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600만 ‘백성’이 위로합니다, 단종에게 드리는 왕후의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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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오후 단종의 능인 강원도 영월 장릉 내 정자각에서 국가유산청이 주관하는 고유제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고유제는 정순왕후의 능인 남양주 사릉에서 채취해 온 들꽃을 장릉의 정령송 인근에 옮겨 심는 식재 행사를 기념해 열렸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게 정자각이고 11시 방향 위쪽에 담장으로 둘러 있는 게 단종의 실제 무덤인 능침이다. 사진 국가유산청

“단종과 정순왕후 두 분의 백(魄·넋)이 각각 따로 모셔져 있어 승하 후 5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두 분의 그리움을 꽃으로 이어지게 하려 합니다.…”

정순왕후 송씨 사릉에서 가꾼 들꽃 #단종의 영월 장릉에 옮겨심는 행사 #“부부 그리움, 꽃으로 계속 이을 것”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 사릉(思陵). 벚꽃과 진달래가 야트막한 능선을 흐드러지게 에워싼 가운데 엄숙한 고유제(告由祭)가 열렸다. 고유제란 중대한 일을 치르기 전후 그 사유를 조상이나 신령에게 알리는 제사. 옅은 옥색 제복을 갖춰 입은 제관들이 향과 축문을 전하는 전향축례(傳香祝禮)를 하고 준비한 술과 음식을 올렸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제사를 지낼 때 첫 번째로 술을 올리는 제관인 초헌관을 맡았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등이 제관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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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오전 정순왕후의 능인 남양주 사릉에서 국가유산청이 주관하는 고유제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고유제는 채취해 온 들꽃을 단종의 능인 강원도 영월 장릉의 정령송 인근에 옮겨 심는 식재 행사를 기념해 열렸다. 사진 왼쪽 줄 앞에서 세번째가 초헌관을 맡은 허민 국가유산청장.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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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국가유산청장이 11일 오전 경기 남양주 사릉에서 열린 '단종·정순왕후 고유제'에서 초헌관으로 나서 제례를 설행하고 있다. 사후 500여년간 떨어져 있던 두 인물을 꽃을 매개로 연결한 행사의 일환이다. 사진 국가유산청

이번 고유제는 사릉에서 키운 들꽃을 영월 장릉(莊陵) 정령송(精靈松) 주변에 심기 위해 치러졌다. 장릉은 조선 6대 왕 단종(1441~1457, 재위 1452∼1455), 사릉은 그의 비인 정순왕후(1440∼1521)의 능이다. 앞서 1999년 4월 9일 남양주문화원은 수령 50년쯤 된 사릉의 소나무를 영월 장릉으로 옮겨 심으며 ‘정령송’이라고 이름 붙였다. 죽어서도 떨어져 있는 부부에게 이별의 슬픔을 위로하고 두 영혼을 만나게 하려는 취지였다. 이후 27년 만에 사릉의 들꽃까지 장릉에 옮겨심게 됐다. 진달래 아홉 그루, 국수나무 네 그루, 그리고 맥문동·구절초·벌개미취·비비추·쑥부쟁이·층꽃 등 토착종 800본이다.

동행 기자단을 태운 버스가 험준한 치악산(고도 1288m)을 지나 영월에 도착했다.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 일대에 빽빽하게 승용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차로 5분 거리의 장릉 역시 꼬리를 문 행렬이 17세에 죽은 비운의 왕을 위로하느라 밀려들었다. 가파른 언덕배기에 소박하게 조성된 장릉을 둘러본 시민들은 “깨끗이 잘 관리하고 있네” “햇볕이 잘 들어 따뜻하시겠다” 등의 말을 나누었다. 들꽃 식재를 구경하면서 “왕비 능에서 옮겨온 거래”라며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식재가 마무리된 뒤 장릉 정자각에서 진행된 고유제도 수백명이 관심 속에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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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능인 강원도 영월 장릉 내 정령송의 모습. 1999년 정순왕후의 능인 남양주 사릉에서 옮겨와 심은 소나무다. 27년 만인 지난 4월 11일엔 사릉의 들꽃을 정령송 인근에 옮겨 심는 식재 행사가 국가유산청 주관으로 열렸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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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국가유산청장이 11일 오후 단종의 능인 강원도 영월 장릉 내 정령송 인근에 정순왕후의 능인 남양주 사릉에서 채취해 온 들꽃을 관계자들과 함께 식재하고 있다. 사진 국가유산청

서울에서 장릉까지는 약 170㎞. 지금은 승용차로 약 2시간 거리이지만 500여년 전엔 도보로 일주일 꼬박 걸렸다. 1457년(세조 3)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그 길을 따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됐다. 불과 3년 전인 1454년 왕비로 책봉된 정순왕후 송씨도 그렇게 남편과 생이별했다. 군부인으로 격하된 송씨는 지금의 동대문 밖 정업원에서 생활했다. 남편의 부음을 듣고선 정업원 뒤쪽 산봉우리(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곡을 했다고 한다. 82세에 타계하기까지 옷감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생계를 유지했다고도 전한다. 이번에 옮긴 들꽃 중에 쑥부쟁이·맥문동 등 보랏빛 계열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다.

이번 행사가 기획된 배경엔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의 돌풍이 크다. 지난 2월 4일 개봉한 영화는 4월 11일까지 1633만1379명을 끌어들이며 역대 흥행 2위로 올라섰다. “관객으로 들어갔다 백성으로 나온다” 등의 후기가 쏟아지더니 “570년간 떨어진 부부의 묘를 합장해주자”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2009년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가운데 영월 장릉이 서울 궁궐 기준으로 유독 외떨어져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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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강원도 영월 장릉 내 정령송 인근에 정순왕후의 능인 남양주 사릉에서 채취해 온 들꽃을 옮겨 심는 식재 행사를 기념하는 고유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국가유산청

장릉은 애초 노산군 사후에 영월호장 엄흥도가 몰래 시신을 가매장한 자리였고. 1516년(중종 11) 이를 찾아 봉분이 만들어졌다. 1698년(숙종 24) 단종으로 왕의 신분이 회복되면서 장릉이란 이름이 붙었고 현재 모습으로 조성됐다. 정순왕후 송씨의 묘는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의 시댁 해주 정씨의 집안 묘역에 조성됐다. 해주 정씨 집안에서 수백년간 제사도 지내주었다. 단종과 같은해 정순왕후로 복위되면서 사릉이라 하고 묘를 왕릉 제도에 맞게 조성했다. 원래 왕릉이 되면 주변 묘역은 들어내는 게 원칙이지만 이 경우는 예외로 둬서 현재도 사릉 주변에 해주 정씨 묘역이 남아 있다.

국가유산청은 합장 청원엔 선을 긋고 있다. 안호 궁능유적본부 궁능서비스기획과장은 “각각 사적이자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서 현상 변경이 여의치않기도 하고, 숙종 때 복위 당시에도 합장 논의가 나왔지만 그대로 둔 채 신주만 함께 종묘에 모셨다”고 설명했다. 단종 부부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는 종묘 영녕전에 함께 모셔져 있다.

대신 이날 들꽃 식재를 계기로 이들 부부의 연이 이어지게끔 연례행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매년 7∼8월에 장릉과 사릉에서 사초(무덤의 풀) 씨앗을 확보해 양육한 뒤, 이듬해 한식(寒食)에 각 능에서 교환해 심는 행사다. 단종의 영월 장릉, 정순왕후의 사릉, 신주를 모신 종묘를 잇는 문화유산 여행 코스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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