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6 여동생 생일, 엄마 살해한 아빠…어린 오빠 덮친 ‘생존 전쟁’ [부모 형벌 나눠 지는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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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자 자녀 김민혁(23·가명)씨가 2022년 6월 아버지 수감 이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하던 당시 모습. 사진 독자
올해 막 성인이 된 박성민(19·가명)씨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23년 아버지가 사기죄로 구속되면서 홀로 생계를 떠맡게 됐다. 이혼한 어머니와는 어렸을 때 이미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개인 회생을 신청한 채 수감된 아버지를 대신해 매월 50만~60만원씩 법원에 변제금을 내는 것도 박씨의 몫이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당장 먹을 것부터 입을 옷까지 돈을 구하러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됐다”며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당시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자신이 홀로 책임져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된 박씨에겐 매월 70만원 수준의 생계급여가 나왔지만 각종 공과금과 아버지 영치금, 법원 변제금을 내면 통장은 바닥을 보이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는 “평일엔 학교 끝나고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고깃집에서 일당 4만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했고, 주말엔 공사 현장에서 10만~12만원을 받고 막노동을 했다”며 “고1 때까지만 해도 내신 성적이 평균 1~2등급이었지만 아버지 수감 이후엔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하는 바람에 성적이 8등급대로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수용자 자녀 김민혁(23·가명)씨가 2022년 6월 아버지 수감 이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 모습. 사진 독자
중앙일보가 만난 수용자 자녀들은 어린 나이부터 부모를 대신해 생계를 이끄는 가장이 됐다. 대학생 김민혁(23·가명)씨는 2022년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면서 7살 터울 여동생과 둘만 남게 됐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여동생의 생일날 벌어진 일이었다. 김씨는 “여동생의 생일이기만 했던 그 날이 나와 동생이 수용자 자녀가 된 날이 됐고, 동시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돼 버렸다”며 “돈을 벌기 위해 대학도 휴학하고 물류센터 택배 상·하차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여동생이 지금 고1이 됐다. 겉으로 크게 내색하진 않지만, 유년 시절이 마음 깊숙한 곳에 큰 상처로 자리잡아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저린다”고 했다.
수용자 자녀들은 사회적 고립도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부모의 잘못으로 의도하지 않은 불행이 닥쳤지만, 정작 사회는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주홍글씨를 이들에게 씌운다는 것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가 2021년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관계에서 수용자의 자녀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조사한 결과 ‘배우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2.4%에 불과했다.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응답도 14.7%에 그쳤다. ‘어떤 관계도 받아들일 수 없단’ 응답은 13.8%에 달했다.
차준홍 기자
박씨는 “아버지가 수용된 뒤엔 ‘무엇이든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 ‘내가 이걸 못하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아 스스로를 한계까지 계속 밀어붙였다”고 했다. 김씨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도움을 구하는 방법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걸 혼자 책임지다 보니 마음 기댈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고3 막바지 때 아버지의 수감 생활이 끝난 박씨는 최근에서야 대입 시험을 다시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물리치료학을 전공하는 김씨는 마케팅 분야로 관심을 돌려 2024년 사업자 등록을 하고 새 출발을 시작했다.
수용자 자녀라는 상처는 성인이 돼서도 이어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처음 수용됐다는 작가 기복(필명)은 “‘내 본모습을 알면 사람들이 떠나가진 않을까’하는 질문이 어릴 때부터 늘 날 망설이게 했다”고 했다. 기복은 아버지가 수용된 이후 겪었던 일을 다른 수용자의 자녀 9명과 함께 『기억함의 용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서 출판했다. 기복은 “다른 수용자 자녀들을 만나고,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도 충분히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서울 한 대학에서 열린 2026학년도 수시모집 논술시험에서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 뉴스1
박선영 한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부모의 범죄가 또 다른 피해자인 자녀에게까지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며 “수용자의 자녀가 학교와 지역 사회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경제적, 정서적인 통합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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