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같은 날 처형된 살인범 옆” 안중근 유해 위치 새 단서 나왔다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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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의거 직후 러시아 측에서 찍은 안중근 의사의 모습. 사진 흑룡강 조선민족출판사

“감옥에서 1㎞ 정도 떨어진 산 중턱”, “같은 날 처형된 살해범 묘소 근처”

일제가 비밀에 부쳐온 안중근 의사 매장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해, 유해 발굴 시도에 단서를 제공할 자료가 새롭게 드러났다. 116년 전 안 의사 서거 직후 보도된 일본 신문 매체 기사를 통해서다.

안중근 연구자인 이규수 강덕상사료연구원 원장(전 일본 히토쓰바시대 특임교수)이 발굴한 이 자료는 1910년 9월 10일자 ‘오사카마이니치신문(현 마이니치신문)’에 실린 고마쓰 모토고(小松元吾) 특파원의 르포 기사다. 당시 일제 통치 지역인 뤼순(旅順)에 머물며 안 의사 공판 과정을 상세히 보도해온 그는 안 의사 서거 후 5개월여 만에 묘소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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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지 단서가 담긴 1910년 9월 10일자 마이니치신문 고마쓰 모토고 특파원의 현장 취재 기사 전문. 사진 이규수 강덕상사료연구원 원장

기사에 따르면 고마쓰는 정확한 묘소 위치를 알고 있는 뤼순교도소장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안내자를 따라 감옥에서 약 10정(약 1㎞) 정도 떨어진 곳까지 걸어 들어갔다. 묘소 위치에 대해 “울타리도 담도 없는 산 중턱”이라면서 “산은 높지 않고 마잉푸(馬營浦)라 불리는 작은 부락 거리의 한쪽 끝”이라고 표현했다. 기존에 알려진 감옥 인근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지난 9일, 이 보도가 지목한 장소를 직접 찾았다. 마잉푸는 둥산포(東山坡)의 옛 지명으로 뤼순 감옥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뤼순커우(旅順口)구에 속한다. 다롄시 당국은 지난 2001년 이곳 일대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는데, 남향에 볕이 잘 드는 산지로 지금도 무덤 수백 기가 구석구석 넓게 퍼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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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지 단서가 담긴 1910년 9월 10일자 마이니치신문 고마쓰 모토고 특파원의 현장 취재 기사 확대본. 사진 이규수 강덕상사료연구원 원장

이곳 지형 역시 116년 전 보도 그대로다. 고마쓰는 “3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오직 남쪽으로 마잉푸 마을을 넘어 멀리 황금산 (黄金山)과 라오후웨이(老虎尾) 곶을 마주하고 있다”면서 “그 사이로 항구 밖의 바닷물(海水)을 바라보고 조금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 백옥산(白玉山) 꼭대기의 표충탑(表忠塔)이 우뚝하게 하늘로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고 적었다.

현재는 바로 앞 마을이 개발되며 11층 높이 아파트가 여러 채 지어져 시야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지도상 정남쪽으로 4㎞ 지점에 황금산, 서남쪽 방향 3㎞ 멀리 백옥산이 위치한다. 그 뒤로는 좌우로 수평선이 넓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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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뤼순감독 공동묘지가 있던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둥산포 문화재 보호지역. 사진 이도성 특파원

안 의사 묘소 형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점도 사료로서 이 기사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만에 하나 발굴되는 일이 없도록 일반 죄수와 같은 지하 4척 (약 1.2m) 이내에 묻지 않고 특별히 7척 (약 2.1m) 아래로 깊이 묻었다”고 밝힌 것이다. 묘소에 쓰인 관에 대해서도 “특별히 들여온 백목(白木, 원목을 제재해 표면을 가공하지 않은 목재) 두꺼운 판자의 좋은 재목으로 파격적인 일본식 침관(寝棺, 시신을 눕히는 관)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특히 안 의사 묘소 인근에 묻힌 다른 사형수 실명을 거론했다. 중국인 환전상을 대상으로 강도살해를 저지른 모토야마 겐이치(本山謙市)와 야마무라 세이이치(山村精一), 중국인 살해범 혼다 오토마쓰(本田音松), 일본인 살해범 위안광가오(袁廣高) 등을 언급했다. 그 옆에 나무 표식이나 돌멩이 하나 놓지 않은 곳에 안 의사가 묻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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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뤼순감독 공동묘지가 있던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둥산포 문화재 보호지역 비석. 사진 이도성 특파원

이규수 원장은 “고마쓰는 안중근 의사를 오래 취재했던 기자이자 안 의사를 흠모했던 인물”이라면서 “구체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지형 묘사가 또한 자세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고마쓰는 수감된 안 의사를 면회하며 유묵과 안 의사 가족 사진첩을 손에 넣은 뒤 대를 이어 보관했다. 현재는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한 상태다.

안 의사는 사형 집행 전 두 동생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뒀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구체적인 유해 위치를 찾지 못한 탓에 116년째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후보지 중 하나였던 뤼순 감옥 뒤편 위안바오산(元寶山) 지역에선 지난 2008년 한·중 공동 발굴을 시도했지만 빈손으로 마무리됐다. 현재는 이곳에 대규모 주거 단지가 들어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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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 후보지였던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위안바오산 지역. 현재는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섰다. 사진 이도성 특파원

이번에 구체적인 안 의사 매장지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오며 유해 발굴 시도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중국은 그동안 구체적 근거 자료와 발굴지 특정 등 조건이 충족되면 협력하겠다는 뜻을 나타내왔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안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한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지난 1월 방중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 100년 기념식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께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과 중국 내 사적지 보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가보훈부 역시 지난달 18일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민·관 협력단’을 발족하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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