보웬(1950~2009). 고고학도 출신이었던 그는 수습한 석기를 기록한 보고서를 프랑스 고고학자에게 전했고 그것이 한국 학계로 전달되면서 결국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로 확인됐다.

이 발견은 하나의 유적을 넘어 학설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당시 하버드대 고고학자 모비우스는 인도를 기준으로 동쪽에는 정교한 양면가공 주먹도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른바 ‘모비우스 라인’이다. 그러나 한반도 전곡리에서 그 경계가 무너졌다. 유라시아 동단에서도 동일한 기술 전통이 확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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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상설관에 전시돼 있는 구석기시대 주먹도끼들. 우상조 기자

이후 전곡리는 단순한 발굴지가 아니라, 구석기 연구의 기준점이 됐다. 발견 이듬해인 1979년 첫 발굴이 시작됐고, 같은 해 사적 제268호로 지정됐다. 이후 30여년간 20차례가 넘는 발굴조사가 이어지면서 약 8000점의 구석기 유물이 수습됐다. 2000년대 초반 팠던 120여개의 구덩이들도 그 같은 조사 과정의 일환이다.

“그때 구덩이들을 다시 메워 지금은 다 잔디밭이 돼 있죠. 그러면서 상징적으로 남겨둔 게 이 피트입니다. 전곡리 유적의 층위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지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구덩이’ 속 박물관 

그런데 구덩이는 또 있다. 너무 커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실은 전곡선사박물관 자체가 거대한 구덩이 안에 자리잡은 모양새다. 당시 발굴조사가 끝나고 이때 구덩이를 팠던 자리에서 바닥의 현무암반을 추가로 발파시켜 확보한 대지 위에 박물관이 세워졌다. 2006년 국제설계 공모를 거쳐 2011년 개막식과 함께 문을 열었다. 프랑스 건축설계팀이 완성한 박물관은 멀리서 보면 마치 계곡에 들어앉아 양쪽 암벽을 지붕으로 잇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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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우상조 기자

비정형의 유선형 쇳덩이로 설계된 박물관은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부문(사회·공공부문) 우수상, 2013년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건축 베스트(best) 7’에 선정되는 등 주목을 받아왔다. 미래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 덕에 한때 할리우드 ‘어벤져스’ 시리즈도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할 것을 검토했지만 폭발 장면이 포함됐기 때문에 무산됐다고 한다.

아쉽게도 E55-S20-IV 피트는 평소에는 개방되지 않는다. 깊이와 안전 문제 때문이다. 다만 연천군이 주최하는 5월 구석기 축제 등 특별 프로그램 기간에는 제한적으로 공개된다. 이때는 관람객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 지층을 관찰하면서 발굴 과정과 연구 내용을 설명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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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우상조 기자

나아가 연천군과 경기도에서 이곳을 상설 야외 전시로 확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단순한 전시를 넘어, 땅의 단면을 통해 시간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발굴 현장 자체를 보존·활용하는 ‘야외 박물관’인 셈이다.

바깥 온도보다 훨씬 서늘한 지층 깊은 곳에서 계단을 타고 다시 올라왔다. 1만년짜리 계단을 한칸씩 밟으면서 ‘호모 에렉투스’가 됐다가 ‘호모 사피엔스’가 됐다. 양 손으로 움막 문을 밀치고 직립보행으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50만년 전 용암이 휩쓸고 갔던 대지에 거대한 은빛 우주선 같은 박물관이 고고히 빛나고 있다.

20만년 전 초대형 주먹찌르개, 누가 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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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구석기 ‘주먹찌르개(양면석기)’가 첫 공개된 지난 3월 12일 경기도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상설관에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다. 우상조 기자

최근 전곡선사박물관은 상설전시 구석기실을 전면 개편하면서 지난해 이곳으로 이관된 초대형 주먹찌르개를 공개했다. 길이 42㎝, 너비 16㎝에 무게는 약 10㎏. 전 세계 구석기 아슐리안 유적에서 이제껏 발견된 양면석기 가운데 가장 크다.

해당 석기는 비교적 최근 출토품이다. 전곡리유적 85-12번지 일대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기에 앞서 2021~2022년 발굴조사를 하다 나왔다. 유적 층위 중 가장 오래된 최하층(해발고도 53m, 지표 아래 4.5m 깊이)에 묻혀 있었다. 약 50만년 전 현무암층 바로 위, 약 25만~20만 년 전후에 형성된 황색사질점토층(4유물층)이다.

이 층위에선 초대형 주먹찌르개를 포함해 총 794점의 석기가 나왔는데 양면석기도 35점이나 됐다. 이한용 관장은 “그동안 전곡리 일대에서 구석기시대 양면석기가 여럿 나왔지만 현무암 바로 위 층위에서 무더기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이 약 30만년 전후 형성되기 시작했단 걸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라면서다.

구석기인들이 주먹도끼, 주먹찌르개 같은 석기를 제작한 것은 무언가 단단한 것을 쪼개고 다듬고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손으로 들지도 못할 정도의 초대형 양면석기가 왜 필요했는지, 무슨 용도였는지는 미스터리다. 일각에선 “나무·뼈·뿔처럼 단단한 재질의 대상을 재단하거나, 대형동물 도살의 초기 단계(사지 해체)에 사용됐을 가능성”을 보고, 또다른 연구자는 “사용 흔적을 분석해보니 단단한 것보다 다소 무른 것을 찌르거나 내려치는 데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예 실용적인 용도를 넘어선 상징적(남성적 힘 과시)·미적(예술 초기단계) 의도였을 수 있다. 이한용 관장은 “흔한 규암이 아니라 유적지 일대에 흔치 않은 화강편마암을 일부러 찾아서 만든 도구”라면서 “구석기인들에게 ‘신라 금관’ 같은 위세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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