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빈혈인 줄 알았는데 ‘침묵의 살인자’…韓 증가율 세계 1위 질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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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에서 만성 콩팥병 환자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다. 초고령사회로 당뇨병·고혈압 등 기저 질환을 앓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콩팥(신장)의 미세혈관이 손상되는 환자도 늘어서다. '유병장수' 시대의 그늘이다.

만성 콩팥병의 마지막 단계인 말기 콩팥병은 체내 노폐물을 거르는 콩팥 기능이 10%도 채 안 남아 신장 이식, 투석(혈액·복막) 치료 등을 받지 않으면 생명 유지가 불가능하다. 대부분은 병원에 가서 일주일에 2~3번씩 혈액 투석을 평생 받는다. 그래서 조기 발견을 통한 적극적 관리가 중요하다.

투석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은 예상보다 크다. 말기 콩팥병 환자의 투석 치료에 들어가는 전체 건강보험 지출은 2023년 기준으로 약 2조 6000억원에 이른다는 보고도 나왔다. 국가 차원에서 만성 콩팥병의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지난 2월 국회에선 만성 콩팥병의 예방·진단·치료·재활 전 단계에 걸친 통합적 국가 관리 기반을 마련하는 내용을 포함한 법안이 발의됐다. 이런 움직임은 전 세계 만성 콩팥병 관리의 새로운 글로벌 표준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한신장학회, 세계신장학회(ISN), 미국신장학회(ASN), 아시아태평양신장학회(APSN), 유럽신장학회(ERA)에서 공식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진료 현장에서 만성 콩팥병 관리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해 온 박형천 강남세브란스병원 신장내과 교수에게 만성 콩팥병 의심 증상과 치료·관리법에 대해 들었다. 박형천 교수는 이번 달 아시아태평양신장학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콩팥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아나.

“만성 콩팥병은 침묵의 살인자다. 문제 증상이 있어도 20~50%는 모르고 지낸다. 입맛이 없어지고 기력이 떨어져 피곤해하거나 소변량이 줄고 거품이 가득한 소변을 보는 증상이 나타나서 알게 된다. 이런 증상이 있으면 이미 콩팥 기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말기 콩팥병으로 투석하는 원인의 70% 이상은 당뇨병·고혈압이다. 만성 질환으로 치료 중이라면 증상에 의존하지 말고 연 1회 소변·혈액 검사로 콩팥 상태를 점검하는 게 필요하다. 둘 다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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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천 강남세브란스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말기 콩팥병으로 투석을 하는 원인 70%는 당뇨병·고혈압 탓”이라고 말했다. 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콩팥이 나빠지면 빈혈이 잘 생긴다던데.  

“만성 콩팥병으로 콩팥 여과 기능이 떨어졌을 때 흔히 동반하는 합병증 중 하나인 콩팥병성 빈혈(신성 빈혈)이다. 콩팥 기능이 30% 이하로 떨어지면 혈액 속 적혈구 생성 인자인 에리스로포이에틴(EPO)가 잘 분비되지 않는다. 적혈구는 헤모글로빈을 이용해 전신으로 산소를 전달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위해 폐로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콩팥병성 빈혈로 체내 산소 공급이 줄어 머리가 어지럽고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된다. 문제는 심장이다. 혈액순환으로 전달되는 산소가 부족하면 심장이 더 빠르게 펌프질을 하다가 지치면서 심장 질환이 생긴다. 실제 투석 치료를 받는 만성 콩팥병 환자의 약 50%는 심부전·급성 심근경색 같은 심장 질환으로 사망한다.”

콩팥이 약해지면 심장 질환이 생긴다는 건가.

“그렇다. 체내 노폐물을 걸러내는 콩팥과 온몸으로 혈액을 뿜어주는 심장은 혈역학적으로 하나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혈액순환이라는 신체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상호보완적으로 묶여있다. 콩팥이 나빠지면 심장에 문제가 생기고, 심장이 아프면 콩팥이 위험하다.

특히 만성 콩팥병 중증도가 높아질수록 심장 질환 유병률이 증가한다. 만성 콩팥병 1단계일 때는 협심증·심근경색 등 심장 질환 유병률이 0.8%였지만, 4단계로 진행하면 9.8%로 10배 이상 치솟는다. 만성 콩팥병은 노폐물 여과 속도에 따라 총 5단계로 구분한다. 만성 콩팥병의 단계가 높을수록 콩팥의 여과 기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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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빈혈을 방치하면 사망 위험이 높아지는 건가.  

“빈혈은 그 자체로 콩팥·심장을 동시에 망가뜨리는 강력한 악화 인자다. 콩팥병성 빈혈을 방치하면 콩팥 기능이 더 나빠지고 연쇄적으로 심장 상태까지 악화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심장병 위험도 무섭게 커지고 남은 콩팥 기능도 더 빨리 망가진다. 콩팥 약화 →콩팥병성 빈혈 →심장병 증가 → 콩팥 더 약화라는 무한 루프에 빠진다. 만성 콩팥병 3단계이면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10.0g/㎗ 미만으로 떨어질 때부터 빈혈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빈혈로 인해 콩팥 기능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콩팥병성 빈혈은 어떻게 치료하나.

“약물치료로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를 적절하게 유지한다. 지금까지는 적혈구 형성을 자극하는 호르몬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았다. 정맥 주사라 병원 방문이 필수다. 주사제마다 병원 방문횟수가 월 1회, 주 1회, 주 3회로 다양하다. 최근엔 안정적으로 적혈구 생산을 유도하는 먹는 콩팥병성 빈혈 치료제(바다넴정)이 국내 도입됐다. 기존엔 약을 주사하면 수치가 크게 치솟는데, 먹는 약은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까지만 올라가 생체 친화적이다. 투석 환자 중 호르몬 주사를 맞아도 치료 반응이 없는 경우가 15~20% 정도 되는데 이들에게도 쓸 수 있다. 알약이라 집에서 복막 투석을 하거나 병원 투석이 없을 때 호르몬 주사를 맞기 위해 번거롭게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된다.”

콩팥 기능을 지키는 생활습관이 있다면.  

“제1원칙은 혈압·혈당 관리다. 콩팥을 이루는 혈관 필터인 사구체의 압력을 낮추기 위해 저염식을 실천한다. 콩팥 독성을 유발하는 이부프로펜·나프록센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사용은 피한다. 채소 등은 즙 형태로 짜서 마시면 영양소·수분을 걸러내기 위해 콩팥이 더 많이 일해야 한다. 원물 그대로 조금씩 먹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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