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작업은 곧 삶” 한 길만 바라 온 ‘전기톱 든 구순 조각가’…김윤신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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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중앙플러스 오프라인행사 '아트토크: 마스터스'의 첫 회는 지난 10일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렸다. 왼쪽이 여성 조각가 1세대로 꼽히는 김윤신. 오른쪽은 진행을 맡은 중앙일보 권근영 기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흔한 살 나이에도 매일 아침 작업실로 출근해 무거운 나무를 베고 그림을 그린다. 그 힘은 어디서 날까. ‘전기톱 든 구순의 조각가’로 불리는 김윤신(91)은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3 오디토리움에서 가뿐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트토크: 마스터스' 성료, 5월말 김보희 토크로 이어져
나는 작업이 곧 삶이에요. 작업함으로써 ‘나 오늘 살아 있구나’ 해요. 밥 먹는 것과 똑같습니다.
김윤신은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로, 40여년간 나무와 돌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다. 2024년 여든아홉의 나이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현역 작가다. 그는 이날 열린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의 오프라인 행사 ‘아트토크: 마스터스(Art Talk: Masters)’ 첫회 대담자로 나섰다.
연간 4회의 대담으로 구성된 ‘더 아트(The Art) 멤버십’은 지난달 초 공개 후 전석 매진되고도 대기자가 몰렸다. 현장엔 신청자들과 김윤신의 제자인 이윤숙 조각가,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의 김란 소장과 최은주 이사,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과장, 김창한 국제갤러리 대표 등 60여 명이 자리했다.
김윤신은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작업 경험들을 꺼내 소개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릴 때 시골 초가집에서 쏟아지는 별을 봤던 기억이 나요. 자연을 통해 모르는 걸 알게 되던 어린 시절이 오늘날 내 작업 속에서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홍익대 졸업 후 철 용접 조각을 하는 김윤신. 사진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
1935년 지금의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만주에서 해방을 맞고, 6·25 때 홀로 피란가고도 살아남았던 유년기의 기억을 꺼냈다. 홍대 조소과 졸업 후 창덕여고·전주여중 등에서 미술 교사를 하다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196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상명여대 교수로 재직하다 1983년 말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재료’ 때문이었다. 여전히 나무가 부족했던 한국과 달리 아르헨티나에는 크고 오래된 나무가 풍부했다. 단단한 이곳 나무를 자르기 위해 전기톱을 쓰기 시작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다.
한국에는 전쟁 후에 남아있는 게 없어 굵은 나무로 작업하기 어려웠어요. 조카가 초대해서 간 아르헨티나엔 튼튼하고 오래가는 나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가구를 짜는 알가로보, 배에 들어가는 탄탄한 팔로산토…. 현지에서 설명해주는 나무들을 보며 놀랐습니다.
1980년대 아르헨티나 작업실에서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김윤신. 사진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
1988년엔 멕시코 푸에블라주 테칼리에 위치한 오닉스 채석장에 들어갔고, 2001년엔 브라질 솔레다데에서 준보석을 잘라 작업했다. 그 어떤 조각가도 간 적 없는 척박한 곳들이었다.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 미술관에서 연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가 이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로 이어졌다.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하진 않았어요. 나는 내 일을 찾아갔을 뿐입니다.” 아흔한 살 현역 조각가인 그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다.
몇 세기가 지나도 ‘이 스타일은 김윤신이야’, 하는 말이 나오는 작업을 남기고 가고 싶어요.
왼쪽은 뉴욕 구겐하임 소장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7-88'. 현재 호암미술관에서 전시중이다. 사진 전명은
“김윤신은 나무를 나무답게, 돌을 돌답게 보여주는 조각가”라는 권근영 중앙일보 기자의 말에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학 시절 농담 잘 하던 김수환 추기경을 만난 이야기, 1980년대 초 전시하러 간 파리에서 유학 중인 배우 윤정희를 만나 데드마스크를 떠준 일화에도 흥미를 보였다. “김윤신은 영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 같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길만 갔지만, 그 걸음이 격동의 세계사와 맞물렸고, 유명인들과의 만남도 이어졌다”는 기자의 설명에 객석의 탄성이 터지기도 했다.
한 독자가 그에게 조각이란 무엇인지 묻자 "재료 안에 존재하는 질서를 드러내는 과정이자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재료를 보면 한참 봐요. 질감과 세기, 나이테, 향...그걸 찾아내며 (재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거죠."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간 김윤신에게서 힘을 얻고 싶다는 참가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40대에 제2의 전공으로 미술을 선택한 50대 화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한내씨가 “늦게 시작한 저에게 용기의 한 말씀을 부탁드린다”고 청했다. 김윤신은 털털한 웃음과 함께 답했다. “엄청난 걸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쉼 없이 하셔야지. (웃음) 밥을 굶어도 나는 이걸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하나만을 위해 작업하세요.” 김윤신의 회화 ‘이루어지다’를 소장한 팬이라는 이모씨는 “(김윤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사람 같다. 매번 행사마다 찾아갔지만, 오늘은 특히 좋았다”고 말했다. ‘아트토크: 마스터스’는 5월 김보희, 10월 박대성, 12월 서도호 작가와의 대화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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