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평창의 유산 혹은 가리왕산의 상처…다시 불거진 정선 알파인경기장 존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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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가리왕산 일대에 조성한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질주하는 알파인 스키 간판스타 린지 본. 연합뉴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개최 이후 8년이 지났지만, 강원도 정선군 가리왕산 일대에 만든 알파인경기장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해당 시설의 존치 또는 복원을 놓고 체육계와 환경단체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최근 대한체육회가 경기장 철거 계획에 공식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해묵은 갈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선 알파인경기장 관련 논란의 뿌리는 지난 2012년 경기장 조성 당시 체결된 ‘조건부 개발’ 약속에 있다. 가리왕산은 당초 수백 년 된 원시림을 보유한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의 일부였다. 보존 가치가 높은 산림을 훼손하면서까지 이곳에 경기 시설을 지은 건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 및 인근 지역에서 국제스키연맹(FIS)이 제시한 올림픽 알파인 종목 활강 코스 규격(표고차 800m 이상)을 충족하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산림 자원 보호’와 ‘동계올림픽 성공 개최’ 이슈가 첨예하게 대립한 가운데, 논란 끝에 타협안이 만들어졌다. 올림픽 시설을 조성하되, 대회 이후 전면 복원하는 조건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개발 승인이 내려졌다.

하지만 올림픽 종료 후 상황이 달라졌다. 환경단체와 산림청이 “당초 약속대로 경기 관련 구조물을 철거하고 산림을 전면 복원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 체육계와 정선 주민들이  ‘시설 보존’을 외치기 시작한 것. “막대한 정부 예산(약 2000억원)을 투입해 건립한 국제 규격의 경기장을 허무는 건 국가적 낭비이자 동계스포츠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악수”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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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알파인경기장 전경. 연합뉴스

표면적으로는 가치 있는 스포츠 유산과 보전해야 할 산림 자원 중 한쪽을 선택하는 갈등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보다 입체적인 고민이 숨어 있다. 원안대로 산림 자원을 복구하는 것 자체가 쉬운 길이 아니다. 환경 복원에 따른 기술적 한계와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스키 슬로프로 개발한 급경사 지대에 대규모 나무를 심고 생태계를 되돌리는 과정은 경기장 건설 그 이상의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 된다.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해당 지역의 지형적, 지질학적 특성을 고려할 때 복원이 온전히 이뤄지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힘들게 완성한 올림픽 수준의 동계 스포츠 시설을 해체하는 것 또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선 알파인경기장이 존치와 원상 복원 사이의 갈등으로 장기간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알파인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은 매년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해외로 전지훈련을 떠나고 있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설상 종목 선수들은 “국내에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훈련할 설상 종목 시설이 없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이 과정에서 매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대 비용이 지출된다”고 토로했다. 해당 시설을 철거할 경우 추후 동계아시안게임이나 동계올림픽을 다시 국내에 유치할 때 어딘가에 같은 시설을 또 지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정선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경기 시설을 철거하는 대신 곤돌라 등 관광 인프라는 남겨 해당 지역 일대를 ‘가리왕산 국가정원’으로 조성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경기 시설로서의 가치는 포기하되, 산림 자원과 올림픽 유산을 활용한 관광 명소로 키워가자는 일종의 중재안이다. 하지만 해당 방안은 산림 복원도 불완전한 상태에서 경기 시설마저 없애는 방안이라 양측 모두의 지지를 받지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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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알파인경기장이 들어선 가리왕산 일대는 복원과 존치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며 8년 째 방치 중이다. 중앙포토

체육회가 시설 존치를 요구하고 나선 건 ‘현실적으로 완벽한 복원이 어렵고, 시설이 사라질 경우 드러날 단점이 명확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체육회는 지난 8일 “정선 알파인경기장이 선수 훈련 환경 보장과 국내 동계 스포츠 저변 확대, 국제대회 유치 및 정선 지역경제 활성화 등 여러 가지 이슈를 해결할 핵심 인프라인 만큼 존치가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와 관련해 ‘동계 스포츠 시설 부분 존치 및 생태적 활용’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유전자원 보호구역 등 핵심 생태 지역은 엄격히 복원하되, 이미 훼손된 슬로프 면적 중 일부를 국가대표 훈련장 및 일반인의 산악 관광 공간으로 병행 사용하는 방안이다. 더불어 강원도와 정선군에 떠넘겨진 해당 지역 및 시설물의 관리 비용을 정부가 분담하고, ‘올림픽 유산 관리법’ 등을 통해 시설 운영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체육회 관계자는 “동계 스포츠 시설을 존치해 운영하되, 산림 훼손을 최소화하고 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게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적용하면 된다”면서 “스포츠 유산과 환경 보호의 상생 모델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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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알파인경기장과 관련해 올림픽 시설물을 존치해야 한다는 체육계 및 정선 지역민들의 주장과 원상 복구해야한다는 산림청 및 환경 단체들의 주장이 엇갈린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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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알파인경기장과 관련해 올림픽 시설물을 존치해야 한다는 체육계 및 정선 지역민들의 주장과 원상 복구해야한다는 산림청 및 환경 단체들의 주장이 엇갈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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