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슬픈 이 마지막 춤사위…슬픔으로 끝나지 않길
-
3회 연결
본문
영화 ‘내 이름은’에서 주인공 정순(염혜란)이 제주도 청보리밭에서 살풀이 춤을 추는 장면. 영화는 충격적 사건으로 어릴 때 기억을 잃어버린 정순이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는 과정을 통해 현대사의 비극인 4·3 사건의 실체를 조명한다. [사진 아우라픽처스]
영화 ‘내 이름은’(15일 개봉)은 개인의 기억을 통해 집단의 비극을 소환하는 작품이다. 배경은 제주 4·3 사건이다.
비극적 역사에 휘말려 자신의 이름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여인 정순(염혜란)의 삶을 그린다.
그는 의사의 도움으로 1949년 어느 봄날의 슬프고 충격적인 기억을 다시 꺼내게 된다. 정순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여정을 통해 관객은 우리 현대사의 트라우마로 남은 비극의 실체를 목도하게 된다.
주연 염혜란(50)은 절제된 눈빛과 미묘한 표정 변화 만으로, 야만과 폭력의 시대를 견뎌낸 여인의 한(恨)을 그려낸다. 슬픔을 진혼 의식으로 승화시킨 그의 춤 사위는 그 자체로 서사다. 현역 최고령 연출자인 정지영(80) 감독이 그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쓴 이유다.
연극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드라마·영화에서 맹활약 중인 그는 ‘내 이름은’으로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섰다. 지난 해에는 ‘어쩔수가없다’(박찬욱 감독)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신스틸러에서 주연급 배우로 우뚝 선 염혜란을 14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내 이름은’의 주연 배우 염혜란. [사진 아우라픽처스]
- 영화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 “‘소년들’(2023)로 처음 함께 한 정지영 감독님의 제안을 받고, 이 영화가 숙명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고통에 짓눌린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성과 서정성을 갖춘 작품이어서 매력을 느꼈다. 대중적인 영화로 만들자는 감독님의 뜻에 동의했다.”
- 정순을 연기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 “정순은 어릴 때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현재 삶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고통 받는 건 아니다.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이 아닌 게 인상적이었다. 젊은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는 무용 선생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멋있는 어른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
- 전작 ‘매드 댄스 오피스’(3월 4일 개봉)에 이어 또 다시 춤이 중요한 영화다.
- “전작의 플라멩코와는 다른 성격의 한국 무용을 접하게 됐다. 마지막 장면의 살풀이 춤을 출 때 감독님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라’고 하셨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완성본을 보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 마지막 장면의 춤에 어떤 정서를 담았나.
-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춤이지만, 슬픔으로 끝나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를 벌하거나 탓하고 싶지 않았다. 평화의 의미를 담고 싶었다.”
- 손자 뻘 나이의 아들 영옥(신우빈)이 겪는 학교 폭력도 서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 “학교 폭력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의도였다.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폭력의 악순환이 생긴다는 점에서 4·3 사건과 같다. 현재와 접점을 갖고 연대와 위로의 의미를 담아낸 점이 좋았다.”
- 4·3 사건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나.
-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졌다. 4·3 사건에 대한 질문 같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피해자인 정순이 가해자적 측면도 있는 것처럼 양쪽으로 편 가르지 않고, 인물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 명실상부한 주연 배우가 됐다.
- “눈앞의 작품을 잘해내자는 생각으로 연기해 왔는데, 여기까지 왔다. 나를 발탁해주신 봉준호 감독, 노희경·김은숙 작가를 비롯해 정지영 감독님 등 모든 분께 감사하다.”
-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렬한 연기의 원천은 뭔가.
- “한쪽 이미지로 고정되는 게 싫다. 추악함, 본능 등 인간이 가진 다양한 면을 끄집어내는 연기를 하고 싶다.”



댓글목록 0