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수반’ 운영비·수천만원 전지훈련비…여전한 학교 ‘불법 찬조금’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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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Gemini
“부모들이 경쟁하듯 후원금을 내는 분위기가 답답하네요. 메신저에 인증 사진까지 올라오는데, 누가 내고 안 내고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니 안 낼 수가 없어요. 예산에 간식비, 식비가 다 포함돼 있는데도 여전히 이렇습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운동부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지방 훈련을 갈 때마다 반복되는 모금 문화에 대해 이 같이 토로했다. A씨는 “경기 참가비, 연습비 등을 포함하면 안그래도 내는 돈이 많은데 알 수 없는 찬조금까지 내야 하니 답답하다”면서도 “혹시 내지 않으면 우리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문제 제기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 B씨도 “학기 초 학부모회가 끝난 뒤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찬조금을 걷기에 사용 내역을 묻자, 회장이 ‘개인적으로 찾아오면 보여주겠다’고 했다”며 “국민신문고에 신고하려 해봤지만 개인정보 요구가 많아 우리 아이가 특정될까봐 결국 속앓이만 하다 그만뒀다”고 털어놨다.
전지훈련비부터 ‘우수반’ 운영비까지…‘카톡으로 인증’
13일 교육청·학부모 등에 따르면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 학부모회·운동부를 중심으로 한 ‘불법 찬조금’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불법 찬조금은 학교발전기금 회계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학부모 단체가 임의로 모금하는 학교발전기금, 교원 선물, 학생 간식비, 운동부 운영비 등을 일컫는다. 음성적으로 조성된다는 점에서 과거의 ‘촌지’와 성격이 비슷하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지난 9일 발표한 불법찬조금 근절 계획에서 설명하고 있는 불법찬조금의 대표적인 유형. 서울시교육청
2016년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이후 직접 봉투 등을 건네는 풍경은 사라졌지만, ‘촌지’라 불리던 학부모 찬조 관행은 방식과 이름만 바꿔가며 학교 안팎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디지털화’다. 학부모 단톡방을 통한 기프티콘 일괄 전송, ‘N분의 1’ 송금 인증 릴레이, 학부모회 임원 명의 계좌로 이뤄지는 소액 이체 등이 대표적이다. 학부모 B씨는 “예전에는 누가 얼마를 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단톡방에 입금 내역이 실시간으로 뜨니 안 내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학교 운동부의 경우 고액 찬조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광주의 한 고교 운동부 지도자들은 선수 선발 권한을 이용해 학부모들로부터 수시로 찬조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같은 달 인천에서도 한 고교 축구부 지도자들이 전지훈련비 명목으로 학부모들로부터 수천만 원대 찬조금을 거둔 의혹으로 고발됐다.
운동부만의 얘기는 아니다. 지난해 8월 충남 공주의 한 사립고에서는 이른바 ‘우수반’ 학부모들이 연 40만원씩 회비를 갹출해 해당 반만을 위한 청소비·간식비 등에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충남교육청이 감사를 진행 중이다.
“신고하면 찍힐라”…교육청, 감시망 조이기 나서
이렇게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교육 관계자들은 말한다. 학부모 네트워크 특유의 폐쇄성 탓에 내부 고발 없이는 실태 파악조차 어렵고, 학부모들은 자녀가 불이익을 겪을까 우려해 침묵을 택하기 일쑤다.
각 시·도 교육청은 불법 참조금 감시망을 조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학기 초마다 공익제보센터를 통한 집중 감시와 예방 교육을 병행 중이고, 인천시교육청은 체육계 찬조금 사건 이후 상시 신고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8일 서울시교육청은 학부모가 스마트폰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불법 찬조금 모바일 신고센터’를 연중 상시 운영한다고 밝혔다. 기존 PC 기반 신고 시스템의 신고율이 저조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안내문에 첨부된 QR코드를 스캔하면 신고서 작성 화면으로 연결되며, 신고자의 개인정보를 특정하지 않고도 단톡방 캡처·메신저 대화 등 증빙자료를 손쉽게 제출할 수 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예산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충분히 지원되는 만큼 학부모 찬조 자체가 필요 없다”며 “불법 모금 정황을 접하면 적극적으로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불법찬조금 근절 신고 QR코드. 신고자 개인정보가 특정되지 않는다.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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