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6·25 때 도둑맞고 경매로 되사기도…간송 수집의 역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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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2026 봄 특별 전시 '문화보국文化保國: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살펴보고 있다. 전시는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팔려나가던 경성 고미술 경매장에서 간송 전형필이 되찾아온 미술품을 선보인다. 연합뉴스

“1950년에 (6·25전쟁 터지고) 부산에 피난 가서 짐 풀고 시장에 나갔더니 서울에서 온 것(소장품)들이 벌써 팔리고 있더라고 간송이 말씀하신 적 있죠. 국립박물관이나 각 대학박물관이 문화재를 입수했다가 보화각이라는 장서인(藏書印, 인장)이 찍힌 걸 보고 (우리에게) 돌려주시기도 했고요.”(전인건 관장)

경성미술구락부 경매 활동에 초점 #국보 백자 호리병 등 36건 46점 전시 #미술관 입구 대신 지킬 석호상 눈길

일제강점기에 자산을 쏟아부어 우리 문화유산을 지켰던 간송 전형필(1906~1962)은 광복 이후 수집을 중단했다. 더 이상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란의 참화 속에 서울 성북동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전신) 수장고가 털리고 일부 유물이 유실되자 재수집에 나섰다. 거액을 주고 샀던 서화가 청계천 일대에서 낯선 손에 떠도는 걸 봤을 때 간송의 심정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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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희-화차분별도 ⓒ 간송미술문화재단. 19세기 후반 미국에 부임한 중국 참찬관(參贊官) 팽광예(彭光譽)와 조선 주미공사관원 강진희(姜璡熙)가 함께 그린 ≪미사묵연(美槎墨緣)≫ 화첩에 수록된 작픔이다. 미국에서 기차를 처음 본 조선 지식인이 남종화풍에서 비롯된 간결한 필치와 여백으로 그려냈다. 간송 전형필이 한국전쟁 이후 대한고미술협회 주문인을 통해 다시 입수한 작품으로 재입수가는 4만1000환이었다.

2024년 재개관 이후 ‘간송컬렉션의 형성과 구축 과정’을 시리즈로 재조명해 온 간송미술관이 다섯 번째 기획전 ‘문화보국文化保國: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을 오는 15일부터 6월 14일까지 연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 최대의 미술품 거래 기관이던 ‘경성미술구락부(京城美術俱樂部)’의 경매 기록과 해당 유물을 중심으로 36건 46점(국보1, 보물1)이 선보인다. 13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미술관 측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던 고람 전기(田琦)의 ‘고람유묵(古藍遺墨)’ 등 4건 6점은 최초 공개”라고 소개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국보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白磁靑畵鐵彩銅彩草蟲蘭菊文甁)’. 워낙 빼어난 조선 백자 호리병이라 여러 전시에 나왔지만, 이번엔 약 반세기 전 고미술수집가의 관련 글 두 편을 양옆 패널로 곁들였다. 하나는 송원 이영섭이 『월간 문화재』 18호(1974년 2월)에 기고한 ‘내가 걸어 온 고미술계 30년’ 중 발췌본이고, 다른 하나는 수정 박병래가 중앙일보 1973년 10월19일자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로 쓴 ‘간송의 쾌거’다. 둘 다 1936년 11월 20일 일본 수장가들과 숨 막히는 경쟁 끝에 간송이 경성미술구락부 사상 최고가인 1만 4580원에 백자를 낙찰받은 현장 얘기를 소개하고 있다. 당시 군수 월급이 70원 정도였을 때로, 기와집 15채에 맞먹는 낙찰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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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이 전시된 모습. ⓒ 간송미술문화재단

1922년 일본인 골동상들이 설립한 경성미술구락부에선 해방 전까지 260여 회의 경매가 열렸고 낙찰 총액은 1935년 12만 5000엔에서 1941년 37만 5000엔으로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만큼 문화유산의 국외 유출도 가속화됐다. 조선인의 입장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이 공간에서 간송은 일본인 중개인을 내세워 치열하게 경합을 벌였다.

전시에는 간송이 1930년부터 1944년까지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 응찰하며 남긴 경매 도록 가운데 이번 전시 작품과 관련된 도록 4건도 선보인다. 연필로 작품 가격을 적은 흔적이 뚜렷한 가운데 약 100년 전 도록과 실제로 전시된 작품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김영욱 전시교육팀장은 “기록을 보면 간송은 32회 응찰해 350여건을 낙찰받았고 3분의2가량이 우리나라 작품이었다”면서 “나머지 중국·일본 작품도 우리 서화의 계통을 정립하는 데 연관성을 고려해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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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2026 봄 특별 전시 '문화보국文化保國: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가 '팔준도'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해방 후 경성미술구락부는 미군정청에 접수됐다. 국내 골동상들은 ‘한국고미술협회’를 창립해 경성미술구락부 방식을 계승했는데, 이곳은 1956년 대한고미술협회로 공식 개칭됐고 한국 고미술 시장을 실질 주도했다. 간송이 6·25 전쟁 이후 수장품을 재수집한 통로도 이곳이다. 예컨대 처음 공개되는 조선 말기 화가 우창(雨蒼) 이용림의 ‘서당아집도(西堂雅集圖)’는 1956년에 출품된 작품이었다. 낙찰가는 4만환. 당시 겸재 정선의 금강산 진경산수화들이 3만~6만환에 거래됐다고 한다. 전시엔 6·25 이후 재수집한 작품이 2건 3점 선보이는데 미술관 측은 남은 영수증과 대조해 확인된 것만 최소 30여점이라고 밝혔다.

야외 정원에선 1935년 3월 경성미술구락부에서 낙찰받은 석호상(石虎像, 호랑이 석상) 한쌍도 만나볼 수 있다. 높이 각 115㎝에 19세기 민화풍의 동그랗고 익살스러운 생김새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호랑이 캐릭터 ‘더피’를 연상시킨다. 미술관 측은 보화각 입구 청나라 석사자상 한쌍을 중국에 보내고 나면 이들 석호상을 입구에 놓을 방침이다. 지난 1월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에 기증하기로 결정된 석사자상의 인도 시점과 관련해 전 관장은 “중국 내부 사정상 늦어지고 있는데 아마도 2분기 내 건너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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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상 ⓒ 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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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2026 봄 특별 전시 '문화보국文化保國: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가 '석사자상'을 둘러보고 있다. 간송미술관이 보화각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할 초기부터 입구에 있던 이들 청나라 석사자상은 중국으로 기증돼 돌아갈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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